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의미
놀랍게도 나에게 시간은 일정하지 않았다. 하루의 길이도 마찬가지였다. 사용하는 시기에 따라 길이가 달랐던 것이다. 과거의 하루와 요즘의 하루는 너무도 달라졌다. 정확한 시점은 안식년을 갖고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즉, 책 쓰기 이전과 이후의 시간 개념은 완전하게 달라졌다. 그 시기 중에서도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죽음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내려진 이후였다. 물론 죽음 자체를 현실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도 동반되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죽음 앞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다. 어떤 금은보화도 의미가 없다. 하루를 허비하지 않고 최대한 활용하면서 치료에 전념하는 환자들을 보면서 시간에 대한 개념 정의를 다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 계기도 나의 질병으로부터 기인된 것이다. 이처럼 시간은 유한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한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흥청망청 낭비하는 것이 시간이다. 건강의 중요성은 그것을 잃지 않고는 알기 어렵듯이 시간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killing time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관계의 재정립
진부한 말이기는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사회적 동물이다. 많은 사회의 관계망 속에서 역할과 지위가 부여된다. 그 복잡하고 촘촘한 관계는 때로는 엄청난 고통을 가해 오기도 한다. 특히 직장이나 가정 같은 피해 갈 수 없는 조직에서 관계가 항상 정상적일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일이나 돈보다도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관계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의 연결망이다. 그 관계 때문에 아파하고 상처를 받는다. 상처를 주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1년의 안식년을 계기로 나의 모든 관계는 재정립되었다. 가족 관계는 물론이고 친구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더 이상 오지 않는 친구의 전화를 기다리지 않는다. 친구들도 나의 영혼을 구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친구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뿐이다. 그래서 의미 없는 친구들과의 만남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찾아오는 친구를 문전박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바쁜 친구에게 한잔 하자고 칭얼대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의미다. 그럴 시간이면 혼자 산책을 하거나 글 한 줄이라도 더 쓸 것이다. 이제야 철이 드는 것은 시간의 유한함을 깨닫고 일상에 적용하면서부터다. 나 자신을 보면서 사람이라는 동물은 철들기조차 참 힘들다는 것을 느낀다.
한층 더 치열해진 삶
하루를 한 달처럼 살자는 것이 요즘 나의 생활 방식이다.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살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누구에게 보여주거나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이었다면 몇 주도 가지 못하고 예전의 라이프 스타일로 돌아갔을 것이다. 관성의 법칙이나 만유인력의 법칙이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법칙들이 없었더라면 지구도 화성처럼 생명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변하였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사는 이유는 바로 책 쓰기 덕분이다. 매일 글을 쓰면서 성장하고 진화한다. 닫혔던 사고방식의 성장 판이 열리면서 새로운 세상을 접할 수 있었다. 글을 쓰면서 자아와의 끝없는 대화가 주는 희열은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글쓰기가 주는 가장 큰 매력이 바로 자신과의 대화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내면에 이처럼 할 이야기가 많을 줄은 나 자신도 몰랐다. 그래서 글을 쓰고 책을 쓸 때마다 스스로 놀라곤 한다.
나의 내면의 샘은 결코 마르는 법이 없을 것이다. 내가 살아 숨 쉬는 한 나는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그 생각들을 소화해서 배설해 내는 과정이 나의 글쓰기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 생각들이 켜켜이 쌓이면 가스가 발생한다. 아마도 냄새가 심한 암모니아 가스일 것이다. 생각들을 배설해야 하는 이유다.
에필로그
지난해맞이한 한국의 가을은 한가하고 고즈넉하였다. 20년 만에 접하는 한국의 가을이었다. 날씨마저 화창하고 아름다웠다. 한강으로 자전거를 몰고 나가면서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하였다. 그렇게 나의 안식년은 한가롭고 평온하게 시작되었다.
세월이 참 빠르다는 말을 실감한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지난해 경이로움 속에 맞이했던 그 가을과 대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맞이하고 있는 가을은 그렇게 한가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다. 그만큼 치열하게 하루를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 처음으로 가을을 맞으러 한강에 나갔다. 이미 갈대가 깊어가는 가을을 말해주고 있었다.
한강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1년 만에 돌변한 모습으로 찾아온 나를 한강은 외면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반갑게 맞이해주지도 않았다. 언제나처럼 묵묵히 자기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뿐이었다. 강으로서의 임무는 그저 한강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1년의 안식년이 가르쳐준 것들은 삶의 항로 자체를 바꾸어 놓을 만큼 강력하였다. 그 항로가 이렇게까지 색다른 일이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이제는 매일 글을 쓰고 매주 한 권씩 책도 쓰면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작가로서의 삶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제는 그동안 없던 꿈도 생겼다. 그 꿈이 이루어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지는 않는다. 터벅터벅 한 발씩 내딛다 보면 언젠가는 그 꿈에 닿아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
이제는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면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그 길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도 상관없다. 오늘도 나의 길을 갈 뿐이다. 아무쪼록 이 글을 읽고 많은 분들이 희망을 가지고 질병과의 싸움에서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절망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나 세상이 무너질 만큼 좌절할 때는 글을 단 한 줄만이라도 써보기를 권한다. 일기여도 상관없다. 읽는 것과 말하는 것 그리고 쓰는 것의 차이를 느낄 수 있을 때 당신은 글쓰기의 매력에 빠져들어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글들이 그토록 바라던 구원을 줄 것이다. 어쩌면 그 어느 신도 허락하지 않았던 구원을 말이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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