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집단지성 (Collective Intelligence)'란 용어가 엄청 유행한 적이 있었다.
미국의 곤충학자 윌리엄 모턴 휠러가 1910년에 출간한 "개미: 그들의 구조 발달 행동"에서 처음 제시한 개념으로, 휠러는 혼자서는 존재감이 미미한 개미가 공동체로서 협업하여 거대한 개미집을 만들어내는 것을 관찰하면서 집단으로서는 높은 지능 체계를 형성한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피터 러셀, 톰 애틀리, 하워드 블륨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하였으며, 제임스 서로위키는 '특정 조건에서 집단 내부의 가장 우수한 개체보다 집단의 지능이 보다 높다'라는 이론을 제시하고도 하였다.
요약하자면, 개인들이 각자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함께 문제를 해결하면 시너지 효과가 발휘된다는 의미라고 보면 될 것 같다. 해당 이론이 우리나라에 소개되면서 많은 회사에서 경영기법에 도입되기 시작했다. 회의 시간에 다양한 분야의 부서원을 모아놓고 토의를 하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혜안을 얻기도 하였다.
필자가 알고 있는 경영 사례로 오래전에 발명된 '통돌이 세탁기'가 있다. 당시 세탁기는 가운데 있는 세탁봉이 돌면서 세탁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당시 세탁기에 대한 기술회의를 하면서 영업사원(?)이 세탁봉이 아니라 세탁하는 통 자체가 돌면 안 되냐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해당 아이디어는 당시 세탁기 개발을 주도하던 공학도들에게는 너무나 어이없는 제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세부 검토를 통해 통 자체가 도는 것이 더 효과적인 세탁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발명된 것이 '통돌이 세탁기'라고 한다. 해당 모험담은 집단 지성이 기존 사고의 틀을 깰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할 수 있다는 경영사례로 종종 회자되곤 한다.
하지만 '집단 지성'을 남용하여 오히려 불건전한 기업문화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잘 들은 칼은 유용하기도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내 몸을 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장 쉽게 범하는 오류 중 하나가 '회의 결과를 실행할 담당자를 지정하지 않은 일'이다.
다양한 분야의 담당자들과 회의를 하게 되면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게 된다. '집단 지성'이라는 환상에 빠져 실속 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오갈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는 의미 없는 다양한 이야기가 오갈 경우도 많다. 그리고 한 번의 회의로 끝나기보다는 다음 회의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회의 결과를 정리하고 다음 회의로 이어지도록 Leading 하는 담당자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회의 결과를 실행하려면 실행 주체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회의 결과를 정리하고 leading 하는 담당자가 정해지지 않는다면 어떨까? 만약 관련 회의를 진행하면서 임원이 '누군가가 회의 참석자들이 협의한 결과를 정리해서 공유해달라'라고 하면서 누군가를 지정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문제는 자신의 성과와 연계가 없다면 서로 간에 눈치만 볼뿐, 아무도 그 누군가가 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임원이 회의 시간에 '자 그럼 누가 할 거죠?'라고 하는 순간, 회의 참석자들이 고개를 땅바닥으로 떨구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그리고 회의 결과를 기반으로 실행을 할 때도 '회의 참석자들 중에 협의해서 담당자를 정해달라'라고 한다면 그 또한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는 참사가 발생하리라는 것은 뻔한 일이다. 성과와 연계가 없다면 말이다.
두 번째로 범하는 오류는 집단지성을 활용한 회의를 '아이디어 모으는 회의'에 국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집단 지성'이 효과를 발휘하는 회의는 대부분 새로운 Project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으는 경우이다. 업무에 대한 시작단계이므로 업무 실행에 대한 제한이 적으며, 새로운 발상도 충분히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를 모으는 회의 중에 'Brainstorming'이라는 기법이 있다. 해당 기법의 룰 중에 하나가 회의에 참석한 팀원 각자가 발표한 아이디어의 단점을 지적하거나 반대되는 의견을 해서는 제시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단점을 지적하거나 반대의견을 제시하면 충분한 아이디어를 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집단 지성'이란 이러한 환경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다.
하지만 업무를 실행하는 단계에서는 '집단 지성'의 장점이 쉽게 발휘되지 않는다. 실행 단계에서는 기존에 진행된 업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단계이다. 따라서 기존의 프레임을 깨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또한 논리적으로는 당연하지만 업무적인 제약으로 단점을 유지한 채로 진행되어야 하는 업무도 발생하게 된다. 하지만, '집단 지성'이라는 미명 하에 너무나 많은 아이디어가 쏟아진다면 회의의 진행이 어려운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특히나, 실행단계 회의에서는 명확한 실행 주체가 존재한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 자신의 업무가 아니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의 발언권이 많은 것도 다 이런 이유이다. 아무리 실행하기 어려운 아이디어를 제시해도 자신의 업무로 돌아설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제시하기가 부담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 회의 시간에 이런 분들은 얄밉기까지 하다)
그동안 리더십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생뚱맞을 수 있는 '집단 지성'의 이야기를 쓴다고 의아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집단 지성'이라는 미명 하에 리더로서의 의사결정을 미루거나 회피하는 관리자들에 대한 불만들을 종종 듣곤 한다. 온갖 회의에 유관부서 담당자들을 모아 놓고 비효율적인 회의들이 벌어지는 모습도 종종 목격한다.
기업 컨설팅을 하면서 가장 애를 먹는 업무 중 하나가 정확한 유관부서를 찾는 것이다. 회의 때에는 그렇게나 많은 분들이 참석했지만 실제 자료를 요청하거나 실행 단계에 들어가면 담당자를 찾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요즈음에는 많은 기업들이 회의를 가능한 적게 그리고 짧게 가져가는 경향이 있다. 회의를 통해 얻는 것도 많은 반면 불필요한 시간낭비도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