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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향기 Apr 05. 2022

호주에서 먹는 콩가루 냉이국

한국은 봄이라 여기저기서 봄소식이 들려온다. 엄마는 벚꽃이 꽃망울이 졌다며 조만간 아빠와 벚꽃 구경을 가야겠다 하시고, 친구들은 봄이라 미나리 전을 부쳐 먹고, 쑥버무리를 해 먹는다고 했다. 나도 그 봄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내가 사는 호주는 가을인데도, 마치 봄을 맞이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어렸을 적 논두렁 밭두렁에 흩어져 있던 냉이를 캐어 봉지에 담아 오면 엄마는 그 냉이로 콩가루 냉잇국을 끓여주셨다. 냉이는 맛으로 먹는 게 아니다. 향으로 먹는다. 냉이 향을 맡으면 내가 봄에 서 있구나 싶었고, 달근한 냉이 뿌리는 겨울을 씻어내고, 봄을 맞이한 봄 향기를 가득 담고 있었다.


호주에서도 그리운 고향의 맛이 바로 콩가루 냉잇국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안동 지역은 많은 음식에 날콩가루를 쓴다. 시래깃국을 끓여도 콩가루를 묻히고, 냉잇국을 끓여도 콩가루를 묻혀 끓인다. 구수한 콩가루 맛이 섬섬한 간을 채워주고, 보송보송 피어오른 콩가루들은 뭉게구름처럼 국 위를 떠다녔다. 섬섬하게 끓여진 콩가루 냉잇국을 짭조름하게 끓인 된장과 함께 비벼 먹으면 정말 꿀맛이다. 그 위에 고추장을 살짝 얹고 엄마의 김장김치를 얹어 먹으면 환상의 궁합이다. 안동 간고등어랑 같이 먹을 땐 임금님 밥상이 부럽지 않았다.


매년 한국이 봄이 되면 가을이 된 호주에서 콩가루 냉잇국을 그리워하곤 했는데 이젠 호주에서도 냉잇국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 한국 마트를 가니 냉동 코너에 데친 냉이가 꽁꽁 얼려져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있었다. 웬 횡재인가 싶어 여러 팩을 집어왔다. 엄마가 알려주신 대로 채 썬 무를 멸치육수에 소금 간을 해 끓이다가 한소끔 끓었을 때 콩가루를 묻힌 냉이를 넣고 약한 불에 뭉근하게 끓였다. 모양은 어릴 때 내가 먹던 콩가루 냉잇국과 똑같았다.



엄청난 기대를 하고 냉잇국을 한 술 떠서 먹어 보았다. 아... 아쉽다. 씹는 질감은 똑같은데 냉이 향이 너무 덜하다. 냉동되어 올 때, 냉이 향까지 얼려오진 못했나 보다. 아쉬운 대로 먹을만했지만, 내가 먹던 향긋한 냉이 향이 못내 그립다.


봄은 결국 비행기를 타고 이곳까지 오진 못했다. 봄 향기는 어느 곳에 불시착해버리고 향이 반만 남은 냉이만 호주에 도착했다. 그래, 반이라도 남은 게 어딘가. 반이라도 남아 조금의 봄 향기를 싣고 호주까지 와준 냉이가 고맙다. 얼어서 온 터라 많이 추웠을 텐데도 자신을 녹여내어 봄 향기를 반이라도 건네준 냉이가 감사하다.




윤동주는 눈 오는 겨울, 누나에게 우표도 붙이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눈 한 줌을 부치고 싶다 했는데, 나도 누가 냉이 향 한 줌 봉투에 가득 넣어 부쳐주었으면 좋겠다. 냉이 향 한 줌, 달래 향 한 줌, 개나리 한 줌, 진달래 한 줌... 누가 나에게 봄 향기 한 줌을 편지로 부쳐주면 좋겠다.


<사진 출처: 나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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