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질병이란 일상에서 해방되어 휴식과 치유 및 힐링에 관한 연재이다.
이민 전 7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출근하기 싫다는 생각을 무던히도 하였던 기억이 난다. 오죽하면 신경성 대장염으로 오전에는 화장실을 들락거리느라 아무 일도 못할 정도였다. 이 생각은 비단 나만 가지고 있는 생각이 아닐 것이다.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가 늘 하는 생각일 것이다.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일하고 싶어서 월요일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월급쟁이들은 1주일에 최소 한 번은 출근하기 싫다는 생각을 누르고 본능적으로 출근하게 된다. 그렇게 습관이 되면 나중에는 그런 생각조차 없어지고 회사형 인간이 되어간다. 기업에서 원하는 맞춤형 인간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나는 유독 출근하기 싫은 날이 많았었다.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껴본 적도 없고 오로지 월급이라는 마약 때문에 일하는 생각 없는 월급쟁이였다. 회사 입장에서는 스펙만 보고 잘못 뽑은 것이다. 일할 의욕이 없는 사람도 뽑히면 일을 하게 된다. 하지만 회사에 충성하는 사람은 결코 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고용주가 되었을 때는 나의 경험을 많이 참고한다. 스펙 따위는 아예 보지 않았다. 인터뷰를 통해 블라인드 면접만을 고수하였다. 때로는 전화 인터뷰만으로 채용하기도 하였다. 내가 항상 중점을 두고 채용한 직원은 일할 의지가 있는 사람이었다.
내 짧은 경험이었지만 월급만을 위해 일한다는 사실은 비극이었다. 그것도 평생 좋아하지 않는 일을 월급을 위해 매일 해야 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없었다. 항로를 바꾸지 않으면 나는 평생 불행하게 살게 뻔하였다. 아무리 화이트 칼라이고 고액 연봉을 받더라도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평생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요즘도 쉬면서 독서를 하다 보면 나와 같은 직장인들의 하소연이 나온다. 취업준비생 때는 합격만 시켜주면 회사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칠 태세지만 막상 취직이 되고 몇 년도 지나지 않아서 사표 낼 궁리를 한다. 취업준비생들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지만 현실이다. 사람의 마음이 갈대여서가 아니다. 그만큼 일이라는 것은 고달픈 것이다. 특히 영업실적을 매달 체크하는 부서들은 죽을 맛이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 이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월급을 위해 노동하는 세상의 모든 일은 다 힘들고 고달프다. 반면 돈이 아닌 취미로 하는 일들은 더 이상 일이 아니다. 놀이가 되는 것이다. 내가 20년 이상 매주 토요일마다 하는 조기축구도 마찬가지다.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데 돈 때문에 해야 한다고 했다면 벌써 그만두었을 것이다. 일과 취미의 차이는 이처럼 크다.
회사는 가기 싫은데 매일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도 희망은 있다. 그 희망은 바로 주말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불금이라는 단어가 생겼고 미국에서는 TGI Friday라는 요식업 프랜차이즈가 생겨나서 성업 중에 있다. 이들에게 주말은 무조건 좋다. 아무 계획이 없어도 좋다. 이유는 이틀 동안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그랬었다. 7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주말만 기다리고 살았다. 그래서 주말이 되면 봉사활동이라는 일을 하였다. 봉사활동 시 하는 일은 회사에서 하는 일보다 노동 강도가 훨씬 높고 고된 것들이었다. 그렇다고 보수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자비를 내고 자발적인 노동을 해주는 이상한 일에 미쳐 있었다. 그 이상한 일은 하면 할수록 힘이 들었지만 즐거웠다. 그리고 보람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주말만 기다리는 사람들은 자발적 노동과 비자발적 노동 사이에서 삶의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반드시 자발적 노동일 필요는 없다. 각자가 좋아하는 취미활동을 하면 된다. 휴식이 취미인 사람은 이틀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면 된다.
세월이 흐를수록 주말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늘어난다.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를 그렇게라도 풀어야만 또 다른 한주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삶의 방식은 루틴처럼 굳어져 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지는 라이프 스타일의 패턴에서 이탈하기는 어려워진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회사 의존형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두려웠고 그 고리를 끈기 위해 극약처방을 내려야만 하였다. 그 처방이 바로 이민이었다. 그렇지 않고는 직장만 옮기면서 이곳저곳 전전하는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나에게 여행이란 의미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지속적으로 바뀌고 있었다. 대학생 때와 직장생활 시절의 여행의 의미는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자영업을 하면서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다가 요즘 1년 동안의 휴식을 취하면서는 삶 자체가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먼저 대학생 시절의 여행은 배낭여행이었다. 거의 무전여행에 가까우리만큼 무모하고 도전적이었다.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나라를 경험하는 방식으로 단지 그 나라 땅을 밟아보았다는데 의미를 두었다. 그리고 배낭여행의 원칙은 철저하게 혼자였다. 혼자일 때는 외롭다. 그래서 친구를 사귀기가 쉬워진다. 둘 이상이 다니면 친구를 사귈 확률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직장인 시절의 여행은 답사 성격이 강하였다. 이미 마음속에는 이민 프로젝트가 가동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주로 미국과 호주의 한인 타운이 그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여행인지 답사인지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형태의 여행이었다. 그렇게 준비하면서 서서히 이민이라는 계획은 구체화되기 시작하였다. 이민으로 인해 내가 겪을 고생 따위는 처음부터 생각지도 않았다. 오로지 긍정적인 것만을 생각하고 미래를 위한 투자로서 이민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다 막상 이민을 가고 한동안은 여행이란 것은 꿈속에서나 가능하였다. 그만큼 이민 초기의 정착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물론 아이가 어려서란 이유도 있었다. 본격적인 여행은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가면서부터였다. 여행의 목적은 아이에게 가장 훌륭하고 효율적인 교육이 바로 여행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여행을 많이 하면서 아이는 아빠를 아빠는 아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요즘은 1년간 쉬면서 별다른 여행을 하지는 않는다. 한국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지도 않는다. 굳이 여행을 하고 싶으면 남도 여행을 주로 하거나 무인도에 가려 노력하는 편이다. 남도의 여행은 그동안 꿈에 그리던 곳이었다. 특히 봄이 오는 남도는 동경의 대상이었고 향수병의 원천이었다. 이번 봄에 남도 여행은 여러 차례 이루어졌다. 남도의 텅 빈 들판은 영국에서 그리던 만큼 낭만적이지 않았다. 곳곳에 외로움이 넘쳐났다. 사람들이 떠나간 마을에는 노인들만 가끔 눈에 띄었다.
