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런던남자 Jul 24. 2019

여보, 나 1년만 쉴까? #3 마침표전에 쉼표를..

일과 질병이란 일상에서 해방되어 휴식과 치유 및 힐링에 관한 연재이다.


     


산다는 것은..


     

어려서부터 나의 화두는 한결같았다. 사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당시 어린아이였던 나는 왜 사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반세기를 살아오면서도 아직도 그 답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알 것도 같은데, 알 나이도 되었는데 답은 여전히 모르겠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이 맞는 답일 수도 있다. 세상의 모든 일에 답이 존재할 필요는 없다. 설사 그 답을 안다고 삶이나 세상이 바뀌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이유도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는 단 한 번도 행복해지려고 산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거창하고 원대한 목표가 있었던 것은 더욱 아니었다. 그냥 태어났으니까 살뿐이었다. 이왕 태어나려면 재벌까지는 아니어도 부잣집에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전부였다. 하지만 현실을 부정하거나 슬퍼하지도 않았다. 내가 이루지 못한 것들은 아이가 대신해 줄 수 있다는 욕심도 오래전에 버렸다. 나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 되어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행복도 불행도 아닌 어정쩡한 입장에서 남들 다 겪는 풍파도 겪어보고 남들 다 겪는 질병에도 시달리며 살고 있다.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두어서 의미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까지 꽤 오랜 세월이 걸렸다. 왜 사느냐고 묻는 우문을 이제는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던지지 않는다. 금방 태어난 아이에게 왜 태어났느냐고, 죽음을 눈앞에 둔 노인에게 왜 죽느냐고 물어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우문이다.

     

산다는 것은 주어진 오늘을 소화해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된다. 지나간 내일을 붙들고 후회할 필요도 오지 않은 내일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이 순간에 행복하면 그만이다. 설사 행복하지 않아도 좋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 하루라는 A4용지 분량의 기록들이 1년 동안 365장이 쌓이고 그 용지들이 쌓이면서 인생이 살아내지는 것이다. 때로는 그 A4 용지가 하얀 빈 공간이어도 좋다. 항상 빼곡할 필요는 없다. 그 기록지에는 온갖 희로애락이 사계절의 변화만큼이나 빼곡하게 적혀나갈 것이다. 기쁨은 슬픔을 알기 때문에 가치가 있듯이 죽음 또한 삶이 유한하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다. 이 유한한 삶이 내일 끝나도 후회 없는 삶이기를 바랄 뿐이다. 지나친 욕심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런 생각을 갖는 것은 삶에 대한 애착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삶에 대한 애착은 항상 우리와 같이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사랑보다 더 허무한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 애착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삶의 끈을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슬프면 슬픈 대로, 괴로우면 괴로운 대로, 외로우면 외로운 대로, 우울하면 우울한 대로 살아가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자연스러운 삶이고 살아가는 이유다.

   

  



먹고살기 위해

     

그렇다면 노동에 대한 정의는 어떻게 내리고 우리의 삶에서 노동의 의미는 무엇일까? 물론 노동이란 육체적, 정신적 노동을 망라한다. 흔히들 노동을 신성한 것으로 과대포장한다. 노동을 통해서 자아실현을 하고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등등의 그럴듯한 미사여구들이 동원된다. 여기에는 자본주의 기업가들의 보이지 않는 마수가 결려있다. 그 마수는 나도 이용해 보고 경험해 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노동은 자아실현과 같은 거창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지만 극히 일부일 것이다. 그것도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서 노동을 한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나에게는 100개의 철학보다 한 끼의 밥이 훨씬 소중하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는 배부른 돼지가 되고 싶다.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고 철학이나 예술이 가능할 수는 없다. 마르크스가 엥겔스로부터, 빈센트가 반 고흐가 동상 테오 로부터 평생 경제적 지원을 받은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엥겔스 없이 마르크스를 생각할 수 없듯이, 테오 없는 빈센트를 생각할 수 없다.

