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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Sep 08. 2019

이혼은 처음이라서요 #7 타로점 너마저도

사랑이 떠나간 공간은 더 이상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고 말았다.

두 개의 태풍


태풍 링링이 막 지나간 일요일 오후였다. 카페 근처에서 점심식사를 하러 허름한 집을 찾다가 드디어 수제비집을 발견하였다. 부부가 운영하는 테이블 3개 정도의 작은 집이었다. 간판은 예전에 쓰던 중국집 간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 집에서 가장 비싼 6천 원짜리 들깨수제비를 시켜서 먹었다. 반찬은 김치 하나 달랑 나왔다. 감자와 호박이 들어간 들깨 수제비는 지금 까지 그 어디서도 먹어본 적이 없는 천상의 맛이었다. 애당초 기대를 하지 않아서 사진을 찍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요즘, 입맛이 없어서 그리고 매운 음식을 먹지 못해서 식사 시간마다 고역이었다. 언제부터 한국인들이 이렇게 맵게 먹었는지 모르겠다. 최대한 덜 맵게 해달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매워서 먹을 수가 없는데 그게 가장 덜 매운맛이라며 오히려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기 일쑤다.


맵지 않은 감자 들깨 수제비 한 그릇은 어제의 태풍으로 만신창이가 된 내 마음을 위로해 주고도 남았다. 어제는 최악의 토요일이었다. 밖에서는 태풍 링링이, 카톡에서는 아내로부터의 핵폭탄급 태풍이 나를 상하좌우로 흔들어 재끼고 있었다. 이미 무너진 심리적 방어선에서 내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내를 달래서 다음 주라도 법원에 달려가서 이혼 서류에 서명하고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겠다고 답변을 하였다. 카톡에서의 몇 차례 태풍이 지나가자 나는 녹초가 되고 말았다. 몸이 아프다는 사실은 차라리 축복이었다. 아픈 마음을 부여잡고 흐르지 않는 피를 닦아야 하는 일은 언어라는 단순한 문자로는 형언할 수 없었다. 아니, 피가 어디에서 어디로 흐르는지도 알 수 없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울렁거려 바람이라도 쏘이고 들어와야 살 것 같아 밖으로 나갔다. 상당히 늦은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한강변을 무작정 걸었다. 비는 오락가락하였다. 바람도 제법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태풍이라는 것을 증명하려 들었다. 그래! 차라리 나를 저 깊고 깊은 암흑의 강물 속으로 날려다오! 라며 바람에 미친놈처럼 헛주먹을 날려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목만 아프고 다리 힘까지 풀려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행히 궂은 날씨 탓에 주변에는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아니 수많은 개미들이 단체 관람을 하며 나를 비웃었는지도 모른다.




타로점을 보다


맛있는 들깨 수제비를 먹고 나오는 길에 유명한 구리 곱창골목이 있다. 그 시작 부분에 타로 5천 원이라는 광고가 A4용지에 적혀 있었다. 노안이지만 멀리 있는 글씨는 잘 보인다. 차라리 그냥 못 보고 지나갔으면 좋았으련만......, 나는 그 미끼에 낚여 타로점집으로 빨려 들어갔다. 미끼를 물고 만 것이다. 그 안에는 젊고 후덕해 보이는 아가씨처럼 보이는 여인이 앉아 있었다. 신내림을 받았다는 보살님이었다. 5천 원이어서 들어왔다고 했더니 그건 학생 요금이고 성인은 만원이란다. 그것도 어느 한 분야만 보는 가격이었다. 인생 전체를 다 보려면 5만 원이라고 하였다. 나올까 말까를 잠시 망설이다가 그럼 만 원짜리 한 가지만 보는 것으로 하였다. 물론 나는 가정 문제를 봐달라고 하였다. 타로점은 쌀로 보는 줄 알았는데 카드로 보고 있었었다. 카드를 섞는 손놀림이 다소 엉성해 보였다. 저런 실력으로는 라스베이거스는 고사하고 강원랜드에도 취직하기 힘들어 보였다. 


잘 섞어놓은 카드는 3장씩 총 3번을 뽑았다. 첫 번째 세장을 뽑기 전에  가족의 생년월일을 물어보았다. 나는 아무런 힌트도 주지 않으려고 나름 노력하였다. 하지만 나와 아내와의 성격차이 문제를 나보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심지어 아내가 앓고 있는 병명까지 맞추고 있었다. 그 겉을 겉궁합이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그 겉궁합이 너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쉰다. 나는 태연한 척하며 그런대로 우리는 문제없이 잘 살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두 번째 세장을 뽑았을 때는 주로 아이 이야기를 하였다. 아이가 왜 남자고 하나인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움찔하였지만 여전히 연극배우처럼 평상심을 유지하며 어떠한 맞장구도 치지 않았다. 아이는 24세까지는 펜을 잡아야만 한다고 했다. 무슨 뜻이냐고 했더니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나이까지 공부하지 않는 남자들이 얼마나 될까? 대학생이라면 거의 그 나이를 넘길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장을 뽑았을 때는 다시 부부 문제로 돌아왔다. 놀랍게도 갑옷을 입은 장군이 칼을 들고 내려칠 준비를 하는 카드였다. 결단의 순간이 왔고 이혼 직전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순간 모든 피부의 세포들이 일제히 귀를 쫑긋하며 보살님의 입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아내의 모질고 매몰찬 성격을 이야기한다. 그러지 않으면 아내는 살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의 고통을 받기 때문에 아내는 이혼을 서두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치 어젯밤 우리의 카톡대화를 엿본 사람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표정관리를 하였지만  더 이상은 불가능하였다. 나는 무신론자일 뿐만 아니라 어떠한 토템이나 샤먼도 믿지 않는다. 나는 기꺼이 만원을 내고 또 오겠다고 하였다. 물론 연락처도 받아왔다. 때가 오긴 왔나 보다!라고 체념하며 타로점집을 나서는데 그 기분이 너무도 묘해서 씁쓸한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논리가 맞다면 결혼 전에 언제쯤 이혼할지까지 알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궁합 또한 마찬가지다. 우주의 기운으로 개인의 사사로운 성격이나 관계까지 파악할 수 있는 논리를 반박하지 못하고 조용히 빠져나왔다. 그나마 위안은 올해 12월쯤 나에게 금전적인 대운이 터진다는 말에는 솔깃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우연치 않은 타로점으로 나는 어제 맞이한 두 개의 태풍을 한꺼번에 보낼 수 있었다. 타로점!!! 은근히 매력 있고 중독성이 생긴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서울 선정릉 [모두의 캠퍼스] 강의 신청하기  / 월출산 국립공원 카페 [기억] 강의 신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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