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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Aug 10. 2019

이혼은 처음이라서요 #1 여보세요! 가정법원인데요!

사랑이 떠난 공간은 더 이상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고 말았다.

<기차의 철로는 서로 늘 곁에 있지만 영원히 만나지 못한다. 운명이고 숙명이다.>


"여보세요! 서울 가정법원 전 OO입니다."


7월의 마지막 주 금요일 오전이었다. 마치 하늘이 분노한 것처럼 아침부터 장맛비를 쏟아부었다. 삼성동 연구소에서 강의를 듣는 날이어서 아침부터 서둘렀지만 다산 신도시에서 탑승한 광역버스는 평소보다 1시간이 더 걸려서야 삼성동에 도착하였다. 반바지에 집에서 신는 슬리퍼를 끌고 나왔지만 그래도 젖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아스팔트로 덮인 도로들은  작은 시내를 이루며 흙탕물을 낮은 곳으로 사정없이 밀어내고 있었다. 폭우가 주는 상쾌함은 피부가 느끼는 감촉만은 아니었다. 신선해진 공기층의 세탁으로 인해 머리도 동시에 그 상쾌함을 즐기고 있었다. 어릴 적 잃어버린 추억과 낭만이라는 보따리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하염없이 창밖의 한강을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연구소 입구에서 습관처럼 2천 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사들고 강의실로 들어섰다.

     

30분쯤 앉아있었는데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받을까, 말까를 망설이다가 나도 모르게 통화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양재동에 있는 서울 가정법원 전 OO입니다. 잠깐 통화 가능하신가요?” 순간 깜짝 놀랐다. 왜 법원에서 전화를 하지! 혹시 스팸이나 보이스피싱 아니야! 다시 소속과 전화를 건 용건을 물어보았다. 담당 직원은 고객이 당황한 것을 눈치라도 챈 듯 차분하게 자기소개를 한 다음 전화를 건 용건을 설명해 주었다. 영국 소재의 한국대사관에 합의이혼 서류가 접수되어 그 처리 과정에서 내가 해야 할 일들과 절차 및 시기 등을 조율하기 위해 전화를 하였다고 했다. 아내와 나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물어보는 것으로 신원 확인 작업을 마쳤다. 일단 한 시간짜리 교육이 두 가지가 있으니 그것부터 수료하고 미성년 자녀가 있으니 3개월의 숙려기간 동안 기다리면 3개월 후에 이혼 처리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통화 도중 교육과 숙려기간 등의 낯선 용어 등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다시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저기요! 죄송한데! 제가 이혼은 처음이라 서요! 다시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교육은 어떤 교육이고 숙려기간은 무엇인가요?" 담당 직원은 희미하고 절제된 웃음소리를 숨기듯이 차분하고 친절하게 다시 설명을 해 주고 있었다. 지금은 법원도 휴정기간이라 교육은 8월 둘째 주부터 가능하다는 부연 설명도 잊지 않았다. 한마디로 법원도 휴가철이라 쉬겠다는 의미였다.

     

통화가 끝나고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망치로 뒷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이혼이라는 절차가 진행되기 시작한다는 것을 인지하자 조금은 당황스럽기까지 하였다. 일단 심호흡을 하고 진정을 해야만 했다. 오랫동안 마음의 준비를 해왔지만 그래도 막상 코앞에 닥치고 보니 손끝이 떨리고 그동안의 결혼 생활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치듯이 지나갔다. 인생이란 자전적인 다큐멘터리 영화를 100배속으로 돌려서 본 그런 느낌이었다. 그 와중에도 아내보다는 아들과 고양이 단오가 먼저 떠올랐다. 아들이야 내년이면 대학생이 되어 독립을 하지만 단오는 어차피 엄마랑 살아야 한다. 보고 싶어도 자주 볼 수가 없게 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사람에 대한, 특히 아내에 대한 연민으로 눈물이 핑 돌아야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나라는 인간은 고양이가 먼저였다. 뭔가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단오도 12년 동안 둘째 아들 노릇을 하였고 사람 못지않은 정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아내가 먼저 요구한 이혼이지만 그래도 아내와의 헤어짐을 먼저 슬퍼해야 인간의 도리가 아닐까?

     

일찍이 니체는 자신의 아침놀이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라.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사랑을 사랑으로 느낄 수 없다. 사랑하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스스로를 정확히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라. 자신조차 모르면서 상대를 알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부끄러운 가정사를 글로 쓸 생각을 한 것은 바로 니체의 이 문구 때문이었다. 그랬다. 나 자신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상대를 알고 사랑하기란 애당초 불가능했는지도 모른다. 비록 아내가 이혼이라는 결단을 내렸다고 해서 아내를 탓하거나 미워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제대로 남편 노릇을 하지 못한 여한과 미안함을 조심스럽게나마 피력하고 싶어 졌다. 그것이 서로를 위한 최선의 길이고 나 자신 또한 향상심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혼이라는 엄청난 충격파는 어찌 보면 삶에서 기다리는 난관들 중 하나일 뿐일 수도 있다. 그래도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참고 기다려준 아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올해 안에 법률상으로는 남이 되겠지만 그래도 친구로서 남을 수 있었으면 하는 나만의 희망도 가져본다.

     

가정하나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서도 벗어나고 싶다. 가장의 역할 하나도 제대로 못했다는 자괴감도 마찬가지다. 단지 서로가 서로의 길을 갈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힘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 단오에게 진심으로 미안함을 전한다. 남녀 간의 사랑의 유통기한이 이처럼 짧을 줄은 몰랐다. 이제는 좀 더 성숙하고 나다운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다. 그게 우리의 사랑과 이별을 헛되이 하지 않는 일이라 생각한다. 아내와 가족에게 진심으로 미안함을 전한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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