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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Oct 12. 2019

#20주 차, 나는 더 이상 감사하지 않기로 했다

하루 만에 책 쓰기로 매주 한 권 책 쓴다(2019년 6월 24일)

Note: 하루 만에 책 쓰기로 매주 한 권 책 쓰기 프로젝트는 나의 평생 프로젝트로 2019년 2월 11일 월요일에 춘천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죽기 전날까지 멈추지 않을 것을 소망한다. 만일 이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면, 나는 이미 질병과의 전투에서 1패를 기록하며 다른 별로의 고독한 여행을 시작하였을 확률이 아주 높다.




@ 부제: 매사에 감사하라! 감사일기! 하지만 세상은 온통 불합리와 모순의 바퀴에 의지한 채 굴러가고 있다. 이젠 분노하고 깨어나야 할 때다.  

@ 분량: 이북 기준 170페이지(폰트 22)

@ 판매: 블로그 서점(https://blog.naver.com/jebyi)




프롤로그


모든 종교에서는 감사의 소중함을 설파한다. 감사는 종교가 성립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기 때문이다. 또한 종교는 믿음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나는 종교의 영역이 아닌 삶의 영역에서의 감사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들을 이야기하고 싶어 졌다. 삶과 종교를 분리할 수 없음을 알지만 언젠가는 이러한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마침 여기저기서 감사일기 열풍이 불면서 감사의 의미를 재 고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감사와 감사가 주는 긍정의 힘을 잘 알고 있다. 종교의 수많은 순기능 또한 이해하고 인정한다. 하지만 감사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잘못된 합리화와 맹신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학에서 다루는 사회 문제까지 다룰 생각은 없다. 나에게는 그러한 지식이나 학문의 깊이 또한 없기 때문이다.      


삶을 살면서 억울하게 희생을 강요당하거나 심지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돈이나 권력이 없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와 불합리를 접하는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다. 이러한 사실을 접하면서도 평범한 시민으로서 감사만 하다 살아가야 하는지 의문투성이일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소위 말하는 멘붕이라는 것을 느낀다. 아직 철이 덜 들고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비록 내가 직접 당하는 일이 아니지만 언젠가는 나의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성주 사드장 배치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평생 농사만 짓던 TK지역의 군민들이 그렇게 격렬하게 데모할 일이 생길 줄은 아무도 몰랐다. 내가 대학생 시절, 군부 독재에 투쟁하며 데모할 때, 데모하는 사람들은 모두 빨갱이라고 매도하던 지역의 사람들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세월이 흘러 스스로 빨갱이가 되는 모순된 입장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국가를 위한 국방사업조차도 개인의 이익을 침해할 때는 이러한 반대와 투쟁을 야기하는 것이다. 때로는 자본이나 국가권력에 불합리하게 목숨마저도 빼앗겨야 하는 현실들을 부정한 채 자신의 안일과 편안함에 감사한다는 일은 나에게 불가능한 일중의 하나였다. 내가 감사 일기를 쓸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였다. 
 

자본가의 탐욕은 모든 집단을 기업화시켜버렸다. 심지어 종교나 국가까지도 자본의 통제를 받으며 자본의 확장이나 성장에 반하는 자들은 철저하게 자본으로부터 고립되어 갔다. 자본에는 이념이나 국경도 없다. 자본가도 결국은 자본의 통제를 받는다. 자본가가 자본을 통제한다는 것은 크나큰 오해일 뿐이다. 마르크스의 선견지명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뿐이다.     


