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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Dec 11. 2019

병원비가 공짜인 영국은 유토피아일까?

영국의 오만과 편견 2권 왼손잡이

3. 개인의 자존감은 국가로부터     



행복이란 무엇일까? 월세나 공과금 밀리지 않고 또박또박 납부하는 것이다. 그나마 작은 집이라도 있으면 감사할 줄 아는 것이다. 호화나 사치는 바라지도 않는다. 아프면 병원에 가서 당연히 치료들 받을 수 있는 것이 보통 사람들이 꿈꾸는 행복이다.


자존감이 사회의 이슈가 된지는 이미 오래다. 벌써 진부한 느낌마저 드는 단어가 되었다. 인간의 가장 큰 특성은 "사회화"라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엄마 품에서부터 시작되는 사회화의 과정을 거친다. 가정은 가장 작은 사회 단위다. 사회적 동물이어서 혼자 살 수 없다는 말이다. 호랑이나 일부 동물들은 혼자서도 잘 살아간다. 반면 사자나 하이에나 등 대부분의 동물들은 집단생활을 한다. 영장류인 인간도 그중 하나이다. 그것을 증명할 수 없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동물들에게도 자존감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자존감이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자존감의 존재 여부가 아니다. 자존감의 높낮이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일까! 물론 개인차를 가장 큰 이유로 꼽을 수 있다. 그 개인차는 개인의 취향이나 성격 또는 직업과 재산으로부터 나올 확률이 높다.      


가난하면서도 높은 자존감으로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일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단지 가난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는 자의든 타의든 한 개인을 수많은 잣대를 들이대어 평가한다. 거기에는 외모와 학력은 기본이고 직업과 재산 등 많은 매개변수들이 도입된다. 그렇게 평가된 한 개인의 삶이 개인의 의지만으로 자존감을 짊어지고 살아나가기에는 이 사회가 너무 잔인하다. 가난하면서 관대해지고 가난하면서 행복해지기는 가난하면서 높은 자존감을 유지하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자존감이 낮을 때는 고시원이 자고 나면 천국이 되기도 지옥이 되기도 하였다.


그도 학창 시절 개운사 앞의 고시원에서 1년 반 정도를 산 적이 있다. 대학원 시험 준비할 때였다. 창문도 화장실도 없는 고시원은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잠을 자려면 의자를 책상에 올리고 발을 책상 아래로 뻗어야 했다. 화장실은 공용이었다. 아침마다 줄을 서야 했다. 대한민국의 학생이나 청년들은 물론이고 일용직 노동자들 중 고시원 경험이 있는 사람이 어찌 그뿐이랴! 그래도 책상 밑이지만 발을 뻗고 누워서 잘 수 있는 고시원은 생각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갈 수도 있다. 노숙자에 비하면 천국이었지만 산이나 강이 보이는 전망 좋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가면 멀쩡하던 그의 고시원은 순간 지옥으로 변하였다. 자존감이고 나발이고 세상 낙오자가 따로 없었다. 같은 시대에 태어나서 같은 학교를 다니는 친구의 집과 그의 고시원은 비교 불가였다. 그러한 경험들이 쌓여가면서 자연스럽게 자기 합리화 과정이 이루어져야만 했다. 그 과정 없이는 자존감 자체를 논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에는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 그의 자존감은 근거도 없이 허세를 부리기 시작하였다. 중증 복합장애인들의 삶을 접하면서 그는 완벽해도 너무나 완벽한 인간이었다. 가난을 빼고는 무엇 하나 탓할 것이 없는 완전채였다. 자존감이 외적 환경 등의 변수에 의해 이렇게까지 달라진다니 믿기지 않았다. 코스닥이나 나스닥도 이렇게까지 상한가와 하한가 사이를 오가지는 못할 것이다.     


정글에도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이 정글만도 못해서는 곤란하다. 최소한의 자존감을 유지하는 일에 국가가 나서지 않는 한 인권, 자존감 및 행복이라는 단어는 사치처럼 들린다.


개인의 자존감을 온전히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최소한의 권리를 누리고 살아야 한다. 인간다운 삶을 누려야 한다는 의미다. 동물도 인간도 약자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동물 세계에서 약자에게는 오로지 죽음뿐이다.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최상위 포식자인 사자나 호랑이도 마찬가지다. 부상을 당하는 순간 약자로 신분이 변한다. 부상을 회복하게 해 줄 기관인 국가가 이들 최상위 포식자에게는 없다. 하이에나나 늑대 그리고 독수리의 밥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자연의 생태계는 순환된다.     


이러한 일이 인간 사회에서도 일어난다. 사회약자에게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병원비가 없어서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일찍부터 예견되었던 일이다. 소득이 없는 사람들에게 월세가 몇 달만 밀려도 해결할 방법이 없어진다. 어느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 심지어 마지막 보루인 국가마저도 가난이나 빈곤을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 사업이나 장사에 실패해도 마찬가지다. 다시 재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지 않는다. 선진국과 선진국이 아닌 나라의 가장 큰 차이다. 자존감을 논하기 전에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인권을 먼저 논해 볼 일이다.      

영국이나 북유럽도 유토피아가 아니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이 최소한의 자존감을 유지하고 살 수 있도록 사회 안전장치를 총동원할 뿐이다. 유토피아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는 사례를 당연히 그가 20년 동안 살고 있는 영국에서 찾고 있다. 그렇다고 영국이나 북유럽이 우리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아니다. 그들도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고 힘들어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들 국가의 기능은 개인의 자존감과 무관하지 않았다. 노인들이 병원비가 없어서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일은 없다. 치료 방법이 없거나 연명치료를 원치 않아서 안락사하는 것과 돈이 없어서 치료를 포기하는 것과는 다르다. 국가의 역할은 돈이 없어서 치료를 포기하고 죽음을 선택해야만 하는 노인들을 돌봐야 한다. 생활비가 떨어져 월세도 내지 못하는 극빈층도 마찬가지다. 사업이나 장사를 하다가 부도가 나거나 망해서 일가족이 죽음을 택하는 일도 그렇다.

