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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Aug 11. 2019

이혼은 처음이라서요 #2 당신과 70년을 살라구!

사랑이 떠난 공간은 더 이상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고 말았다.


영국 런던의 길거리 골목 결혼식 모습

법원에서 걸려온 전화

     

며칠째 장마가 지속되고 있는 7월의 끝자락 금요일 오전이었다. 난 데 없는 한통의 전화는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전혀 예상치 못한 일도 아니었다. 아내에게서 이미 문자로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담당 직원은 그전에도 몇 번 나와의 통화를 시도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나의 휴대폰 번호가 바뀌면서 연락이 되지 않아 시간이 지연되었던 모양이다. 내가 아내에게 바뀐 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던 게 문제였다. 한국에서는 자신 명의가 아니면 인증번호를 받을 수가 없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친구가 빌려준 업무폰은 임시용이었는데 1년 가까이 사용하다 보니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내 명의의 휴대폰을 계약하는 과정에서 번호가 두 번이나 바뀐 것이다. 지난주에 바뀐 번호를 아네에게 톡으로 알려주었다. 새 번호는 지체 없이 대사관을 통해 한국의 법원까지 전달되었다. 새 번호를 받은 법원의 직원으로부터 곧바로 연락이 온 것이다. 아내는 한국이 영국처럼 그렇게 느린 나라가 아닌데 이상하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문자에 담아 보냈었다.

     

사실 나는 우편으로 연락이 올 줄 알고 매일 퇴근하면서 우편함을 마치 오래된 습관처럼 체크하곤 하였다. 그러면서 어떤 우편물이라도 있으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사실 서로 간에 이미 이혼에 대해 합의를 했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아내의 마음이 바뀌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럴 확률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이렇게 서로가 오래 떨어져 있으면 그동안의 오해도 풀리고 식은 정도 살아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였다. 하지만 아내 성격상 결정이 번복되거나 새로운 타협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러한 희망은 점점 퇴색되고 빛이 바래갈 뿐이었다. 아무튼 몇 달 동안 우편함을 체크하면서 나도 나름 마음의 정리들을 해 나갈 수 있었다. 어차피 이혼이라는 단어에 서로 합의를 하고 그 방법과 절차까지 논의가 끝난 마당에 다시 미련을 갖는다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희망고문일 뿐이었다. 아내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아내가 이혼을 철회하거나 보류할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어쨌든 이제는 우편함을 더 이상 체크할 필요가 없어졌다. 은근한 스트레스 하나가 줄어든 셈이다.

     

서울 가정법원의 여직원은 이혼 절차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한 후 전화를 끊었다. 정확하게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어차피 두 번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하니 그때 궁금증은 해소될 것이다. 그 두 번의 교육 중 하나는 상담이고 또 하나는 시청각 교육이라고 하였다. 아직 아이가 미성년자여서 3개월간의 숙려기간이 지나야 판사의 최종 판결이 내려진다고 한다. 빠르면 올해 안에 늦어도 내년 초에 이혼이 처리되어 우리는 법적으로 그리고 실제로도 남남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유일한 공통분모라고는 아이의 엄마이고 아빠라는 것뿐이다. 전화를 끊은 후에도 그 여운은 귓전에서 오랫동안 맴돌았다. 숙려기간이라는 말이 내 귀를 관통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머리가 질끈 아프기 시작했다. 귀를 후벼 팠지만 소용이 없다는 사실보다는 아이에 대한 미안함이 더욱 아련해지기 시작하였다. 형제자매나 친척 하나 없는 영국에서 아이 혼자 살아가야 할 일을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물론 엄마도 곁에 있지만 영국에서는 만 18세가 되어 대학을 가면서부터 독립을 한다. 그 독립은 경제 및 주거 문제를 비롯하여 완전하고 자주적인 독립이다.

     

그날 금요일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갑작스러운 전화 한 통으로 내 마음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고 어딘가에 마음을 기대고 싶었지만 마땅한 곳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게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둘 수 있는 방법은 다른 일에 몰두하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강의에 더욱 집중하였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가방을 내려놓고 호프집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생맥주와 옛날 치킨 한 마리를 시켰다. 치킨이 채 나오기도 전에 생맥주 두 잔을 들이켰다. 그리고 나서야 조금 진정이 되었다. 나 스스로의 심리 상태에 당황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주 담담하게 그리고 별일 아니라는 듯이 받아들일 줄 알았는데 막상 그 절차가 진행되자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길이고, 쏟아진 물이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현실 자체를 부정하려 들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었다. 호프 몇 잔으로 해결될 문제라면 세상의 술이란 술은 다 마시고 싶었다. 라스 베이거스를 떠나며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니콜라스 케이지처럼 말이다. 주인공 벤처럼 그렇게 삶을 조용하지만 서서히 알코올 속에 익사시키고 싶었다.