자유나 정의 또는 진리라는 것은 애당초 없는 허구일 뿐이다. 유토피아에서나 가능한 일을 우리는 착각하며 진실인양 떠받들고 살아가고 있다. 최소한의 의식주마저도 위협당하는 절박한 상황에서는 사랑이나 자비도 한 조각의 빵보다 결코 위대하지도 거룩하지도 않은 허상일 뿐이다. 굳이 장발장의 예를 들지 않아도 세상의 모든 권력이란 권력은 자본 앞에 충성하고 자본이 시키는 대로 행할 뿐이다. 세상은 온통 불평등과 불합리한 일로 가득 차 있지만 감사를 강요하고 끝내 복종시킨다. 모든 사회 시스템은 국민들을 그렇게 무력화시킨다. 어떠한 분노의 표출이나 투쟁도 악한 것으로 치부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사회악이고 사회발전이나 통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악한 사람으로 매도를 당하게 만든다.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선진 자본주의는 물론 심지어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러한 일은 반복되고 당연시되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은 누구를 위한 존엄성일까? 과연 자본에 소외당한 사람들에게도 인간의 존엄성이 성립할 수 있을까? 신이라는 존재는 인간이 모두 사라진 곳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3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지구 자체가 사라져 버려도 신들은 계속 의미 있는 존재일까? 최근 들어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많이 사용된다. 그만큼 자존감이 땅에 떨어졌다는 반증이다. 빈부의 격차나 소득의 불평등은 물론이고 정의롭지 못한 부의 재분배는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들만의 문제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우리의 현실로 다가와 현실이 되어 있었다. 바로 우리가 아닌 나의 일들이 된 것이다. 그러면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개개인의 자존감을 곤두박질치게 만들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더 이상 신분의 수직이동의 길은 막혀가고 있다.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통용되어서 이제는 더 이상 이슈화되지도 못한 채 당연한 말이 되어버렸다. 개천에서는 메기나 미꾸라지 정도만 살아야 한다며, 사는 지역이나 심지어 나라까지도 강요당하고 있다. 그렇게 메기나 미꾸라지로 살아가는 일반 국민들이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메기는 미꾸라지라도 잡아먹으며 나름대로 자존감을 유지한 채 목에 힘을 주고 살아간다. 문제는 미꾸라지들이다. 미꾸라지가 수백 마리가 모여서 집단행동을 해도 개천의 지배자인 메기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오히려 메기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메기 주변에 아무리 얼씬거려봐야 아무 보상도 주어지지 않는다. 피하는 게 상책이다. 메기는 모든 먹이를 통째로 삼키는 포식자이다. 용이 사라진 개천에서 우리는 매기라도 되어보려고 발버둥을 쳐본다. 미꾸라지는 용은 고사하고 메기조차 될 수 없음에 이내 각자도생을 모색하며 흩어진다. 그리고 각자의 공간에서 쪼그리고 앉아 메기가 될 수 있는 아이디어들만을 생각하며 도전하고 또 도전하지만 미끄러지고 만다. 미꾸라지는 원래 그렇게 미끄러지도록 설게 된 동물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오늘도 미끄러지기를 반복한다.

   

감사함을 일기로까지 써야 하는 일이 언제부터 당연시되었는지 모르겠다. 감사 일기를 쓰는 사람들을 비판하거나 비난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오히려 감사 일기를 쓰지 않는 나에게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만큼 감사할 일들을 찾아내서 기록해야 한다는 의미는 감사하지 않는 일로 가득 차 있다는 반증일 수 있다. 가끔은 초긍정적인 사람들을 만난다. 이들은 긍정의 힘을 상대방에게도 전파하고 강조한다. 여자들이 화장하는 일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없다. 하지만 화장은 24시간 365일 하고 있을 수는 없다. 필요하지 않을 때는 지워서 피부도 숨을 쉬게 해주어야 한다. 내 마음이 항상 긍정, 그것도 초긍정적이라는 것은 화장을 지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외로우면 외로운 대로, 우울하면 우울한 대로 살고 있다. 나의 마음까지 화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매사에 부정적일 필요도 없다. 적당한 긍정과 적당한 부정이 조화를 이루어야 그나마 나의 진실한 모습에 다가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나의 자존감을 인지하고 어루만져가는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세상도 마찬가지다. 매사에 무조건 감사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잘못된 일은 바로잡고 때로는 약자 편에 설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나는 특정 종교나 기업 또는 국가에 항상 감사하지 않는다. 잘하는 일에는 감사를, 부당한 일에는 문제제기를 한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도 괜찮다. 그래서 인간으로 태어났음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늘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개별적으로 자존감 수업을 하지 않아도 될 수 있는 사회가 오기를 바랄 뿐이다. 인간이 사람으로서 존중받고 자본이나 권력과 멀리 있다고 해서 더 이상 부당한 대우를 당하지 않았으면 한다.  


