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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Aug 30. 2019

이혼은 처음이라서요! #5 반쪽 인생도 인생이었다

사랑이 떠나간 공간은 더 이상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고 말았다

민들레 홀씨들은 각자의 여행을 떠나려고 준비 중이었다.


사랑이 떠난 자리의 공허함

     

벌써 가족과 4년 이상의 별거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 아내와 아들이 한국에서 3년의 휴양 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영국에서 둘째 아들 단오와 둘이 지냈다. 물론 단오는 사냥하는 검은 고양이다. 여름방학에는 아내와 아들이 런던 집으로 와서 지냈고 크리스마스 휴가 때는 내가 한국 집으로 가서 지냈다. 한국에서도 영국에서도 우리 부부 사이에는 찬바람만이 그 사이의 간극을 유지시켜 주고 있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나는 대도 아내는 결코 반가워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 혼자 일방적으로 반가워할 만큼 용기도 배짱도 사라져 갔다. 가족이라는 유기체의 첫 번째 조건은 사랑이었다. 하지만 사랑이 떠난 자리는 늘 쓸쓸하고 적막하기만 하였다. 그러면 그럴수록 간극의 어색함이 더욱더 우리 부부를 각자의 코너로 몰아가고 있었다. 남편의 카리스마를 보여 주기는 고사하고 늘 아내로부터 지적을 당하고 때로는 무시를 당하였다. 하지만 내가 화를 낼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 나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화를 내거나 심하게 다투는 일만은 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버지가 살아온 방식이었기 때문에 그 방식은 내가 가장 증오하는 그리고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일단 부부싸움이 시작되면 나는 무조건 참는 입장이었다. 욕은 고사하고 심지어 야! 하고 소리 한번 지르지 않았다. 그렇게 참고 살아온 세월은 고스란히 담배연기처럼 허공에 뿔뿔이 사라질 뿐이었다. 그 연기의 존재는 흩어지는 순간 어떠한 여운도 남기지 못하였다. 

     

한국이나 영국이나 사랑이 떠나간 집이라는 공간은 더 이상 집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집의 형태만 유지할 뿐 사람이 사는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모든 것이 허무하고 의욕이 상실되어 갔지만 나름대로 살아갈 이유를 찾아야 했다. 어차피 반쪽 인생도 인생이었다. 그 인생마저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한편으로는 내 인생이 참 불쌍하고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물론 그 사이에 낀 채 내색도 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아들에게는 더욱 미안할 뿐이었다. 매일 행복하고 화목하게 살아도 하루가 짧고 인생이 짧은데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간극이 멀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 간극은 대서양이나 태평양보다 넓어 보였다.

     

연애 시절의 아내와 나로 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를 수도 없이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갈 수도 없고 언제까지 그 시절만 회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내로부터 사랑을 받고 아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그런 평범한 아빠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리고 그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 결혼이라는 제도에 합의를 하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결혼은 덫이었다. 그것도 아주 치명적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덫을 놓은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그 덫에 걸려든 사람도 물론 나였다. 

     

사랑이 떠나간 자리에는 공허를 넘어 피폐한 공간일 뿐이었다. 물론 그 사랑이 떠나가게 한 장본인은 나일 것이다. 제대로 남편 노릇하고 아빠 노릇을 하였더라면 과연 아내의 사랑이 떠나갔을까?라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사랑이 떠난 간 자리에는 메아리조차 남지 못하고 흐느적거렸다. 그 메아리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공간이라는 낯선 장소에서 엉거주춤 서성이며 눈치를 볼뿐이었다.




무늬만 부부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이 자신들의 체면이나 위신 때문에 이혼하지 못하고 쇼윈도 부부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때로는 그러한 사람들의 인생을 한탄하며 왜 저렇게 살까를 걱정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런 일이 나에게도 닥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내가 그런 생활을 하면서 비로소 그 사람들의 인생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혼하고 싶어도 서로의 필요에 의해 정략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이고 다음이 정치적인 이유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 반대일 확률이 훨씬 높을 수도 있다. 우리의 정서는 아직도 정치인이 이혼해서 혼자 살거나 재혼하면 하자가 있는 것처럼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내 주위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 무늬만 부부이고 실제로 부부생활은 하지 않는 부부들이다. 이혼이 단순한 문제가 아니어서일 수도 있고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서일 수도 있다. 부부간의 문제는 부부만 안다고 한다. 부모나 자식도 알지 못하는 것이 부부간의 문제일 것이다. 무늬만 부부로 살든 진짜 부부로 살든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복하려고 연애하고, 행복하려고 결혼하고, 행복하려고 아이 낳고 기르면서 멋진 보통의 가정을 꿈꾼다. 쇼윈도 부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러려면 나를 포함한 남편들이 정신 차리고 아내들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사랑이 도망가지 못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은 언제든 보따리를 쌀 준비를 하고 있다.

     



사랑은 움직이는 걸까?

     

나의 관심사는 사랑에 관한 정체성이었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일보다 더 아름다운 일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세상에 사랑이 사라진다고 가정해보자.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질까! 남녀 간에 연애가 사라지고 그 결과 결혼이 사라지면서 아이가 더 이상 태어나지 않게 된다고 가정을 해보자. 지구는 불과 100년 정도를 버티다 인간이 없는 행성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인간이 없는 행성이 된 지구는 식물과 신들만이 남게 될 것이다. 이처럼 사랑은 모든 것을 지탱하고 이어주는 원동력일 뿐만 아니라 인간 개인들의 성욕 및 종족번식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지구를 지켜내는 것은 그러한 본능적인 욕구의 결과물이다. 처음부터 지구를 지켜내려고 사랑을 하고 종족번식을 위해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렇게 중요한 사랑이 가만히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달이 지구의 괘도를 돌듯 사랑도 궤도를 따라 돌고 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사랑하던 연인이 결혼해서 잘 살다가 이혼을 하고 또 다른 사랑을 찾아 나서는 일은 상대성 이론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혼이라는 절차 앞에서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비열하기 그지없는 인간으로 변하는 모습은 마치 사랑이 떠나간 사람들의 모습을 굶주린 독수리나 하이에나로 만들고도 남는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사랑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생각하니 씁쓸하기만 하다. 아내 입장에서 또는 남편 입장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질러도 용서하고 삶을 이어가려면 사랑이 남아있어야 가능하다. 하지만 사랑이 번 아웃된 상태에서 결혼생활을 지속할 원동력은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다음 단계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혼이라는 절차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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