     

이혼을 앞에 두고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생각은 없다. 아직까지는 이혼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회를 비난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나에게 닥치고 보니 많은 후회와 여한이 밀려온다. 좀 더 가정에 충실하고 아내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했다는 반성도 하게 되었다. 나의 입장을 먼저 변명하듯이 이야기하였던 일들도 다 부질없게 되어버렸다. 이혼이라는 것의 실체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두 사람을 가장 먼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아주 복잡한듯하면서도 간결한 법적, 사회적 제도일 뿐이다. 우리는 그렇게 부부에서 남이 될 것이다. 지난 시간들이 헛되지 않도록 모든 것들이 잘 마무리되길 바랄 뿐이다.




제가 이혼은 처음이라 서요!

     

서울 가정법원에서 금요일 오전에 걸려온 전화 통화는 10분 정도 이루어졌다. 담당 여직원은 목소리로 추정해 보아 4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였다. 상당히 침착하고 차분한 말투였다. 일단 신원확인을 한 다음 전화를 건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아내가 영국 주제 한국대사관에 합의이혼신청서를 제출하였고 그 신청서가 양재동에 있는 서울 가정법원으로 넘어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영국으로 가거나 아내가 한국으로 오지 않고서도 이혼 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고 하였다. 거기까지는 아내에게 몇 차례 설명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마치 초등학교 선생님이 학생에게 가르치듯이 주입식으로 주입되어 있었다.

     

이혼 서류가 서울 가정법원으로 넘어온 이후에는 내가 이혼에 필요한 두 가지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고 하였다. 한 가지는 일반적인 이혼과 관련된 내용으로 가능하면 이혼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계도하는 내용이고 또 하나의 교육은 아이가 아직 법적으로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자녀 양육과 관련된 교육이라고 하였다. 이 두 가지 교육을 마치면 3개월의 숙려 기간을 거쳐 판사의 최종 판결이 내려질 수 있다고 한다. 만약 미성년 자녀가 없으면 바로 판결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의미로 들렸다. 하지만 거기까지 물어볼 정신도 필요도 없었다.

     

법원 직원의 설명은 기계음처럼 한 치의 흔들림이나 떨림도 없이 내 휴대폰을 통해 귀로 전달되었다. 하지만 나의 답변들은 우왕좌왕하였고 약간의 떨림까지 감지되었다. 그만큼 나는 당황하고 있었던 것이다. 교육과 숙려기간에 대해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아 다시 설명을 요구하였다. 그런데 여직원은 바쁘다는 듯이 어차피 법원에 오면 다 알게 된다고 하였다. 나도 모르게 지금 알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일었다. 그래서 다시 설명을 요청하였던 것이다.

     

“죄송한데 제가 이혼은 처음이라 서요! 다시 한번만 설명해 주시겠어요? 그리고 언제쯤 법원으로 가면 되나요?” 어차피 7월 말과 8월 초는 법원이 휴정이어서 8월 둘째 주부터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8월 둘째 주에 전화를 하고 예약을 잡은 다음 오라고 하였다. 장소는 양재동에 위치한 서울 가정법원이라고 하였다. 그 와중에도 친절하게 양재동에 가정법원이 있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업무적인 친절함에 감사하다는 뜻을 전하고 통화는 끝이 났다.

     

사실 내가 당황한 이유는 법원이라는 위압적인 장소나 직원의 딱딱한 업무태도 때문이 아니었다. 그동안 막연하게만 생각해왔던 이혼이 막상 발등에 떨어진 불처럼 코앞에 다가와 있다는 현실이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살다 보면 이혼할 수도 있다. 그리고 주변에도 이혼한 친구나 가족들도 많다. 하지만 이는 모두 그들만의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막상 나에게도 이런 일이 닥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다. 나는 그만큼 열심히 살았고 가정에 헌신했다고 착각하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아내와의 관계에서는 오래전부터 문제가 있었지만 그 문제들을 풀려는 어떠한 대화나 시도도 없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제 와서 그러한 문제들을 들춰내서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고 반성하기에는 서로의 신뢰가 이미 붕괴된 상태였다. 어떠한 시도도 더 이상의  의미가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전에 이루어진 대화들은 모두 그런 속내는 꺼내지도 못하고 일상들만을 이야기하는 겉도는 말들뿐이었다. 부부간의 일상적이고 건전한 대화는 가정을 굳건하게 지켜줄 줄 알았다. 하지만 아내는 무서울 정도로 냉정하였다. 20여 년을 참고 기다리며 나의 문제들을 단 한 번도 꺼내지 않다가 마지막 시점에서 모두 꺼내어 빨래 줄에 널듯 널어놓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잘못들은 세상 밖으로 외출을 하게 되었고 마침내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합의 이혼