한국에는 5천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거대한 숫자의 개인들은 국가라는 울타리에 의지한 채 살아가고 있다. 동물에도 약자와 강자가 있듯이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다. 그 개인차를 인정해주어야 한다.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서나 게을러서라는 논리로 사회의 약자들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 부자들의 시각과 논리로 약자를 대한 결과가 지금의 한국과 영국의 차이를 만들어냈다. 경제력으로 따지면 이제 영국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만큼 한국은 눈부신 성장을 이룩하였고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서 있다. 그런데 국민들의 자존감은 좀처럼 올라서지 못하고 있다. 사회의 약자를 부자로 만들어 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약자에게도 최소한의 삶을 살아갈 권리를 국가가 제공해야 한다. 개인 차이를 다름으로 인정하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이미 우리는 전 국민이 서열화되고 성적순인 학교에서 개인 차이를 확인하였다. 1등에서부터 꼴찌까지 성적이 매겨진다. 심지어 전교 1등부터 5백 등까지의 석차도 나온다. 수능을 보면 전국 상위 몇% 형태의 석차도 알 수 있다.     
 

개인은 기본적으로 다르다. 성적만 다른 것이 아니라 성격이나 취향은 물론 라이프 스타일까지도 다르다. 같은 날 비슷한 시간에 태어난 쌍둥이도 생긴 모습은 비슷하지만 성격이나 취향은 정반대일 수도 있다. 국가가 정책을 펼치는 데 있어서 최우선시되어야 할 문제는 다름을 인정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국민들의 자존감이 높아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영국의 전 국민 무료 의료제도 또한 유토피아가 아니다. 문제점들 투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것은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영국의 사례를 들어보자. 영국은 어떻게 국민들의 자존감을 챙기고 있는 것일까? 어떻게 여성들의 힘이 더 세고 남자들은 신사가 될 수 있었을까? 영국의 의료제도부터 보겠다. 영국은 전 국민 무료 의료 제도인 NHS(National Health Service)를 1975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적어도 병원비가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일은 없다. 암은 물론이고 불치병이나 희귀 난치병 들도 모두 무료이다. 누구에게도 병원 문이 24시간 활짝 열려 있다는 의미다. 반면 부작용도 많다. 무료이다 보니 병원은 항상 차고 넘친다. 특히 초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영국에서 노인들이 병원을 장악해 버렸기 때문이다. 응급실에 가도 서너 시간 기다리는 일은 기본이다. 그래도 돈이 없어서 삶을 포기하는 일은 없다. 국가의 가장 기본 책무이자 역할인 것이다.      


국가가 없는 국민들은 존재할 수도 있지만 국민이 없는 국가는 존재할 수 없다.
이제라도 누가 국가의 주인인지 따져볼 일이다.


월세가 3개월 밀리면 보통 집을 빼라는 압력이 들어온다. 이때 사회의 안전장치가 있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한국에는 아직은 뚜렷한 대한이 없어 보인다. 대안이 있었다면 그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국의 경우 소득이 없거나 소득이 있어도 저소득층으로 분류되면 집이 제공된다. 보통 카운셀 하우스나 카운셀 플랏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미혼모와 싱글 맘을 비롯해 다양한 사회의 약자들이 포함된다. 이들에게 집이 제공되고 월세는 카운셀(시청이나 구청)이 대납한다. 소득이 없기 때문에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생활보조수당이 주 단위로 제공된다. 매주 월요일이면 우체국에는 이 수당을 타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사업이나 장사를 하다가 부도가 나거나 망했을 때의 대안도 마찬가지다. 사업이나 장사마다 사례가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적어도 영국에서는 부도가 나더라도 Limited company 형태의 사업 시스템 때문에 개인에게까지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개인의 문제일 때에는 파산신청을 하면 된다. 파산 신청은 개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방지하기 위한 구제책이다. 한인 커뮤니티에서도 파산 제도를 악용하여 오히려 제기하는 사업가들 이야기도 제법 접하였다. 국가가 이를 알면서도 넘어가는 이유는 허술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극단적 선택을 방지하기 위한 배려라고 생각된다.      


이처럼 자존감은 개인 혼자만의 힘으로 지켜갈 문제는 아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개인들은 기득권 세력이나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사회의 약자라고 하는 소외 계층이나 일반 국민이다. 이들에게 자존감은 그들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지난하고 힘든 작업에 나서야 한다. 아직도 GDP 올리기에만 신경 쓴다면 국가의 존재 이유는 점점 희미해져 갈 것이다. 이제는 GDP 못지않게 개인의 삶을 돌아볼 때이다. 모든 국민이 최소한이나마 인간답게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 국가가 나서야 하는 이유다. 국가가 없는 국민들은 존재할 수도 있지만 국민이 없는 국가는 존재할 수 없다.  





영국의 오만과 편견 2 왼손잡이 (2019년 12월 2일 / 하루 만에 책 쓰기로 제작된 책의 일부임)

참고로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는 삼성동 아지트리에서 "나는 매주 한 권 책 쓴다" 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루 만에 책을 쓰고 매월 또는 매주 책을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저자처럼 매주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이 15명 이상 되었다. 앞으로도 그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강의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https://www.onoffmix.com/)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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