끝으로 지극히 주관적인 글들이 모여  한 권의 책으로 나올 수 있도록 지구 반대편에서 응원해주고 격려해준 아내와 아들 그리고 사냥하는 고양이 둘째 아들 단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 목    차 -


프롤로그   

  

1감사

1. 매사에 감사하라!

2. 감사일기

3. 긍정과 초긍정

4. 감사한 사람들

5. 감사의 힘     


2분노

1. 빈부격차

2. 소득불평등

3. 인권유린

4. 약육강식

5. 개천에 용은 없다     


3자존감

1. 소외

2. 자존감

3. 직장인으로서의 삶

4. 자영업자로서의 삶

5. 비현실적인 미래     


4이기주의

1. 루틴

2. 내가 하면 다르다

3. 폐점률 90% 이상

4. 인구절벽

5. 흑백논리   

  

5미안해

1. 나에게

2. 아내에게

3. 아들에게

4. 단오에게

5. 어머니께     


에필로그




에필로그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인생은 참으로 복잡하고 굴곡지지만 결국은 강물이 바다로 흐르듯 흘러간다. 강물이 바다에 이르기까지는 수많은 굴곡과 난관을 거친다. 하지만 끝내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고 만다. 중간에 머물러 있는 강물은 있을 수 없다. 언젠가는 바다라는 종착역에 다다른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매사에 감사하고 긍정적으로 살려는 태도는 참으로 중요하고 아름다운 행위다. 하지만 감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충실한 것이다. 자신이 힘들고 아플 때에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토닥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게 가족이어도, 이웃이어도 마찬가지다. 같이 아파하고 공감해주는 일이 감사하는 일보다 우선이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후회하는 삶을 살지 않으려면 때로는 부정적으로 때로는 우울하게 살 필요도 있다. 종교단체나 기업이 원하는 그러한 삶 속에서 오롯이 행복이 나오지는 않는다. 때로는 그러한 단체행동에서 살짝 도망쳐 나와 개별행동을 할 용기도 필요하다. 나의 인생을 살아내는 주체는 내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가족도 굳건하게 지킬 수 있다. 긍정, 초긍정을 외치는 집단 논리에 빠져서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서 안타깝다. 그중 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이제와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것이다. 나는 지금부터라도 무작정 감사한 마음으로 살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나답게 산다는 의미를 이제야 깨달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기고 아픔을 주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이 뭐가 잘못되었느냐고 항변하던 나 자신은 더 이상 없다. 그런 나의 행동들이 모두 가족을 위한 희생이었다는 항변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어졌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을 왜 그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하였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후회스럽다. 나 자신이 완벽한 아빠였고 완벽한 가장이었다는 환상이 무너지던 날의 충격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나 자신이 받았던 그 충격보다 몇 배는 큰 충격을 받은 아내와 그 사이에서 힘들어했을 아들에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열심히만 살면 되는 줄 알았다. 이민 사회의 억센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의 몸부림은 그렇게 좌초된 배처럼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이제라도 그런 사실을 깨닫게 해 준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과 함께 고마운 마음도 전하고 싶다.    

  

세상의 모든 가장들이여! 열심히만 살지 말고 가족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교감하는 멋진 가장이 되길 바란다. "표현하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니다." 이는 단지 노래방에서 목이 터져라 부르는 유행가 가사만은 아니다. 소중하고 또 소중한 현실이고 가정을 지키는 원동력이다.    

  

2019년 6월 24일

호반의 도시 춘천에서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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