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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Aug 20. 2019

여보, 나 1년만 쉴까 #13 무인도 수탉에게 당하다!

일과 질병이라는 일상에서 휴식과 치유 및 힐링에 관한 연재

봄 꽃이 만발한 무인도 전경, 지중해에 떠있는 이태리나 그리스의 섬들보다 아름답고 황홀하였다.


개도 외로움을 탄다.

     

간밤의 구들장의 호사는 모처럼 편안하고 곤한 잠을 잘 수 있었다. 다행히 아랫목이 아니어서 온도도 적당하였다. 얇은 모포 한 장으로 이불을 대신하였다. 잠들기 전에는 그 이불을 덮은 기억이 있었지만 아침에는 걷어찬 상태였다. 가장 아랫목은 피디님이 잤던 자리였다. 너무 뜨거워서 잠을 설친 얼굴이었다. 일어나서 이부자리를 개고 대충 청소를 마친 다음 밖으로 나왔다. PD와 감독은 이미 관리소장과 함께 누룽지로 아침을 먹고 있었다. 거기에는 나와 같은 동네에 사는 조연출 아가씨도 포함되어 있었다. 조연출 아가씨는 여사장님과 다른 방에서 같이 잤다. 소녀 같은 앳덴 얼굴로 목소리가 말고 청아한 아가씨다. 성격도 차분해 보여서 호감이 가는 사람이다.

     

나는 평소 아침을 먹지 않는 관계로 아침식사 대신 커피를 마셨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대피소의 풍광에 반하고 말았다. 커피를 마시다 말고 나는 휴대폰을 챙겨서 연신 사진을 찍기 시작하였다. 얼마 전 시작한 블로그에 올려서 자랑할 심산이었다. 내가 이렇게 멋진 곳에서 잤다고 자랑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콩닥거렸다. 이렇게 사소한 일에도 내 가슴이 콩닥거리는 경험은 거의 없었다. 마당 앞은 절벽이었고 바다의 파도가 바위를 공략하기 바빠 보였다. 절벽 아래라 파도가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소리로 파도의 크기와 반도를 가늠해볼 뿐이다. 식사가 끝나고 촬영 팀은 숙식비를 계산한 다음 총총걸음으로 체험 팀의 숙소인 야영장으로 내려갔다. 나는 무단 침입자처럼 살짝 끼어서 잤기 때문에 그리고 아침식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비용이 공짜였다. 물론 공짜는 나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나의 비용 문제는 그렇게 커피와 대화 속에 흐물거리다 사라졌다.

     

세면과 양치질을 하고 나서 소장님께 한 가지 부탁을 드렸다. 간밤에 방전이 된 노트북 충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노트북을 충전하려면 발전기를 돌려야 했다. 발전기를 돌리려면 경유가 필요했다. 나의 우울한 얼굴 표정을 보시더니 발전기 스위치를 켜신다. 나는 노트북을 발전기 옆의 플러그에 꼽는다. 염치없음을 알기에 살짝 눈치가 보였지만 그렇다고 오늘 하루 글을 쓰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인도에서 발전기를 돌려 나의 노트북을 충전하는 모습, 발전기를 돌리려면 비싼 기름을 사용해야 한다.


일반 전기와는 달리 발전기를 돌려 노트북을 충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전기가 약해서인지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그 사이 소장님과 여사장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내 커피 잔이 빈 것을 확인한 소장님은 커피를 연신 타 주셨다. 나는 커피를 마시는 중간에 대피소 집을 몇 바퀴 둘러보았다. 정말 아름다웠다.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섬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나는 그 경치에 취해 공격자를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탉이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나의 종아리를 사정없이 쪼아대며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제법 아팠지만 상처까지는 나지 않았다. 어제는 검은 머리 물떼새들에게 무시를 당하였는데 오늘은 개도 아니고 수탉한테 공격을 당하는 수모를 당하였다. 나는 아무런 위협적인 행위를 한 적이 없었다. 알을 품고 있는 암탉 사진을 찍으려고 다가선 것이 화근이었다.

          

우리 집 고양이부터 어제 만난 검은 머리 물떼새는 물론 수탉까지 나를 대우해주기는커녕 우습게 보고 심지어 공격하려 들기까지 하였다. 나는 그렇게 동네북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은근히 화가 나서 수탉에게 복수할 생각을 해보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어서 이내 포기하고 만다.

     

개는 물론이고  고양이도 사람 못지않게 외로움을 탄다. 


