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직원과 긍정적으로 의사소통하는 방법
바야흐로 '야근'을 시키기도 당당하게 '야근'을 하기도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직장인의 저녁 있는 삶을 존중하는 정서가 뿌리내렸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면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조직 내에서 성과에 민감한 리더들의 입장에서는 조금은 불편하게 세상이 바뀐 것도 사실이긴 하다.
그렇다면 '야근'은 부정적인 측면만 있을까?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이 '야근'이라는 개념도 나쁜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다녔던 회계법인과 컨설팅 회사에서는 소위 이른바 '월화수목금... 금... 금'이었다.
이러한 경험은 회식 자리를 즐겁게 하기 위한 '야근 무용담'으로도 활용되지만, 업무를 막 시작하는 새내기 후배들에게도 진지한 조언의 한 테마로 활용되기도 한다.
직장 생활을 한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 했던 '야근'이 항상 불필요했던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에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시행착오를 겪고 고민한 결과, 현재 '회계전문가'라고 나름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나 자신이 되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고리타분하다고 볼 수 있지만 '야근'을 통해 자기 계발을 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당시에도 '야근'을 하면서 몇 번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기도 했으며, '정말 이렇게 사는 게 맞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했던 것 같다. 또한 생각해보면 '야근'도 나 자신의 위치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이유로 진행되었던 것 같다. 때로는 클라이언트에게 보여주기 위한 야근을 한 적도 있었으며, 상사의 어거지(?)에 따른 소위 '삽질'이라고 생각되는 야근을 한 적도 있었다. 또한, 프로젝트 리더로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야근도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업무에 익숙하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한 야근도 있었다.
'야근'을 죄악시하는 이 시점에서 '야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좀 그렇지 않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특히나 조직의 리더 입장에서는 성과 때문에 스스로 '야근'을 하거나 어쩔 수 없이 부하직원에게 '야근'을 요청해야 하는 경우가 없을 수는 없지 않을까?
이번 칼럼에서는 '야근'과 관련하여 가능한 조직의 리더와 부하직원 간에 긍정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가능한 조직 내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하고자 한다.
부하직원과 직장 상사 중, 누가 더 자발적인 야근을 많이 할까?
당연히 직장 상사가 자발적인 야근을 더 많이 할 수밖에 없다. 직장 상사의 경우 부하직원보다 책임이 더 막중하기 때문이다. 자영업을 운영하는 사장님이나 기업의 오너 같은 경우에는 Work와 Life의 구분이 없다. 삶이 바로 업무이고, 업무가 바로 삶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필자가 알고 있는 그룹사의 오너 분은 24시간을 쪼개도 부족하다고 한다. 오전에는 한국과 아시아의 경영 현황을 점검하고, 오후에는 유럽 그리고 늦은 저녁에는 미주를 챙겨야 하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전쟁이라고까지 이야기한다.
자영업을 운영하는 사장님이나 기업의 오너에게 이러한 생활이 가능한 이유는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일이라는 목표가 분명(목표뿐만 아니라 성과도 포함되겠다)하며, 권한과 책임이 막중하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도 직위가 올라갈수록 이러한 권한과 책임이 막중해지기 때문에 자발적인 야근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부하직원에게는 어떠한 목표와 권한 그리고 책임이 주어지지 않는 환경에서 업무를 강요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조직의 리더는 부하직원과 충분한 목표의 공유가 필요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에 맞는 권한과 책임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고객사의 임직원분 들 중에 종종 이러한 공유 없이 '요즈음 사원들은 책임감이 없다며' 혀를 차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우를 범하는 것은 본인이 '꼰대'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입사 초기에 필자는 여느 회계사와 다르게 프로젝트성 업무에 자주 투입되었다. 동기들에게는 '회계감사'가 아닌 '컨설팅'이라는 생소한 업무를 한다며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문제는 그 당시에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오늘 내가 야근을 할지 말지를 그리고 주말에 나올지를 말지를 당일 저녁이 되기까지 알 수가 없다는 거였다.
