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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Aug 21. 2019

여보, 나 1년만 쉴까? #14 무인도에서 사막을 보다

일과 질병이라는 일상 속에서 휴식과 치유 및 힐링에 관한 연재



양조장집 딸

     

금산은 인삼으로 유명한 곳이다. 여사장님은 바로 그곳이 고향이라고 하셨다. 어렸을 때는 양조장집 딸로서 상당히 유복한 생활을 하였다. 여사장님과의 대화는 끊이지 않고 지속되었다. 성품이 말하기를 좋아하셨다.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처럼 느껴졌다. 소장님과 여사장님은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다. 그래서 단둘이 대피소에 있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섬사람들에게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험담을 당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미리 선을 그으셨다. 그리고 이전에는 그런 소문 때문에 고통을 당한 이야기까지 하신다. 섬사람들의 특징부터 장단점을 일목 요연하게 말씀하시는 능력이 탁월하다. 말을 잘하는 것도 있지만 많이 그리고 길게 한다. 이런 분들의 특징을 보면 한이 많이 쌓인 분들이다. 억울한 일도 많이 당하고 살았다. 그러면서 은근히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나도 이분과 같은 스타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반성까지는 아니다. 승봉도 선착장에서부터 첫날 나물을 가져다줄 때까지 많은 이야기를 하셨다. 심지어 본인이 무엇 때문에 우울증을 앓았는지까지 이야기하였다. 소장님 못지않게 굴곡진 인생을 살아내고 있었다.

     

어려서의 유복함은 그분에겐 자랑이었다. 머슴들을 두었고 술도가인 집은 늘 바쁘게 돌아갔을 것이다. 우리 집도 방앗간을 하였기에 대충 이해가 간다. 그러한 삶의 추억들은 나이가 들면서 유독 나이에 민감해진다. 나보다 10살이나 위인데도 아직 나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스스로 고백한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젊게 보아주는 사람에게 고마워하고 뭐라도 하나 더 주려고 한다. 농담이라도 좋으니 노인들을 대할 때는 그렇게 약간의 거짓말을 하라고 충고까지 하신다. 물론 나의 월출산 사건을 듣고 하시는 말이었다. 그 사이 소장님은 내 커피 잔을 다시 채워주셨다. 노트북은 아직 25%도 충전이 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작게 들려야 할 발전기 소리가 오히려 크게 들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미안해서라도 그만 충전하겠다고 하였다. 노트북 하나 충전하려고 계속 기름을 낭비할 필요까진 없을 것 같아서였다.

     

소장님은 기름 값 안 받을 테니까 걱정 말라고 하신다. 나는 느닷없이 다시 수탉의 공격을 받고 혼비백산 도망친다. 수탉의 부리는 제법 날카롭고 힘이 있었다. 닭을 보면 항상 생맥주가 생각났는데 그 보복을 당하는 모양이다. 아무튼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러니 제발 그만 공격해라. 너까지 나를 무시하면 나는 더 이상 살아갈 힘이 소진되고 말 것이다.  




친구의 남편

     

여사장님이 가장 힘들어했던 이유는 남편 때문이었다고 한다. 두 집 살림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남편을 이해하고 용서하기까지의 과정에는 너무나 큰 고통이 응축되어 있었다. 후기 청년들이 왜 그 시기에 심한 고립감을 느끼고 탈출구를 찾아 나서는지 모르겠다. 나도 그러한 경험이 있었다. 세상을 더 이상 살아갈 에너지가 방전되어가는 그 느낌을 글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존재의 이유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었다. 존재할 가치를 찾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나로 인정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나 자신도 나를 토닥여주지 못하였다. 그렇게 무인도에 고립된 후기 청년들은 외로움이라는 절벽 위에 서 있었다. 비상구를 찾아 나서지 않으면 극단적인 길을 택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불안이 엄습해 왔다. 아니 그 마저도 내 의사나 의지와는 상관없었다. 어쩔 수 없는 외길 수순이었다. 바둑으로 치면 외통수라고 한다. 왜 유독 그 시기에 그런 감정을 겪게 되는지는 나의 오랜 숙제가 되었다. 누군가에게 무엇으로 인정받는 것도 물론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 스스로 자신을 믿고 자신을 이해하지 않으면 나를 사랑해줄 사람을 찾아 나서는 길밖에는 없다. 사랑을 갈구하는 그 마음은 애완동물이 사랑을 받는 그런 행위와 별반 다르지 않다. 정말 가슴 뛰는 사랑이 필요해서 두 팔 벗고 나서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후기 청년들은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범위는 제한되어 있다. 사랑하는 여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이지만 자신을 이해해주고 사랑해줄 그런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스테로이드성 진통제 같은 것이다. 진통제는 일시적인 처방에 불과하다. 미봉책일 뿐이지만 당시에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진통제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된다.

