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년간의 영국 여행 이야기
이번 한국의 여름 장마는 좀 늦은 감이 있다고들 한다. 새벽부터 폭우가 내려서 빗소리에 잠을 갰다. 빗소리에 아침잠을 깨보기는 실로 오랜만이다. 창문을 열고 잠깐이지만 비가 오는 소리를 감상하며 추억에 잠긴다. 어릴 적 추억보다는 영국에서의 비에 대한 단상들이 먼저 스쳐 지나간다. 비라면 단연 런던을 떠올리게 된다. 비와 함께 사는 일이 일상이고 생활화된 지 오래다. 그럽게 지겹게 같이한 비지만 한국에서의 장맛비를 경험하기는 20년 만이다.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1100번 버스를 타러 버스 정류장으로 나갔다. 장대비를 감당하기에는 작은 3단 접이식 우산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버스를 타고 삼성동으로 향하면서 파전에 막걸리가 생각났다. 그러면서 술에 대한 생각들이 이어지면서 영국의 펍이 그리워졌다. 이런 날은 펍에서 낮술 한잔도 나쁘지 않은 날이다. 혼자서 템즈강을 바라보며 생맥주를 마시던 펍이 생각이 났다.
영국을 대표하는 문화 중 하나가 바로 펍이라는 형태의 선술집 문화이다. 선술집이란 우리의 주막과 같은 형태이다. 과거 찬란하던 대영제국 사대의 펍은 술집과 식당은 물론 여관이나 호텔의 기능까지 담당하였다. 따라서 펍 건물들은 웅장한 저택처럼 크고 고풍스러웠다. 하지만 큰 덩치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지는 펍은 이제 절반도 남지 않았다. 동내 인근의 펍들도 많이 사라지고 이제는 몇 개 남지 않았다. 생맥주를 좋아하는 나는 최소 1주일에 한두 번은 펍을 찾곤 하였다. 일을 마친 뒤 펍에서 마시는 시원한 생맥주 한 잔의 맛은 그날의 피로를 날려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좋았다. 지금은 펍도 많이 현대화 물결을 타면서 모던한 인테리어로 바뀌고 있다. 예전의 담배 냄새에 찌든 소파가 주를 이루던 펍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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펍에 자주 다니게 된 이유는 생맥주를 워낙 좋아해서였다. 하지만 플러스알파가 있었다. 바로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축구 관람이었다. 빅 매치라 불리는 경기는 조기 축구 회원들이 모여서 같이 관람하곤 하였다. 축구를 보며 마음껏 생맥주를 마시면서 소리를 지르며 경기를 관람하다 보면 2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영국의 생맥주들은 안주 없이 그냥 맥주만 사서 마신다. 안주의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펍에서 식사도 가능하고 웬만한 음식도 다 먹을 수 있다. 영국 사람들은 오전 11시 오픈 시간에 맞추어 아예 펍으로 출근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만큼 펍은 대중적인 공간이고 모든 것이 저렴한 비용으로 해결되는 곳이다. 영국의 문화가 응축되어 있는 대표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다만 고풍스럽고 멋진 펍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간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현대화의 물결에 공룡 같은 몸집을 추스르지 못하고 사라져 가는 펍들을 위한 정부의 지원책을 바라기도 쉽지 않다. 영국인들의 음주를 부축이는 행위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 여행 일정이 잡히신 분들이라면 아무리 바빠도 펍에 들러서 생맥주 한잔 마셔보시길...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영국의 매력은 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