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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Dec 10. 2019

영국인들은 콧구멍의 좌우를 따지지 않는다!

영국의 오만과 편견 2권 왼손잡이

2. 왼손잡이들의 나라     


왼손과 좌파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왼손과 좌파는 어쩌다가 푸대접을 받기 시작하였을까? 왼손잡이들이 오른손잡이에 비해 지능이 높다는 설도 있다. 스포츠 스타들도 걸출한 왼손이나 왼발잡이들이 즐비하다. 신비롭게도 인체는 좌우대칭을 위해 2개로 쌍을 이루는 부위들이 많다. 얼굴에서는 눈과 귀가 그렇다. 심지어 콧구멍도 좌우 2개이다. 손과 발은 물론 가슴 심지어 남자의 고환도 2개이다. 오른쪽 눈이 왼쪽 눈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귀도 마찬가지고 콧구멍도 마찬가지다. 아직까지 왼쪽 콧구멍보다는 오른쪽 콧구멍이 산소를 흡입하기에 우월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하였다. 그런데 왜 유독 손에 와서는 왼손이 푸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푸대접이 단지 손에서 그치면 다행이다. 정치에서까지 왼쪽 노선은 좌파로 몰리어 수난을 당하고 있다. 심지어 종북이나 빨갱이라고 죄인 다루듯 한다. 한국 사회에서 만연하고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근거 없는 사실들을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그 사소한 것들이 결국은 우리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고 국민들의 삶의 질마저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좌가 우보다 나쁘다고 몰아붙이는 일이 지속되고 있는데 그 근거를 찾기 어렵다.   


   조선시대 좌의정이 왜 우의정보다 서열상이나 힘에서 우위였을까? 조선시대에도 왼손잡이들이 밥은 오른손으로만 먹었을까?

조선시대의 삼정승을 보더라도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서열이나 권력에서 우위였다. 허수아비 격인 영의정보다도 실세였다. 좌의정은 인사권을 우의정은 병권을 가졌지만 예나 지금이나 인사권을 가진 사람이 실세이고 권력이다. 어쩌다가 그리고 언제부터 좌가 우에게 셋방에 얹혀사는 푸대접을 받게 되었을까? 미군정과 전쟁을 거치는 짧은 시기에 좌는 불순하고 나쁜 것이 되어 버렸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영국의 좌파정부와 노동당을 이야기하게 된 것이다.

영국의 좌파 정책들의 결과물이 지금 영국 복지의 현주소다. 이제 영국인들은 좌우를 굳이 가리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국민들의 복지를 유지하거나 개선해주는 정당에 투표할 뿐이다. 더 이상의 복지 확대는 무리일 정도이기 때문이다. 난민들이 목숨을 걸고 영국으로 영국으로 몰려드는 이유다.


영국은 철저하게 사회주의식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영국의 모든 복지 혜택은 우파가 아닌 좌파에서 시작되었고 이제는 우파마저도 좌파의 정책들을 유지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복지이기 때문이다. 좌든 우든 국민들은 철저하게 자신들을 위해 정치하는 정당을 지지한다. 이처럼 간단한 일을 하려면 시민의식이 성숙되어야만 가능하다. 영국의 시민의식은 최소 3년 이상 묵은 김장김치인 반면 한국은 아직 겉절이 수준에 불과하다. 일부는 이미 3년 이상묵은 김장김치도 많지만 아직은 풋내 나는 겉절이들이 판치는 세상이다. 겉절이는 먹을 때는 아삭아삭 맛이 있지만 며칠 가지 못한다. 숙성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 겉절이의 본질이다.     


영국에는 유독 왼손잡이들이 많다. 왼손잡이들이 필기할 때는 바른 자세로는 불가능하다. 어딘가 많이 어색하고 불편해 보이는 자세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왼손으로 글을 쓴다. 그런 모습들은 한국에서는 낯선 것들이었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왼손잡이는 금기시되었다.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하고 수저를 들면 어른들로부터 혼이 나곤 하였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밥을 먹을 때나 글씨를 쓸 때는 모두가 오른손을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왼손잡이 둘째 형의 흑역사를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다.


그의 둘째형은 심각한 왼손잡이였다. 식사 때마다 할머니와 아버지로부터 혼이 나곤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의미 없는 사소한 일이지만 당시 어린 둘째형에게는 심각한 문제였다.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하여 반찬이 집어질 리 만무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밥을 먹기 위해서는 왼손이 아닌 오른손으로 젓가락질을 해야만 했다. 밥을 왼손이나 오른손 또는 양손으로 먹는다고 큰일 나지 않는다. 다만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문화와 전통이 지배하던 시기였을 뿐이다. 상투와 비녀에서 해방되었을 뿐 여전히 사고방식은 조선의 그것을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는 둘째형을 만나면 형의 왼손을 유심히 관찰한다. 당연히 둘째형은 왼손이 편리하고 자연스럽다. 심각한 왼손잡이였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둘째 형은 이제는 양손잡이가 되었다는 점이다. 왼손이나 오른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한국 사회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였다면 영국이나 유럽은 어떠하였을까! 일단 식사 시간에는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들은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기 때문에 양손을 사용한다. 문제는 글씨 쓸 때 빼고는 왼손잡이라고 그리 불편할 일이 없다. 단지 왼손만이 문제는 아니다. “다름”에는 삶의 다양한 요소들이 농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성향이나 종교의 선택부터 사소한 습관까지 다름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개인의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학교와 사회 나아가서 국가가 자유와 방임을 인정해야 한다. 한국의 학교교육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 과연 있을지 의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철저한 주입식으로 기업과 국가가 원하는 개인을 양산해 내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교육 시스템이 유지되는 한 “다름”을 인정하기는 요원해 보인다.     


