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린 땅에 뒹구는 건 더럽고 미친 짓이고, 눈 내린 땅에 뒹구는 건 낭만적이고 설레는 일이다.
비는 시끄럽게 내려도 자취를 감추지만, 눈은 소리 없이 내려도 자신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비를 반기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눈을 반기는 사람만큼 많지는 않다.
비는 사시사철 언제나 내리지만, 눈은 오로지 겨울에만 볼 수 있다.
비는 형체를 관찰하기가 힘들고, 눈은 형체를 관찰할 수 있다.
비는 쌓이지 않고 흘러가지만, 눈은 쌓여 그 자리에 있다.
비는 시원해도 더워지지만, 눈은 차가워도 따뜻하다.
비는 색깔이 없지만, 눈은 자신의 색깔이 있다.
그래서 눈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하지만 비와 눈은 알고 보면 같은 존재다. 구름 안에 있던 얼음 알갱이들이 내려오다 따뜻한 곳을 만나면 비가 되는 것이고, 따뜻한 곳을 못 만나면 눈으로 그대로 떨어지는 것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인생과 어찌 이리 닮았을까?
우리는 모두 똑같이 사람으로 태어난다. 알고 보면 모두가 같은 존재다. 수정란으로 있을 때는 구름 안의 얼음 알갱이처럼 모두가 똑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그 수정란이 태어나는 곳은 다 다른 환경이다. 유복한 환경에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마치 구름 속 얼음 알갱이가 따뜻한 곳을 만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한 것처럼, 누구는 좋은 환경에 태어나기도 하고, 누구는 그렇지 못한 환경에 태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비가 되기도 하고, 눈이 되기도 한다.
비라고 좋을 것도 없고 눈이라고 나쁠 것도 없다. 비처럼 따뜻한 곳을 만나 유복하게 태어난 사람들이 모두가 따뜻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눈처럼, 따뜻한 곳을 만나지 못했어도 아름답게 커가는 사람들도 많다.
비라고 나쁠 것도 없고, 눈이라 좋을 것도 없다. 추적추적 내리던 비도 누군가에겐 단비가 되기도 하고, 아름답게 내리는 눈도 누군가에겐 치워야 하는 눈더미가 될 수 있듯이 말이다.
하지만 인생이 그러하듯, 신은 모든 것에 공의를 심어두셨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더 많이 힘써야 하고 더 많은 수고를 해야만 한다. 좋은 환경이 꼭 좋은 사람이 되는 환경은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다 해도, 그것이 좋은 사람이 되는 환경이 될 수는 있다. 인생의 역경을 이겨낸 사람은 더 둥글둥글하고, 사려 깊은 사람으로 성장해 가기 쉽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헤아리는 넓은 마음을 더 갖기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비보다 눈을 더 좋아하듯, 비 같은 사람보다는 눈 같은 사람을 더 좋아한다. 좋은 환경에서 편히 자라 다른 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면 누군가의 옆에 오랫동안 있어 줄 수 없다. 소란스럽기만 하고 알맹이가 없기 쉽다. 화려해 보이지만, 따뜻함은 결여되기 쉽다. 하지만 어려운 환경에서 힘겹게 살아온 이들은 그만큼 누군가의 옆을 지켜줄 힘이 있다. 조용하고 말 없어도 아름답게 내 옆을 지켜준다. 소박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따뜻하다. 자신의 하얀 마음을 누군가에게 전해 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 된다.
모두가 똑같이 태어난 같은 존재다. 한 끗 차이로 누구는 좋은 환경에, 누구는 그렇지 못한 환경에 놓이게 되지만, 내가 아름다운 존재가 될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비로 태어나도 단비가 될 수 있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눈처럼 아름다운 존재가 될 수 있다. 나는 어떤 비가 될 것인가? 어떤 눈이 될 것인가?
알고 보면 한 끗 차이인데 내가 비로 태어났다고 어깨 힘줄 필요도 없고 내가 눈으로 태어났다고 어깨 늘어뜨릴 일도 없다.
하지만 슬픈 것은 눈이 온 후 비가 내리면 눈은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비가 눈을 덮어버리면 눈은 자취를 감춰버린다. 슬픈 일이다.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비 같은 사람들이 눈 같은 사람을 가리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비 같은 사람들이 눈 같은 사람의 존재를 무참히 무너뜨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각자의 모습으로 아름답게 남아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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