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런던남자 Sep 04. 2019

갑자기 영정사진이 찍고 싶어졌다.

나는 병원 유목민이다 #2 다발성 경화증 이야기

다발성 경화증      


“약도 없고 완치도 안 되고 어떻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직접 경험한 분의 증언 같은 다발성 경화증의 정의다. 의사들이 정의한 내용과는 좀 다르다. 13년째 다발성 경화증 환자를 돌보고 있는 분과의 전화통화를 통해서 들은 내용이다. 13년의 경과를 듣고 통화를 마무리하며 그분은 울먹이셨다. 그 순간적인 울먹임에는 많은 감정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분의 고단한 삶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환자도 힘들지만 그 가족이 감내해야 할 고통은 오히려 환자 이상일 수도 있다. 물론 가장 힘들고 괴로운 사람은 환자 자신일 것이다. 울먹이면서도 오히려 나를 위로하고 계셨다. 나는 어떠한 말로도 위로를 해줄 수 없었다. 이제 생을 마감할 단계까지 온 환자를 위해 내가 위로해 줄 수 있는 적합한 단어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언어라는 것의 한계를 절감하며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춘천의 모 카페에서 하루 만에 책 쓰기를 하다가 받은 전화였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는 아직 정확한 병명도 진단도 받지 못하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고 있다. 병원 유목민 생활이 허리에서 머리 그리고 온몸의 신경으로까지 확대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100세 시대의 50은 이제 겨우 후반전을 막 시작하는 나이다. 그런데 나에게 찾아온 사지 무감각증과 눈의 문제는 다발성 경화증과 너무 유사하였다. 하지만 다발성 경화증의 특징 중의 하나가 환자마다 미세하거나 아니면 다르게 증세가 나타난다고 한다. 다발성 경화증이 아닌 새로운 종류의 돌연변이 질환일 수도 있다. 벌써 3군데를 전전하였지만 의사들도 모두 다른 소견을 보이고 있어서 나는 더욱 혼란스럽다.    





 항상 삶과 죽음을 생각하고 글로 써서 정리하던 차에 가족들의 연이은 죽음을 접하였다. 가족, 심지어 어머니의 죽음에도 눈물을 밖으로 내보내지 못했던 나였다. 여러 질병으로 우울한 나날을 보내면서도 글을 쓰면서 치유를 하던 차에 나의 몸은 죽음을 직감하는 또 다른 공격을 당하고 있다. 두 달 전에 반신으로 시작된 무감각증이 한 달 후에는 머리 그리고 다시 전신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말았다. 육체의 신경다발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정신이 발끈하고 더 예민해진다. 어떠한 경우에도 다발성 경화증이 아니기 만을 바랄 뿐이다. 외과와 정형외과 정신과만으로도 버거운데 신경과까지 나를 괴롭힐 줄 몰랐다. 현재로서는 내과 쪽은 들여다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니체는 말했다. “질병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마치 예수님이 하신 말씀처럼 니체의 말들은 나의 뇌리에 맴돌며 나는 니체에 탐닉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병원 유목민이 되면서 나는 다시 일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질병이 자유롭게 해 준다는 의미의 재해석이었다. 질병으로 인해 건강의 소중함을 생각하고 열심히 사는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자 니체의 말들도 공허하게 들리기 시작하였다. 그만큼 나는 흔들리고 있었다. 죽음에 대해 처연하고 묘비명까지 써둔 나도 어쩔 수 없는 동물성 생명체였다. 물론 식물이라고 죽음이 반갑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래전부터 나는 죽음을 늘 달고 살았다. 우울증이 심할 때는 아침에 눈을 뜨면서 잠들 때까지 죽음만을 생각했을 정도로 죽고 싶은 날의 연속이었다. 단지 우울증 하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여러 생각의 고리들이 뜨게 질처럼 원활하게 한 코 한 코 매듭을 지으며 연결해 가다가 어느 순간 그 매듭이 꼬이기 시작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생각의 종착역은 묘하게도 죽음이었다. 왜 그렇게 죽고 싶었는지는 의문이다.      




다발성 경화증이 워낙 생소한 병이라 그 병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 아무리 들어도 무슨 박사학위 논문에서나 볼 수 있는 용어들이 등장하고 동양인에게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희귀 질환이다 보니 환자를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운 좋게도 글로 맺어진 지인의 도움으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의사들도 모르는 살아있는 13년간의 임상정보들이었다. 가족들에게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지만 그러한 사례들이 모아져서 소중한 참고자료가 되게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길만이 희귀 난치성 질환자와 가족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될 것이다. 나 같은 환자들은 바다 한 군데서 표류하고 있는 상태다. 지푸라기를 잡아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마음이다. 참 인간의 간사하고 가소로운 면을 어쩜 이렇게 스스로에게 발견하게 되었는지 의문이다. 나는 오늘도 인간의 이중성을 가지고 표류하고 있다.           




골에 가면 노인들뿐이다. 노인들 방의 TV 위에는 영정사진이 걸려 있다. 우리 시골집에도 아버지 영정 사진이 두 개나 걸려 있다. 수의까지 준비해놓은 분들도  많다. 그렇게 노인들은 자신의 죽음에 의연해지려고 애쓰고 있었다. 나도 오늘 문득 영정 사진을 찍고 싶었다. 내 나이에도 그냥 찍어주는 곳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시골에서 50이면 청년 취급도 못 받는다. 그래도 미리 찍어놓고 100세는 아니어도 욕심을 내어 80 정도까지는 살아보고 싶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서울 선정릉 [모두의 캠퍼스] 강의 신청하기  월출산 국립공원 카페 [기억] 강의 신청하기

작가의 이전글 나에게 브런치는  고시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