     

나도 평생을 가족을 위해서 노동을 하였다. 물론 결혼 전에는 나 자신을 위한 노동이었다. 기업이나 국가 또는 사회를 위해 일하지는 않았다. 서글프게도 인간은 먹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그 일용할 양식을 위해 때로는 목숨까지 바쳐야 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문제는 그 먹고사는 것의 차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부가 축적되는 만큼 좋은 음식을 탐한다. 상어지느러미나 웅담이 남아나지 않을 지경이다. 반면 배고픈 허기를 달래기 위해 한 끼의 식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맥도널드도 과분할 뿐이다. 먹고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몸매만 보아도 그 사람이 부자인지 아닌지를 금방 식별할 수 있다. 비만을 유도하는 음식은 대부분 저가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 식단 조절을 특별하게 하지 않는 한 비만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한때는 부의 상징이었던 비만이 이제는 그 정반대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공평한 것이 있다면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하루에 세끼를 먹는다는 것이다. 부자라고 하루에 여섯 끼를 먹을 수는 없다.

  

    



엘리펀트 하우스


  

아주 가끔은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판타지에 빠져들고 한다. 조안 롤링이 에든버러의 엘리펀트 하우스라는 카페에서 아기를 안고 노트북이 없어서 육필로 쓴 해리포터가 그렇게 유명해지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하였다. 놀랍게도 싱글맘인 조안이 좋아한 커피는 카페라테라고 한다. 카페라테를 주문할 때는 우유는 따로 주문하였다. 그리고 그 우유는 아기의 귀중한 식사가 되었다. 아기가 먹고 남은 우유만 조안의 커피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조안의 카페라테는 항상 우유가 결핍된 씁쓰름한 커피가 되었다. 그녀는 가난을 저주하였고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으로 해리포터를 써 내려갔던 것이다. 2년 전에 에든버러에 같지만 앨리펀트 하우스라는 카페에 가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내가 책을 쓸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셰익스피어 생가가 있는 지역에도 여러 번 지나쳤지만 생가에 들르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다. 제인이나 에밀리 오스틴의 생가도 마찬가지로 허투루 보고 지나갔다.

     

내가 생각하는 판타지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인간의 종족보존이라는 DNA에 이상이 생겨 결국은 인류가 멸종한다는 내용이다. 인간이 사라진 지구에서 제일 먼저 일어나는 현상은 동물이 아닌 식물이 도시의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는 것이다. 결과는 지구 전체가 아마존처럼 숲으로 변할 것이다.

     

동물과 식물은 서로 타협하며 상생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지구에는 마침내 평화가 찾아오지만 한 가지 문제가 생긴다. 그 문제는 바로 신들이 실업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신들이 존재한다고 믿는 설정 하에서의 시나리오다. 인간이 사라진 지구별에서 신들의 역할을 생각해보고 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면 점점 흥미로워진다. 자신을 숭배해주는 인간들이 없는 신들은 외로워서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다. 아니면 다시 에덴동산을 만들고 인간을 창조할 것인가? 아니면 원숭이나 침팬지가 진화해서 인간이 될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신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서 신들의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신들도 공부를 하고 자기 계발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전지전능한 줄 알았던 신들은 사실 아무런 능력을 보여줄 수 없는 무능력한 신들이었던 것이다. 인간의 돈벌이 때문에 이용당한 신들은 인간이 사라진 지구에서도 과연 그 능력을 발휘해 낼 수 있을까?

     

어제저녁 한강을 산책하면서 생각난 이야기다. 우리 인간은 참으로 알 수 없는 존재임에 틀림없다. 생존과 종족보존의 본능만을 보면 여타 다른 동물들과 다를 바가 없는 동물임에 틀림없다. 타 동물들에 비해 지능이 좀 높다고 영장류라는 종을 부여해준 우리들은 인간이라는 동물이다. 자기 자식에 대한 사랑은 여느 동물을 능가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종족보존의 DNA가 이상을 보이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와 같은 일부 국가의 일이기는 하지만 심히 우려되는 대목이다. 아이를 낳지 않으면 결국은 그 종말은 언젠가는 나라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파멸을 피하려면 국민을 수입해 와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의 숙명을 논하기 전에 인간은 감정을 가진 동물임을 강조하고 싶다.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는 한 동물들도 번식을 할 수 없다. 종족보존의 욕구도 중요하지만 본인의 생존 욕구가 먼저일 수밖에 없다. 나는 오늘도 생존을 위해서 시간을 투자하고 생산적인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침표 전에 쉼표를



내가 생각하는 축복 중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커다란 축복 두 가지가 있다. 그중 한 가지는 죽음이라는 축복이고 또 하나는 죽음의 시기를 미리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죽는다는 의미는 삶의 마침표를 찍는다는 것이다.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만약 아무도 죽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지구 전체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중환실로 변할 것이다. 그 중환자들을 누가 다 돌본다는 말인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삶에는 반드시 마침표가 필요하고 언젠가는 그 마침표를 사용해야만 한다.

