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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Aug 25. 2019

이혼은 처음이라서요 #4 지나버린 사랑의 유통기한

사랑이 떠나간 공간은 더 이상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고 말았다.

1100번 버스를 타는 포스코빌딩 앞의 버스 정류장 광고사진


사랑의 유통기한

     

마트에 가서 쇼핑을 하다 보면 반드시 확인하는 것이 있다. 바로 제품의 유통기간이다. 특히 식료품은 유통기한이 중요하다.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먹으면 탈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된 재고들을 자꾸 앞으로 꺼내놓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객들은 이 사실들을 알기 때문에 일부러 안쪽에 있는 제품을 꺼내는 센스를 발휘한다. 물론 나도 그랬다. 누구나 신선한 제품을 원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우리가 연인을 사귈 때도 이러한 유형의 행동을 한다. 미래의 배우자감이 얼마나 오래 사랑을 유지할 수 있을지 나름대로 보이지 않는 유통기한을 가늠해보는 것이다. 성격을 파악하면서 나오는 일종의 심리 분석이 될 수도 있다. 치열한 밀당을 통해 탐색전을 하는 것은 동물과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그들보다 훨씬 더 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탐색전을 거쳐 비로소 사랑하는 사이가 되면 그다음부터는 세상에 보이는 게 없어지는 단계로 넘어간다. 이미 콩깍지가 쓰인 사람에게 안목이라는 것을 기대하기란 애당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되어 간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현실이고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란 위험천만한 리스크를 늘 등짐처럼 지고 살아가는 것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렇다고 그 리스크가 무서워 사랑을 피해 갈 수 도 없다. 자석에 빨려 드는 쇠붙이들이 리스크를 따질 겨를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사랑은 시작되고 발전한다. 고리타분하게 이제 와서 사랑을 정의할 생각은 없다. 각자의 주관에 따라 사랑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사랑도 예외일 수는 없다.

     

연애시절을 거쳐 결혼에 이르는 시기에도 물론 다투기도 하고 싸우기도 한다. 하지만 결혼을 해서도 사랑은 영원하리라 믿는다. 결혼식에서도 수많은 하객 앞에서 그렇게 서약한다. 사랑의 유통기한은 의심할 여지없이 죽을 때까지 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안타까운 일이다. 죽을 때까지 서로 사랑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리 녹녹지 않다. 특히 아이가 생기고 육아문제에 직면하면서 첫 번째 위기가 온다. 두 번째 위기 또한 육아문제이다. 모든 가정 문제는 육아문제에서 비롯되고 아내는 육아를 중심으로 가정을 경영한다. 그 과정에서 가정 내의 남편들의 역할은 거의 없다. 없는 게 아니라 하지 않을 뿐이다. 밖에서 열심히 기계처럼 돈을 벌어다 주는 걸로 그 역할을 대신한다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물론 요즘은 남편이 육아휴직을 내는 경우도 많아지는 추세이다. 실제로 주변에도 그런 젊은 아빠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사랑의 유통기한은 보통 신혼이 끝나고 육아에 돌입하면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죽을 때까지도 소위 말하는 금슬이 좋은 부부도 많다. 그런 노부부를 보면 부러움을 넘어 존경스러워지기 까지 한다. 사랑의 위대함을 몸소 실천하고 보여주는 성인 같은 분들이기 때문이다. 나의 꿈도 그런 것이었다. 죽을 때까지로 사랑의 유통기한을 잡아 놓았던 것이다. 하지만 20년도 채우지 못하고 그 유통기한은 끝나고 말았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그 많은 부부들이 사랑해서 결혼하는데 왜 이혼하는 것일까? 점점 높아지는 이혼율과 1인 가족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결혼 생활을 직접 해본 사람으로서 느낀 점은 사랑으로 극복할 수 없는 문제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좀 더 넓게 보면 모두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들이기도 하다. 진짜 문제는 부부간의 끊임없는 소통이다. 소통이 되지 않으면 사랑은 거기서 멈출 수밖에 없다.

     

100세 시대를 맞아 이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30세에 결혼한 커플의 경우, 사랑의 유통기한은 70년이다. 특별한 사고나 질병 없이 100세까지 산다면 이 부부는 70년 동안을 같이 살아야 한다. 아무리 부부라지만 70년을 같이 산다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청소년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궁금해진다.

 



사랑이 있기나 한 걸까?

