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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향기 Jul 04. 2022

나에게 수필이란


소려 작가님은 ‘시인은 시간의 마디에 언어를 숨겨 놓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시인은 숨바꼭질을 하고 시를 읽는 사람은 숨은 시인의 언어를 찾아내야 한다.  


그렇다면 시와 다른 수필은 어떤 것일까?


수필은 부유하는 나의 생각을, 무의식에 갇혀 있던 나의 생각을 찾아내어 풀어놓은 것이라 하겠다. 수필은 숨바꼭질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손이 가는 대로, 자신이 잊고 있었던, 세상에 잊힌 이야기를 내 삶의 사소함 속에서 찾아내어 언어로 풀어놓은 것이라 하겠다. 수필은 솔직하다. 그래서 자신을 감추지 못하고 드러낸다.


하지만 수필은 낙서가 아니다. 나만 느끼자고 쓰는 글이 아니다. 나의 생각을 읽는 이와 연결하기 위해 쓰는 글이다. 부끄럽고도 못난 나를 드러내도 위로를 받을 수 있음에 글을 쓴다. 혼자 쓰고 버리는 낙서가 아니라 버린 내 마음도 주워 담아 써 나가는 소중한 글이다.


수필은 형식이 자유롭다. 자유로운 형식만큼 소재나 내용도 자유롭고, 자유로운 날개를 단 글이다. 자유로운 그 날개는 누구의 마음에나 닿을 수 있고, 어디에고 다다를 수 있다. 그래서 누구나 써보기를 시작할 수 있는 글이고,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다.


수필은 사람의 마음을 치료하는 힘이 있다. 수필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 바로 이 점이다. 써 나가면 어느새 내 마음도 정화되고, 정화된 마음이 글로 나타나니 타인의 정화 과정을 보는 독자의 마음도 정화될 것이다. 나의 글에 공감해 줄 누군가가 있다는 느낌은 나를 치유하는 힘이 컸다. 오랫동안 달고 살았던 스트레스성 질병들이 없어지고 있다. 병원에도 가보고, 한의원도 가보았지만 별 수 없었는데, 글을 쓰고부터 어느 순간 병들이 사라지고 있다. 신기한 경험이다. 수필은 나에게 약이 되었다.


사실 글을 아예 쓰지 않고 지낸 것도 아니다. 일기는 꾸준히 써 왔다. 하지만 내가 쓴 글들을 누군가가 읽어줄 거라는 설렘을 가지고 수필을 쓰는 것은 나의 감정을 토해내는 일기와는 사뭇 달랐다. 나의 마음과 누군가의 마음을 같이 아우를 수 있는 글을 쓴다는 것, 나의 눈빛과 독자의 눈빛이 서로 만나는 지점의 글을 쓴다는 것은 나에게 소풍처럼 설레기도 하고 연인을 만나는 것처럼 짜릿하기도 하다.


수필은 사소한 것으로 시작하지만, 작가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담는 글이다. 사소해 보이지만 크고, 가벼워 보이지만 묵직함을 담은 글이다. 하찮아 보이지만 귀하고, 흔해 보이지만 작가의 개성이 묻어나는, 반전의 모습을 담고 있는 글이라 하겠다.


내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동생이 한 말이 있다.


"아주 조그만 시골 마을 몇 안 되는 애청자들을 위한 라디오 방송처럼, 누나도 그렇게 누나의 글을 좋아해 줄 그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쓰기 바래."


수필은 내게 그런 것이다. 나를 담은 글을 썼다면 그 글이 인기를 얻든, 외면을 당하건 개의치 않고 나를 담은 글을 썼음에 만족하기로 했다. 나를 담은, 날 닮은 내 글을 읽어 줄 소중한 독자를 위해 나는 오늘도 수필을 쓴다.


(사진 출처:  lovepi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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