한 번은 소개로 만난 친구를 두 번째로 만나기로 했었다. 토요일 오후 6시였기에 부담 없이 약속을 정했다. 문제는 그날도 해당 프로젝트 때문에 회사에 출근했고 저녁 6시에도 업무는 끝날 줄을 몰랐다. 조급한 마음에 프로젝트 리더에게 외할머니 칠순(두 번째 칠순?)이라며 거짓말을 하고 회사를 나왔는데, 프로젝트 리더가 저녁 8시 전에는 복귀하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야근'에 해야 하는 목표를 공유했다면 두 번째로 할 일은 업무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 지를 전체적으로 설명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하직원에게 스스로 자율성을 부여하여 해당 업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야근'을 알아서 조절하도록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도 중요한 대화 방법 중 하나이다.
'야근' 자체도 스트레스겠지만 스스로의 업무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도 부하직원에게는 자과감 또는 반발감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야근'을 하더라도 조직 내 리더는 스스로의 일정을 알아서 조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반하여 대개 부하직원은 상사의 눈치를 보며 불필요한 '야근'을 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따라서 급박한 경우가 아니라면 - 예를 들어, 내일 오전에 당장 회장님이 보고서를 가져오라고 오늘 저녁에 요청한 사항이 아니라면 - 업무 진행 방향과 과정을 공유하고 부하 직원 스스로 업무를 조율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모든 야근이 그러하듯이, 불합리하거나 불필요한 경우도 존재한다. 이런 경우 억지로 '야근'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미화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예전에 고객사 임원 중 한 명은 부하직원에게 자신의 경비 전표를 작성하도록 하면서 미안했던 지 '경비 전표 프로세스를 Training 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며 미화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부하직원은 눈에 봐도 뻔한 거짓말이라는 사실에 어이없어했으며, 사내에서 이슈화로 번졌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 해당 임원은 여러 가지 업무들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것 같다. 따라서 경비 전표 조차도 스스로 작성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경우 차라리 부하직원에게 이래저래 일이 바쁘니 대신 경비 전표를 작성해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면 어땠을까? 아무리 눈치 없고 배짱이 좋은 부하직원이라도 정중한 임원의 부탁에 쉽게 거절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마찬가지로 때로는 합리적을 부여할 수 없는 '야근'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조직의 리더와 부하직원 간에 솔직한 대화가 오가는 것도 중요하다. 너무나 불공평하고 부당한 요구가 아니라면 부하직원도 업무 지시를 따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애덤 그랜트 교수는 그의 저서 '기브 앤 테이크'에서 '사회성을 중요하게 여겨야 직원의 능력을 이끌어 내고 발전시킬 수 있다'라고 한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애덤 그랜트 교수의 말에 따르면 제약회사 영업 사원들에게 약을 많이 팔 때마다 성과급을 지급하는 것보다, 그들이 파는 약을 먹고 질병을 이겨내고 있는 환자들을 직접 만나게 해주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필자의 친구 중에 소위 널널하게(?) 직장을 다니다가 새로 옮긴 직장에서 빡시게(?) 일하는 친구가 있다. 가끔 필자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매일 되는 야근에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필자는 그 친구를 놀리면서 '다시 예전 직장으로 돌아가면 어떻겠느냐'라고 하면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한다.
예전 직장에서는 목표도 공감도 권한도 부여하지 않은 채 기계처럼 일했기에 자신이 멀하는 지 조차 잘 몰랐다고 한다. 그에 비하여 현재 직장은 뚜렷한 목표와 목적이 주어졌기에 최소한 답답한 마음으로 일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물론 지금 직장이 100% 만족스럽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어떤 의미인지는 알기에 답답함은 없다는 것이다.
많은 경험과 지식이 결국에는 직장생활에 무기가 된다는 신념이 있는 필자이기에 '야근'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만 너무 강조되고 있는 것 같아 잠시 다른 생각을 해보았다.
이 글을 읽고 필자를 야근을 옹호하는 '꼰대'라고 오해하는 일이 없기를...
필자도 야근보다는 아이에게 동화책 한 권을 더 읽어주고 싶은 게으른 아빠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