요즘 직장인들은 국내 여행도 많이 하지만 해외여행도 많이 가고 있다고 한다. 특히 동남아 여행이 인기다. 저가 항공도 많이 생겼고 패키지 상품도 많아졌다. 직장인들에게 여행은 윤활유와 같은 것이다. 무언가를 보고 느끼는 것보다 일단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이 여행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준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점은 여행을 하면 할수록 더욱더 직장의 월급에서 멀어지기는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매달 나오는 월급의 위력은 크고 달콤하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나 자영업자가 여행을 가기는 쉬워 보이지만 막상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은 직장인들이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말이 있다. 직장 생활하는 사람들은 자영업자를, 자영업자들은 직장인들을 부러워한다. 둘 다 경험한 입장이라서 둘 다 쉽지 않은 생활이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이 몇 배는 힘겨워 보이고 몇 배는 고생을 한다. 스트레스 또한 마찬가지다. 장사가 항상 잘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자기만의 사업을 해도 직장인보다 불안하다. 24시간 일을 생각하는 것이 자영업자들의 특징이다. 반면 직장인들은 퇴근과 동시에 자유인이 된다. 다음날 출근과 동시에 다시 직장인이 되기를 반복한다. 매달 월급을 받는다는 의미는 나의 몸과 마음에서 나오는 노동력을 판다는 것이다. 즉 내가 언제든 몸이나 마음에 이상이 생겨서 노동력을 팔 수 없다면 나는 더 이상 직장에서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는 다른 상태가 좋은 부품으로 대체되고 만다. 직장인의 비애다.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신형 부품들이 내가 고장 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물로 직장 생활을 즐겁고 보람차게 하는 사람들도 많다. 일 중독자가 되어 가정보다도 직장이 우선인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것이 나의 경쟁력도 키워주지만 나의 외로움이나 고달픔을 달래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장에서 승승장구해서 능력을 인정받고 보상도 충분하게 주어진다. 문제는 직장에 충실한 만큼 가정에 소홀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열심히 사는 남편과 아빠에게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던 가족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아빠를 멀리하게 된다. 아빠는 열심히 일한 만큼 직장에서는 인정을 받지만 가족들에게는 따돌림을 당하거나 외면을 당한다. 일본이나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돈 벌어오는 기계쯤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빠라는 사람들이다.
얼마 전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라는 책을 읽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나온 책은 아니고 일본에서 출판된 책이었다. 일본의 기업문화는 아직도 잔업이라는 문화가 남아있어서 오로지 직장에만 전념한다고 한다. 가정생활은 뒷전이다. 아이들의 육아부터 살림은 전적으로 아내의 몫이다. 그래서 독박 육아라는 단어가 나왔고 졸혼과 황혼이혼이라는 단어도 일본에서 먼저 나왔다고 한다.
심지어 남편에 대한 복수 방법들도 나오는데 그중 하나가 남편이 죽으면 화장해서 납골함을 지하철 선반에 두고 내리는 계획이었다. 남편의 유골을 지하철에 버릴 생각을 하다니!! 내가 받은 충격은 크고 묵직하였다. 얼마나 남편이 미웠으면 저런 생각까지 할 수 있단 말인가? 혹시라도 사체유기죄로 범법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깜박하고 놓고 내렸다고 하면 분실물 처리될 것이란다. 그 대목에서 아빠들의 비애를 실감할 수 있었다. 물론 엄마들의 원한에 가까운 마음도 이해하지만 돈벌이 기구로 전락하고 세상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가장들은 무슨 죄가 있는 것일까!
지난주에도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나오면서 직장인들의 퇴근 시간과 맞물린 적이 있었다. 직장인들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 바로 점심시간과 퇴근 시간이다. 특히 퇴근 시간을 유심히 보면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역으로 향하지만 그중 일부는 술집으로 직행하고 있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직장인들의 퇴근 후 회식과 음주 문화는 살아있었다. 문득 그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하철에서 분실될 유골함이 생각나자 등줄기에서 땀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