     

여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분은 지금도 같이 살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벌써 어느 정도 그 이야기를 글로 써 두었는데 드라마가 나오는 바람에 집필을 포기했다고 하였다. 제목은 친구의 남편이었다고 하였다. 지금도 여러 가지 사업을 활발하게 하시며 당당하게 살고 있었다. 여사장님과 소장님 때문이라도 조만간 다시 사승봉도에 다녀올 예정이다. 민간 어선을 빌려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제법 많이 드는 게 부담이다. 하지만 거기에 가서 며칠이고 구들장 방에 장작불을 지피며 지내보고 싶다. 유유자적하며 시간의 굴레에서 해방되고 싶다. 내 직업상 글을 쓰기에는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섬으로의 이사도 고려중이다. 하지만 교통이 불편해서 아직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바다를 정말 좋아하는지도 의문이다. 그래도 일단 살아볼 수 있으면 한 달이든 두 달이든 살아보고 싶다. 그래도 좋으면 전입신고를 하고 이사를 하고 싶다. 무인도와 먼저 동거 후에 나중에 결혼하고 싶다.

     

         

 


무인점포

     

우리가 1박 2일 무인도 체험을 한 사승봉도라는 작은 섬은 사유지이다. 사유지는 개인이 허락 없이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관리소가 있고 소장님이 근무를 한다. 여사장님은 해변을 임대해서 캠핑장 사업을 하고 있었다. 여사장님은 낮에는 섬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퇴근한다고 한다. 그 퇴근길이 좀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본인이 없으면 야영객들은 좋은 텐트부터 취사도구까지 가져간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절도라는 범죄행위를 그렇게들 자연스럽게 한다는 것이다.

     

사유지에 있는 남의 물건을 가져가는 행위는 절도이고 범죄다. 감시 카메라가 없기 때문에 가져가도 잡을 방법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1년 내내 지키고 있을 수도 없다. 야영객들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내가 외국에서는 무인점포도 많이 운영된다고 하자 고개를 저으신다. 아직 한국에서는 무인점포가 운영되기는 어렵다고 단정해 버린다. 그 단정이 월출산 암자에서 만난 노인의 단정과 다르지만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소장님은 또 커피를 채워주신다. 6잔째인 거 같다. 오늘 밤 잠은 다 잤다. 카페인으로 배를 채우고 있는 중이다. 벌써부터 걱정이다. 두 분 모두 너무 좋으시고 인정이 넘친다. 처음 보는 공짜 손님에게 극진한 대접을 해주신다. 계속 대화를 이어가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해 보여서 안쓰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외로움은 그렇게 섬의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사막처럼 광활한 해변에도,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의 수평선에도, 외로움은 무질서하고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그래서 아침의 대화는 더욱 충만하게 이어져 갔다. 커피를 계속 마셔서인지 배가 고파서인지 몰라도 속이 아려왔다. 노트북은 절반도 충전이 되지 않았다. 나는 발전기 스위치를 꺼달라고 요청하고 노트북을 배낭 속에 넣고 하산 준비를 하였다. 수탉이 길목을 떡하니 지키고 나를 응시한 채 서 있었다. 하는 수없이 나는 편한 길을 피해 가파른 산길을 넘어가는 수고로움을 택하였다. 그렇게 소장님과 여사장님의 대화는 나의 휴대폰 메모지에 촘촘하게 채워졌다. 그렇게 단어로서 메모되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외로움과 관련된 파생상품들이었다.