     

우리는 합의 이혼을 하게 된다. 합의 이혼이란 이미 부부간에 이혼 조건들이 협의되었다는 의미다. 판사의 최종 판결만 나오면 법적으로 이혼이 성립되고 남이 되는 것이다. 이혼 절차가 이렇게 간단하고 남이 되는 일이 이처럼 쉬울 줄은 몰랐다. 모든 원인 제공을 내가 했지만 어차피 인생이나 결혼생활이나 연습이 있을 수는 없다. 돌이킬 수 없다는 의미가 이처럼 강렬하게 압수수색을 위해 들이닥칠 줄은 몰랐다. 많은 부부들이 결혼을 하고 또 그중 많은 부부들은 이혼을 한다. 대부분 "성격차이"라는 두리뭉실한 이유로 이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성격차이란 단어에는 부부만이 아는 심각한 문제들이 숨어있다. 세상에 다 까발릴 수 없는 그들만의 문제들은 부부마다 가정마다 다 다른 듯 비슷하고 비슷한 듯 다르다. 그래서 이혼 문제는 아주 민감하기 때문에 쉬쉬 하면서 공개적으로 언급되는 일이 많지 않다. 하지만 나의 치부 중에서도 가장 민감한 부분이 될 수 있는 이혼을 글로 쓸 수 있는 계기는 용감해서도 객기를 부리기 위해서도 아니다. 이혼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고 이혼을 통해 한 미숙하고 못난 인간으로서의 못다 한 또는 잘못된 도리들을 수정하고 사과하려는데 그 의도가 있다.

     

사실, 나는 젊어서부터 계약결혼에 관심이 많았다. 결혼 제도의 부당함 때문이나 계약 결혼의 신선함 때문 많은 아니었다. 100세 시대를 염두에 두었을 때 한 배우자와 70년을 살 수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사랑의 원리상으로는 한 배우자와 죽을 때까지 같이 사는 것이 맞는 일이다. 그러한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는 완전채가 아니다. 우리는 불완전하고 언제든 마음이 변할 수 있는 그런 나약하고 변덕스러운 존재에 불과하다. 부부간에 사랑이 식을 수도, 사랑이 사라질 수도 있다. 사랑이 떠나간 가정의 풍경은 더 이상 가정이라고 할 수 없다. 물론 아이들이 어리고 북적거리는 식구가 많은 대가족 제도에서는 사랑 없이도 가족의 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었다.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하지만 요즘의 가족제도 하에서는 사랑이 없는 가정이 계속 유지될 확률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사랑이 없으면 정으로 산다는 말도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는 순간 거의 그 가정은 자연스럽게 해체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 나도 그런 경우에 해당된다. 이제 와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일도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서글프지만 엄연한 현실이고 피해 가거나 돌아갈 수 없는 길에 들어선 것이다. 몇 달 후면 성인이 되는 아이에게 미안할 뿐이다. 아무리 성인이 되어도 형제가 없는 아이가 의지할 공간이 엄마 아빠가 같이 사는 가정이라는 공간일 것이다. 그런데 아이에게서 그런 소중한 공간을 빼앗아버린다는 것은 아이의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안겨주는 야만적인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비록 대학에 입학해서 그 공간으로부터 독립을 하겠지만 마음속 안식처인 공간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나 도리가 없다. 어차피 아이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일은 이처럼 단순하지도 간단하지도 않다. 촘촘한 관계의 사다리 속에서 끊어지는 사다리와 계속 이어지는 사다리를 구분해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끊어지는 사다리는 인생에서 의미를 점점 상실해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자간의 혈육이라는 사실만으로 그 끈이 얼마나 오래 지속이 될지는 전적으로 나와 아들 간의 관계 정립과 노력에 달려있다.

     

우리의 경우, 이미 아이가 거의 다 자라서 이혼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리고 이미 4년 이상의 뜻하지 않은 별거로 인해 그 충격도 많이 완화되었다. 그래서 이혼에 대한 합의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사실 어려운 것은 이혼하고 나서 아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의 문제다. 어차피 아내는 아이 때문에 그리고 사업체 때문에라도 앞으로도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은 마주쳐야 한다. 그때마다 아내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아무리 인연이 거기까지라고 해도 모든 잘못은 내가 제공했고 키워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잘못에 관해서는 모든 것은 인정하고 더 이상 거론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것조차도 합의가 되었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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