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우산이 되어 주는 것이 늘 좋기만 할까?

by 나무향기

비가 오는 날의 풍경은 한국과 호주가 많이 다르다. 한국은 비가 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산을 쓴다. 호주는 비가 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를 그냥 맞는다. 비가 오는 날 하늘에서 내려보면 한국은 갖가지 색의 우산이 꽃처럼 피어날 텐데, 호주는 그런 풍경은 없다. 아주 가끔 우산 쓴 사람을 구경하게 된다.


한국은 비가 와도 밖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많고, 산성비를 맞으면 좋지 않기 때문에 비를 피하기 위해 우산을 꼭 챙겨 쓰지만, 호주는 산성비 걱정을 하며 비를 피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비 맞는 걸 꺼리지 않는다.


호주에 살면서 나도 변했다. 한국에선 비 좀 맞으면 머리가 홀딱 다 빠져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이 있었는데, 호주에서는 비를 맞는 것이 낭만적인 일이 되었다. 나도 풀이 되어 쑥쑥 자랄 것만 같은 설렘이 있다. 아들들은 비 맞는 걸 좋아해서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뒤뜰로 나가 비에 샤워를 한다. 비를 흠뻑 맞고 비 샤워를 하면서 행복해하는 표정을 보면 나도 행복해진다.


비는 꼭 피해야 하는 것일까? 물론 비를 맞으면 젖은 옷을 다시 빨아야 하고, 젖은 몸을 다시 말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하지만 비를 흠뻑 맞아본 사람은 비 맞는 순간의 희열을 놓치고 싶지 않다. 비를 흠뻑 맞고 나서, 옷과 몸을 말리며 집 안에서 빗소리를 듣는 즐거움을 놓치고 싶지 않다.



<오늘 아침 찍은 사진>

비가 내리다 해가 나기라도 하면 큰 선물을 받게 된다. 무지개다. 오늘 아침 비가 쏟아지더니 해가 살짝 나자 쌍둥이 무지개가 우리 동네에 내려앉았다. 날 보고 환히 웃는 것 같다. 비가 와도 괜찮다고, 해가 다시 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따뜻한 선물을 내게 건네주는 것 같다. 무지개는 그런 존재다. 비가 올 때 희망의 한 줄기 빛이 나타나면서 위로를 건네는 그런 선물이다.


힘든 일이 생기면 내 머리에 비 한 방울도 안 묻히려는 우산부터 펼치는 사람들이 많다. 굉장히 방어적이고, 고통에 대한 두려움, 피해에 대한 공포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우산을 써도 비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수직으로 떨어지기만 하지 않고 옆으로도 들이치는 게 비니까. 비가 위에서 아래로만 쏟아지는 게 아니라 사선으로 내리기도 하고, 땅에 떨어진 비가 튀어 오를 수도 있는 법이다. 우산을 아무리 널찍한 걸 썼다 해도 비는 나에게 닿기 마련이다.


우리가 만나는 고난과 시련을 막으려만 하지 말고 그 안에서 우리를 성장시킬 무언가를 얻고 즐길 여유가 필요하다. 뜻하지 않은, 예기치 못한 일들이 닥친다면 패닉 하지 말고, 오롯이 그 비를 맞아 볼 필요도 있다. 비를 맞아본 사람만이 비를 맞으며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듯, 어려움을 경험해 본 사람만이 인생의 카타르시스를 알게 된다.


어렸을 적 난 엄마가 우산을 학교로 가져다준 적이 없다. 우산을 챙겨가지 못한 건 내 책임이었고, 비를 맞는 것도 내 몫이었다. 물론 친구와 우산을 나눠 쓰며 집에 가기도 하고, 책가방을 뒤집어쓰고 집에 가기도 했지만, 그래서 난 비 맞는 소중함을 알게 된 것 같다. 젖은 옷을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지붕이 있는 집 안에 있을 때 느껴지는 안온함은 나에게 삶의 동력이 되었다. 어렸을 땐 다른 부모님들은 우산을 들고 교실 밖에서 기다리는데, 보이지 않는 우리 엄마를 불평하며 속상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갔을 때 맞이하는 따뜻함에 속상했던 마음도 순식간에 녹아버렸다.


누군가에게 우산이 되어주기보다, 내리는 비를 온전히 맞고 즐길 힘을 기르게 해 주고 싶다. 비를 맞고 나서 느끼는 희열을 전해주고 싶다. 그리고 해가 떠오르면 무지개가 나타나듯, 인생의 무지개는 비 온 후 맞이하는 것이라 알려주고 싶다.


나의 자녀에게 일어나는 모든 불행을 내가 막을 수 없다. 어떤 때는 옆에서 지켜보고, 우산 없이도 책가방으로 비를 가렸던 어린 시절 나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어려움에 대처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더 좋은 교육이 될 수도 있다. 부모라면 일일이 우산으로 비를 가려주기보다, 비를 맞고 온 아이를 토닥여 주는 따뜻함으로 위로와 격려를 베풀 수 있다. 그리고, 비가 온 후엔 어김없이 해가 나고, 가끔은 무지개 같은 선물이 주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려 줄 수 있다.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보호가 아니다.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을 기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지개 희망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다.


<처음 사진출처: 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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