     

또 하나의 축복은 우리 모두가 죽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고 인정하지만 언제 죽을지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죽을 날들을 알고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군대에서 상병이 되면 전역할 날짜를 거꾸로 환산해서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다. 일부 군기 빠진 병사는 이등병 때부터 계산하기도 한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죽는 날짜를 알고 있다면 우리는 시한부 인생 모드로 즉시 전환될 것이다. 자신의 남아있는 날들을 계산하며 일어나는 변화들은 상상조차 쉽지 않다. 사회는 일대 혼란에 빠질 것이고 모든 일들은 자신의 죽는 날에 맞추어 진행할지 말지를 결정할 것이다.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때로는 이렇게 모르는 것이 약일 때가 많다.   

     

갑작스러운 부고를 받고 죽음을 접할 때마다 느끼는 점은 한결같다. 죽음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물론 질병으로 인한 죽음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중요한 점은 죽음으로써 삶의 마침표를 찍기 전에 쉼표를 한 번이라도 사용해보는 것이다. 태어나서 일만 하다가 죽어가는 것이 인생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생에는 좀 억울한 면이 숨겨져 있다. 바꾸어 말하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기에 더욱더 쉼표가 중요할 수 있다. 삶의 전반전을 마쳤다고 느끼면 1년 정도 하프타임을 가져보고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지원해주고 보장해주는 국민 안식년 제도가 있었으면 한다. 축구처럼 우리의 인생도 전반전이 끝나면 후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쉬지 않고 후반전도 뛰고 있다.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는 것이다. 하루하루를 돈으로 환산하면 하루도 쉴 수가 없는 사람들도 많다. 문제는 우리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내일 아침이 나에게 100% 보장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더욱더 쉼표가 필요한 것이다. 돈을 벌려고 일만 하려고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다. 한 번쯤 내가 왜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쉬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실제로 육체나 정신은 휴식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그 요구에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그래서 인생을 새롭게 조명하고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불평등과 상대적 박탈감



인간의 숙명을 논하면서 불평등과 상대적 박탈감을 거론하는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증대되는 빈부격차 때문이다. 이 빈부의 격차는 많은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한다. 이 불평등 속에서 개인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린다. 이 박탈감은 한 개인을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만들 수 있는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타인들의 삶과 나를 비교하는 순간 행복과 불행의 양극을 경험하게 된다. 1분 만에 행복해질 수도 불행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불평등과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자랐다. 대학생 시절에는 아버지가 농부라는 사실이 부끄러워 숨겼던 적도 있었다. 시골 향우회라는 곳에도 나간 본 적이 없다. 시골 출신이라는 것 자체가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도시 아이들과의 빈부 격차를 피부로 실감하면서 나도 모르게 비교를 하고 비교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오랫동안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하지만 사회에 나와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대학시절 동기들에게 느꼈던 그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부자가 되고 싶었고 가난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가난을 정당화시키는 어떤 행위에도 동의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돈만 쫒는 돈의 노예가 되는 것도 싫었다. 결국은 자본주의의 생산수단이라는 방법을 갖추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내가 일하지 않아도 생산 시스템이 일할 수 있도록 만들라는 마르크스의 논리는 지금도 만고의 진리처럼 느껴진다. 생산수단이 자본가를 지배하고 어쩌고 따위는 모르겠다. 자본이 자본가를 지배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배를 당할 때 당하더라도 자본 편에 서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을 뿐이다. 결과는 생산수단이 자유를 준다는 사실을 체험했다는 점이다. 돈을 벌어 자본가가 되지는 못하였지만 값진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욕심이 있다면 진정한 자본가가 되어보고 싶다는 점이다. 그래서 자본에게 지배를 당해보고 싶다. 언제쯤이나 진정한 시간적 공간적 자유를 누리고 살지 모르겠다. 삶은 언제나 평탄하고 아름다운 꽃길만을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시도 때도 없이 난관을 선물한다. 그리고 극복해 보라고 강요한다. 삶이라는 것이 그토록 잔인하고 혹독해질 수 도 있다는 사실에 몸서리가 처진다.






작가의 이전글 영국으로 이사 왔어요 #2 한국에서 런던으로 이사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