     

이혼을 논하면서 우리는 서로를 적군 대하듯 하였다. 피아식별 띠만 안 했지 정말 적군이었다. 서로의 아픈 곳을 찔러댔다. 반박에 대한 반박은 점점 험악해졌고 사례도 최악의 경우들이 동원되었다. 나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 또한 마찬가지리라! 항상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문제를 제대로 판단할 수가 있기 마련이다. 결혼생활 내내 나는 아내와 최소한의 소통만 하고 있었다. 정말 중요한 속내를 들어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이 배려라고 생각하였지만 아내는 무관심으로 받아들였다. 아주 작은 일도 방심하면 눈덩이처럼 커지기 때문이다. 특히 아프다는 이야기를 하면 굉장히 예민해지고 험악해진다. 그래서 아프다는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는다.

     

요즘은 내가 처한 사랑의 속절없음과 허무함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이처럼 의미 없고 세상에서 최악의 관계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연애시절의 그 아름다운 사랑은 어디로 간 것일까? 그 아름다운 사랑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그 사랑은 아직도 진행 중이고 유지되었을까? 그 아름다운 사랑은 어디로 증발해 버린 것일까? 과연 사랑의 진정한 조건은 무엇일까? 그리고 왜 사랑은 생활의 파고를 넘을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을까? 사랑의 힘이 이토록 약하다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다. 아니라면, 애당초 잘못된 탐색전이었고 잘못된 만남이었을까? 어느 가수의 빠른 비트의 강렬한 노래가 예리한 비수가 되어 가슴에 구멍을 낸다. 그 구멍으로는 여지없이 바람이 지나가며 상처들을 자극해댄다. 그 빠른 멜로디와 발악하는 듯한 절규의 "잘못된 만남"이라는 노래가 말이다.

     

요즘 생각은 한발 더 나아간다. 정말 사랑이라는 것이 있기나 한 것일까? 서로 간에 익숙해질수록 사랑도 익숙해져야 하는데, 그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 옮겨간다. 남편에서 자식으로 말이다.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에 비해 남편에 대한 사랑은 간헐적이거나 아예 없어져 버린다. 남편의 존재는 돈이나 벌어오는 기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웃인 일본도 상당히 심각하다. 남편과 아내가 생각하는 결혼 생활의 간극은 태평양이나 대서양보다 더 넓고 크다. 특히 육아 문제가 관련되면 대부분의 아내들은 흥분하기 시작한다. 남편이라는 존재 자체를 인정하려 들지도 않는다. 황혼이혼이나 졸혼이 일본에서 오래전부터 유행처럼 번진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그만큼 집안일 중 육아는 힘든 일이다. 거기에 직장생활까지 병행하는 아내의 스트레스를 남편들이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의 부재로 발생하는 문제는 오랫동안 방치된 채로 곪아 터질 날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오즉하면 남편에 대한 복수를 평생 기획하고 실천하기까지 한다. 그 복수중 하나가 남편이 죽으면 화장해서 그 유골함을 지하철 선반에 두고 내리는 것이다. 

     

가끔은 사랑에 대해 지독할 정도로 깊게 생각해보곤 한다. 그 생각은  현재 살고 있는 땅을 파고들어 지구 반대편의 아르헨티나나 우루과이 어디쯤에서 고개를 내밀 정도로 집요하고 악착같다. 과연 사랑이라는 것이 있기나 한 것일까? 사랑의 진실은 무엇일까? 왜 연애할 때의 사랑이 결혼해서 육아를 시작하면 변해버리는 것일까? 천사나 보석 같은 선물이 바로 사랑으로 태어난 아이다. 그런데 꿈에 그리던 천사나 보석 같은 아이의 탄생은 잠깐의 행복만을 선물한 후 그 선물을 회수하기 시작한다. 사랑은 상황과 조건에 따라 움직이는 것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 사랑이 남을 가족으로도 가족을 남으로도 만들어주는 마법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 사랑의 회오리에 말려들었다. 이와 정반대로 세월이 흐를수록 사랑이 점점 접착되어 금슬 좋은 부부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밀이 알고 싶어 지는 날이다. 나는 왜 그런 부부가 되지 못하였을까?라는 부질없는 생각은 다시 카페의 유리창을 통과하여 어디론가 유령처럼 떠돌며 흐물거린다. 나는 오늘도 니체를 만나며 나 자신을 탐하고 있을 뿐이다. 나 자신도 알지 못하면서 애당초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사실은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헛발질해 잘못 맞은 공이 골인이 되는 경우처럼 말이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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