나는 노트북이 충전되는 3시간 동안이나 수탉의 경계 속에 소장님 및 여사장님과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내려가도 당장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오히려 여기에 머무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다행히 두 분이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계셔서인지는 몰라도 말벗이 되어주셨다. 소장님께 수탉 이야기를 하자 이미 대부분의 사람이 수탉에게 한 번쯤은 혼이 났다고 하며 웃으신다. 그러면서 2마리의 개 이야기를 하셨다. 안타깝게도 2마리 다 섬에서 병사했다고 한다. 한 마리가 아파서 죽자 다른 한 마리도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고 하신다. 개도 외로움을 탄다고 하신다. 그것도 많이 탄다고 한다. 개가 외로워서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소장님의 생각일 뿐이다. 한 마리가 병사하자 나머지 한 마리가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기 때문에 외로움 때문에 죽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세상에 외로움을 타는 동물은 인간뿐인 줄 알았다. 그런데 동물들도 외로움을 탄다고 한다. 내 커피 잔에 커피가 떨어지자 소장님은 또 물을 끓인다. 그리고 또 한 잔의 커피가 나온다.

나를 경계하고 심지어 공격까지 했던 무인도 대피소 수탉의 늠름한 모습, 그래 너 잘생겼다....


금융조합과 인쇄소 아들

     

소장님은 고향이 군산이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때 금융조합에 다녔다고 한다. 금융조합을 그만두고는 인쇄소를 했다고 하며 그 시절을 회상하였다. 그 당시의 군산은 큰 도시였고 많은 물자가 배를 통해 일본으로 반출되는 항구였다고 한다. 그래서 군산이라는 항구도시는 번영을 누렸고 많은 일제의 잔재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금융조합에 다니면 거의 최고의 직장에 다니는 것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인쇄소도 상당히 번영하였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6.25 전쟁이었다. 전쟁으로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소장님은 제법 나이가 들어 보였다. 하지만 나이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이미 월출산 암자에서 어느 불자님께 수모를 한번 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장님은 15세 때부터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평생을 힘든 노동을 하며 살아서인지 손은 거칠었고 몸은 탄탄해 보였다. 그럼에도 지적인 풍모를 풍기고 있었다. 얼굴에서는 아무런 욕심도 묻어나 보이지 않았다. 월출산 암자의 그 노인 불자와는 달라도 너무 달라 보였다. 세상 풍파를 겪은 이야기를 두 분이 번갈아가며 하신다. 내 나이에도 벌써 많은 풍파를 겪고 있는데 저분들이야 오즉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지혜가 쌓이면 좋은데 아집으로 꽉꽉 뭉친 노인들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고 애써 잊어보려 하지만 탐욕스러운 얼굴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나는 관상을 볼 줄 모른다. 하지만 인상이나 얼굴의 표정만 보아도 대략적인 인생을 알 것 같다. 나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젊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기꾼은 사기꾼이 먼저 알아보듯이 꼰대는 꼰대가 가장 잘 알아보는 법이다.

     

무인도 대피소 앞마당과 바다, 저 테이블에서 커피를 6잔이나...., 산토리니보다 아름다웠다


어깨 골절

     

소장님은 또다시 커피를 타 주신다. 벌써 많이 마셨다. 그러면서 자신의 인생사를 고백하듯이 쏟아내기 시작한다. 말수가 적은 분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많은 것들을 쏟아 내신다. 그것도 처음 보는 타인 앞에서 친구에게 말하듯 쏟아낸다. 거기에는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한 것이 발단이었다. 누구나 나이가 들어가면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죽음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세상에 없다. 어차피 우리는 소멸되고 사라져야 할 존재이다. 천년만년 살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소장님은 참 순박하고 담백하게 말을 이어간다. 대부분이 고생한 이야기다. 지금 대피소 뒤에 짓고 있는 민박집도 본인의 경험인 노동일을 살려서 직접 하고 있었다. 노동일 이야기가 나오다가 갑자기 어깨를 만지신다. 어깨가 아픈 모양이다. 나의 커피 잔이 비워지자 다시 커피를 타 주신다. 물은 반쯤 식어 있었다. 커피를 마시는 기분보다는 아침부터 술을 마시는 기분이다. 그렇게 나의 커피 잔이 비어있는 법이 없었다. 미지근한 아메리카노 커피가 다시 나오고 마당 끝의 나무를 가리키며 저 나무가 원흉이라고 한다. 저 나무 가지를 베다가 나무에서 떨어져 어깨뼈가 많은 조각으로 부서져 버렸다고 하였다. 갑자기 수원의 고향 친구 생각이 났다. 인생에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죽음이 눈앞에서 유혹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 한 치 앞도 바라볼 수 없는 인생이기에 더욱 힘들다. 거기에 드라마보다 더한 반전들이 수시로 일어난다. 그 반전 속에는 관계의 반전까지 동반된다. 그 드라마틱한 반전들 속에서 상처를 주고받는다. 그렇게 난 생체기들 몇 개쯤은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 타인은 관계 맺음에 따라 지인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온다. 차라리 타인으로 남아있을 때가 좋을뻔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수원의 친구도 비닐하우스에서 떨어져 몸의 대부분의 뼈가 골절되고 장기가 손상되는 고통을 겪기도 하였다. 지금은 기적처럼 살아났지만 당시에는 모두가 죽는 줄 알았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너무나 불확실하고 너무나 미약한 존재일 뿐이다. 이제라도 욕심을 버리고 무인도처럼 그렇게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묵직한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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