영국의 경우, 아직도 학생들이 교복을 착용하고 다닌다. 그것도 유치원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말이다. 그도 한국에서 중학생 때 교복과 교모를 착용한 기억이 있다. 교복의 장단점을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교복의 본질이 왜곡되는 것이 문제다. 빈부 격차가 커지면서 교복을 입히지 않으면 몇 백만 원짜리 디자이너 브랜드 옷을 입는 학생들과 몇 만 원짜리 옷을 입는 학생들의 위화감을 막을 길이 없게 된다. 그가 어렸을 때의 교복은 일제 강점기의 교복과 유사하였다. 온통 검은색 깔마춤이었고 심지어 교모까지도 검은색이었다. 그 교복을 입고도 멋을 부려보려고 매일 다려 입고 다니던 기억이 새롭다. 바지의 줄을 세우는 것이 다림질의 전부였지만 여학생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친구 바지의 주름보다 최소 비슷하거나 선명해야 했다.

중요한 것은 왼손이나 오른손이 아니다. 왼발도 오른발처럼 사용할 수 있으면 세계적인 스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손흥민 선수가 보여주고 있다. 굳이 왼쪽 콧구멍이 나쁘고 오른쪽 콧구멍이 좋다는 논리는 이제 멈추어야 한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3만 불 시대에 맞게 누구나 사람답게 살아보는 것이다.  


교복뿐만 아니라 학교의 수업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라고 다 같은 교과서로 같은 수업을 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영국의 경우에는 학교마다 수업방식과 진도가 다르다. 한국처럼 교재라는 것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장과 교사의 재량권으로 수업방식이나 진도는 제각각이다. 어떤 학교는 구구단을 초등학교 2학년 때 가르치지만 3학년이나 심지어 4학년 때 가르치는 학교도 있다. 그만큼 개별 학교에 재량권을 부여하기 때문에 학교마다 다양하고 창의적인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다. 대입 방식도 필수와 선택이 일찌감치 정해지기 때문에 학생들마다 공부하는 과목이 많이 다르다.      


고등학교까지 학습량을 비교해보면 영국이나 유럽 학교들의 학습량이 한국에 비해 많아 보이지 않는다. 공부는 대학생 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영국이나 유럽의 대학들은 입학하기보다는 졸업하기가 훨씬 어렵다. 미국도 마찬가지로 알고 있다. 제대로 된 공부나 학문을 할 수 있는 곳은 대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등학교까지의 의무교육 기간 동안에는 주입식보다는 창의적인 교육에 방점을 두는 이유다.   

   

창의력은 “다름”을 인정하는 다양함 속에서 흘러나온다. 획일화된 교과서에서 창의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학교장과 교사에게 재량권을 최대한 부여하는 것이다. 이제는 한국도 이러한 방식으로 교육환경이 조금씩 개선되어 나가야 할 것이다. 교장선생과 교사는 수시로 머리를 맞대고 주간, 월간 그리고 분기와 학기의 학습량과 범위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들이 같은 교과서로 같은 내용들을 배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학교는 양계장도 공장도 아니기 때문이다. 현 교육 시스템은 양계 장식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결국 모든 것은 수능과 같은 시험을 위해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양계장의 닭들이 알을 많이 낳게 하려면 밤에도 환하게 불을 켜 두어야 한다.     

 

이제는 학교의 교육부터 변해야 한다.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유튜브 등을 통한 많은 SNS 채널들을 통해 선행 학습을 하고 있다. 그가 40년 전에 교과서를 가지고 배우던 방식이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시대는 분초를 다투며 변하고 있는데도 학교만 요지부동이다. 학교가 변하지 못하는데 어떠한 교육정책을 내놓아도 적절한 처방전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오직 대기업이나 공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상위 몇 % 의 학생들을 위한 교육일 뿐이다. 나머지 80%나 90%의 학생들은 들러리를 세우며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신랑 신부다. 하객이나 신랑 신부의 친구들은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들러리나 하객 없이 신랑 신부가 주인공으로 우뚝 서서 빛나 보일 수는 없는 것이 결혼식이다. 어쩌면 학교의 축소판이 예식장일 수도 있다.     


세상은 무서운 속도로 변하는데 그 변화를 거부하며 버티는 일이 언제까지 가능할지 모르겠다. 여차하면 전국의 초등학생들이 들고 일어설 수도 있다. 그 시작이나 방법은 실로 다양하다. SNS를 통해 그들의 비밀작전이 시행되는 순간 한국의 초등학교는 일제히 멈춰 설 수도 있다.


오죽하면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 6가지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하겠다고 찾아왔을까? 그것도 성인들을 대상으로 말이다. 9세 소년의 입장은 명쾌하였다. 학교에 가도 배우는 것도 별로 없다는 것이다. 수업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물론 저학년이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학교에 가는 이유는 친구가 필요해서이고 방과 후에 책을 읽을 수 있어서라고 하였다. 무엇보다도 그림을 그려 친구들에게 팔기 위해 학교에 간다고 하였다. 물론 한 학생의 사례로 학교나 학생 전체가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하며 무시하기에는 시대가 너무 빨리 변해가고 있다. 무서울 정도로 말이다.  




영국의 오만과 편견 2 왼손잡이 (2019년 12월 2일 / 하루 만에 책 쓰기로 제작된 책의 일부임)

참고로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는 삼성동 아지트리에서 "나는 매주 한 권 책 쓴다" 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루 만에 책을 쓰고 매월 또는 매주 책을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저자처럼 매주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이 15명 이상 되었다. 앞으로도 그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강의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https://www.onoffmix.com/)에서 할 수 있다.


"나는 매주 한 권 책 쓴다" 강의 신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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