     

두 분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길을 재촉한다. 수탉은 여전히 대문 쪽 길목을 서성이며 나를 째려보고 있다. 말이 대문이지 문 자체도 없다. 그런데도 문을 가로막고 서있다. 통닭에 생맥주를 마실 때마다 수탉의 얼굴이 떠오르면 어떡하나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아름다운 풍광을 가진 대피소에서 내려오니 한창 마지막 촬영이 진행되고 있었다. 미안했지만 나는 체험 팀 멤버로 마지막 촬영에 합류했다. 카메라를 의식해서 약간 오버를 한 것 같아 속이 오글거리며 좋지 않다. 내가 나오는 방송을 직접 보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많이 하였는데 벌써부터 긴장되고 오금이 저린다. 그 어색함을 어떻게 참아가며 볼까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촬영이 끝났다. 한 시간 정도의 휴식을 취한 후 주변 정리를 하였다. 얼마가 지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제 우리를 해변에 내려두고 줄행랑쳤던 그 어선은 다시 해변에 사다리를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 어선을 타고 승봉도 선착장에 내려졌다. 만선에 가까웠지만 생선이 아닌 인간들이 내려졌다. 승봉도에서 다시 큰 배로 갈아탔다. 자월도를 경유한 배는 얼마 후에 커다란 무인도에 도착하였다. 그 무인도 입구는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이었다. 무인도에서 다시 무인도 여행이 시작된 나는 그렇게 길을 잃었다. 일행은 주차장에서 서로의 섬으로 다시 흩어졌다.

 



마음속의 사막

   

무인도와 TV 촬영은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내가 원한다고 될 일도 아니었고 내 의지가 앞선다고 갈 수도 없었다. 그렇게 우연히 찾아온 기회는 커다란 행운이었다. 출발 전에 갈까 말까를 두고 오락가락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지만 그 또한 나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세상과 철저하게 격리된 무인도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이 오래전부터의 로망이었다. 그런데도 막상 떠남을 두고는 치열하게 고민하였다. 그 이유는 무인도에 가서 단지 생존만 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무인도에 가면 더 큰 무인도가 보일 것 같았다. 그 무인도는 서울이라는 무인도였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정확하게도 서울은 철저하게 격리되고 고립된 인간 관계망이 상실된 무인도였다. 의미 있다고 생각했던 관계의 망들은 이미 파도에 휩쓸릴 만큼 취약하거나 쓸모없는 것들이었다. 그런데도 그것을 버리지 못한 채 부여잡고 살아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무인도의 해변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은 마음속의 또 다른 무인도를 발견하였기 때문이었다. 그 무인도는 섬도 서울도 아닌 마음속의 사막이었다. 그 사막에는 오아시스 조차 없었다. 그 무인도에서는 길이 없어서 길을 잃을 수도 없었다. 사막에는 사막의 모래폭풍이 한번 지나가면 지형이 바뀔 정도로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후기 청년기는 그렇게 복잡하고 다양하게 나를 옥죄어 들어왔다. 정말 무서운 것은 진짜 무인도도 서울이라는 무인도도 아니었다. 마음속의 사막이었다. 길이 없는 사막에서 갈팡질팡하는 나이 든 청년들은 퇴로를 찾아 나설 수밖에는 없다. 그 퇴로는 어디에도 이정표 조차 없다. 알아서 찾아야 한다. 그래서 힘들고 그래서 외롭고 그래서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 힘든 시기를 지나오고 나니 많은 생채기와 함께 영광뿐인 상처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한 경험조차 아픈 과거의 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아팠고 그렇게 망가졌다가 그렇게 다시 돌아왔다. 이러한 과정을 겪는 후기 청년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7년 전의 나는 그렇게 선로를 벗어난 열차가 되어 꼼짝달싹하지 못하였다. 이제는 궤도에 올라 자유롭게 달리고 싶다. 이정표가 없어도 좋다. 누구의 어떤 존재가 아닌 나의 나로서 그렇게 자유롭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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