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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향기 Apr 07. 2022

쪽파 김치의 파뿌리는 어디로 갔을까...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봄에 나온 쪽파는 그 맛이 남다르다.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긴 시간을 지나 촉촉해진 땅 위에 새로 돋아난 쪽파는 봄의 단 맛을 그대로 담고 있어 일 년 중 봄에 담근 쪽파 김치가 유난히 맛있다.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법이 없는 이곳 호주에서도 봄에 나는 쪽파는 그 맛이 다르다. 한국의 쪽파보다는 달근한 맛이 덜할지 모르지만 나름 겨울을 이겨낸 쪽파 맛이 난다. 호주에서 쪽파를 구경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서 한국 쪽파 맛은 바라지도 않는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쪽파 농사를 지어주신 분께 감사해하며 쪽파 여러 단을 사 가지고 집으로 왔다.


 쪽파 김치를 담그기 전 필수 코스는 파 다듬기이다. 파뿌리 주변에 붙은 더러운 부분은 벗겨내고 뿌리도 잘라내어 깨끗하게 손질하라는 것이 요리 블로거의 당부였다. 더러운 부분을 벗겨내고 뿌리도 잘라내어 한 곳에 모아 두고 보니 갑자기 왠지 모를 서러움이 몰려온다. 파 다듬다 말고 웬 서러움이냐 하겠지만, 흙이 잔뜩 묻은 잘라져 나온 파뿌리들을 보고 있자니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우리 중 누군가도 이렇게 되는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파뿌리는 겨우내 어떤 생각을 하며 버텼을까? 봄이 되면 새로운 잎을 위로, 흙 위로 올려 내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추운 겨울을 버텼을지도 모를 일이다. 봄이 되어 있는 힘을 다해 잎을 올려 내고 나니, 누군가의 손에 의해 쏙쏙 뽑혀 나라는 사람의 손에 쥐어져 흙 묻은 더러워진 파뿌리 부분들은 잘라내어지고 있으니, 파뿌리는 어떤 심정이겠는가? 억울하지 않겠는가? 서러운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라는 말 때문에 파뿌리를 보면 자꾸 늙어 버리신 부모님 생각이 난다. 젊은 시절 온갖 어려움 다 겪으시고 자식들 바라지에 여념이 없으셨던 우리 부모님들 말이다. 인생의 온갖 단맛은 자식들에게 내어 주고 세상의 더러운 때 다 묻혀 가며 자식들을 키워 왔는데, 남은 것은 허옇게 새어 버린 머리와 검버섯 핀 거뭇거뭇해진 얼굴과 구부정해진 허리뿐인 우리 부모님들 말이다. 그렇게 젊은 시절 다 바쳐 키운 자식들은 설마 부모님들을 버려지는 파뿌리 취급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노인 세대를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마음이 영 좋지 않아 파뿌리들을 하나하나 모아 뒤뜰 한 켠에 심어보았다. 버려지는 것보다 다시 흙으로 보내져 심기면 남은 생명력으로 또 다른 잎을 돋우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심어 놓고 흙을 덮고 물을 준다. 내 마음 가득  다시 잎을 돋우어 내길 바란다는 소망을 담아 물을 준다.


 파뿌리가 어디엔가 심길 자리가 필요하듯 우리 부모님들, 어르신들도 발붙일 자리가 필요하다. 그들이 아직 가지고 있는 생명의 활기를 펼쳐 보일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 파뿌리가 쪽파 김치의 일부가 되지는 못한다 해도 다시 흙에 심기면 새 파 잎을 낼 수 있다. 심기지 못했다 해도, 파뿌리는 깨끗이 씻어 육수를 낼 때 사용하면 깊은 맛을 내기 때문에 모자란 맛을 잡아주는 천연 조미료 역할을 한다. 우리 어르신 세대가 바로 젊은이들의  모자란 부분을 잡아주는 삶의 조미료 역할을 해 주시고 있지 않은가? 파뿌리의 인내심을 파 잎이 따라갈 수는 없다. 파뿌리가 겨우내 한 경험은 파 잎이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세월 속에 쌓인 오랜 경험과 그들이 보여준 인내심은 우리 젊은 세대에게도 꼭 필요한 것들이다.


 호주에서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들이 있다. 일하는 노인들의 모습이다. 배스킨라빈스에서 머리 하얀 할머니가 아이스크림을 담아 주신다. 속도는 느려도 꼼꼼히, 넉넉히, 컵 가득 담아 주신다. 비행기에서 나이 지긋하신 승무원이 내 주문을 받아 주신다. 연륜에서 묻어나는 노련함으로 내 부탁에 응대해 주신다. 슈퍼 계산대에서도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가 바코드를 찍어 주신다. 내게 오늘 하루는 어땠냐는 따뜻한 위로를 건네며, 웃음 가득한 얼굴로 바코드를 찍어 주신다.


 모두가 여전히 아름답고 활기찬 모습이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이 내미는 열정, 새하얀 머리에서 풍겨 나오는 기품과 노련함, 흐려진 눈으로도 건넬 수 있는 따뜻한 온기는 젊은 사람들에게서는 쉽사리 찾아볼 수 없는 귀한 것들이다.


 쪽파 김치를 담으면서 많은 생각이 오고 간다. 파는 버릴 것이 없다. 파뿌리까지도 말이다. 우리 중 누구도 버려져도 될 사람은 없다. 나이가 들어 모습이 누추하고, 활력이 없어지고, 머리가 파뿌리가 되어간다 해도, 여전히 그들에겐 우리를 위해 줄 것이 남아 있고, 그것들은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달근한 인생을 가르쳐 주었고, 건네주었다.


달근한 쪽파 김치를 내게 맛 보인 파뿌리는 어디로 갔나?

겨울을 버텨내고 땅 속에서, 어둠 속에서 묵묵히 시간을 지켜온 그 많은 파뿌리들은 어디로 갔을까…


<사진 출처: Gardening know 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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