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첫 번째 화요일 오전에 이혼을 하고 오후에 분당의 병원에 입원하였다. 무릎 수술이 다음날인 수요일 오전에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화요일 오전 일정을 감안하여 오후 입원시간도 잡았다. 일단 수술을 하면 자유로운 이동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나름 고심한 결과였다. 예상대로 일정은 여유 있었다. 김포에서 분당까지 가는 길에 양재동 서울 가정법원에 들러서 잠깐 이혼 최종 판결을 받고 바로 옆의 서초구청에 신고하면서 모든 절차는 마무리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아내에게 혼나지 않아도 된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아내였다. 톡이 울릴 때마다 아내의 톡이 아니기를 빌었다. 아내의 톡은 몇 달에 한두 번 정도였지만 그 위력은 나의 심신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주었다. 그 스트레스 때문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백기를 들었다. 갱년기에 접어든 아내의 기세는 무서웠다.
이제는 그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어서 다행이고 행복하다. 나의 독자이자 멋진 작가이신 Han 선생님 말씀대로 더 이상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죽을 때까지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며 혹처럼 달고 살 이유도 필요도 없는 삶을 지금까지 살아왔다. 어리석고 심각한 에너지 낭비였다. 이혼을 받아들인 일 자체만으로도 모든 것은 끝이 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별거기간의 비현실이 무겁고 버거웠다. 내려놓는다는 작지만 거창한 말잔치는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내려놓으려 발버둥 칠수록 그만한 집착이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서류까지 정리되고 나서야 비로소 내려놓기 시작하였다. 더 이상의 자책도 자괴감도 없을 것이다. 남편이라는 또는 가장이라는 짐을 죽을 때까지 짊어지지 못했다는 것이 자책이었고 자괴감이었다.
분당의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병실을 배정받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5층의 6인실이었다. 다시 진료실로 내려가 피검사와 소변검사 혈압 등 기본적인 준비들이 진행되었다. 무릎 MRI는 2주 전에 찍어둔 상태였다. 심전도와 각종 내과 검사를 마치고 다시 병실로 올라갔다. 6시가 지나고 있었다. 첫 병실에서의 저녁 식사가 준비되고 있었다. 멀쩡하던 나는 환자복으로 갈아입는 순간 정말로 환자가 되었다. 환자복은 바지 양쪽이 다 트여서 묶고 풀 수 있는 좀 민망한 바지였다. 속살이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저녁 식사는 금식으로 인해 배가 고파서였는지 맛있게 먹었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시설 사용과 환자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다음날 수술 일정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설명이 끝나고 화요일 저녁식사 후 밤 10시부터는 다시 금식이었다. 마지막으로 수술 서류에 서명해야 수술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문제는 보호자 두 사람의 긴급 연락처가 필요했다. 나는 친구 둘을 보호자로 적었다. 간호사 선생님은 관계를 물어본다. 친구라고 하자 친구는 보호자가 될 수 없다고 한다. 눈치도 없이 가족의 연락처를 적으라고 하신다. 가족이 없는데 어떡하느냐고 다시 물었다. 가족이 없다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신다. 사실 어제 이혼해서 가족이 없어졌다고 하였다. 간호사 선생님은 농담인 줄 알고 재촉하신다. 정말이라고 하자 그럼 형제자매나 부모님 전화번호라도 적으라고 한다. 톡으로만 연락해서 여동생 번호밖에는 몰랐다. 아버지 번호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평소 자주 연락드리지 않는 불효자 티가 너무 쉽게 들통나고 말았다. 결국 간호사 선생님은 병원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지인이라도 적어달라고 하였다. 하는 수없이 내 수술을 집도하실 선배님 이름을 적었다. 간호사 선생님은 깜짝 놀라신다. 선배님이 이 병원의 병원장이기 때문이었다.
저녁상이 치워지고 다시 우울해지기 시작한다. 가족이 없다는 의미는 수술 서류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병실은 병문안 가족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그 작은 병실에 수십 명이 재잘거리는 소리는 가족이 이런 것이야! 를 보여주느라 분주하다. 어제의 이혼 서류들이 눈에 선해진다. 무엇보다 이 시점에서 난 누구를 떠올리며 누구를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무릎이나 허리처럼 생명과는 직접 상관이 없는 비교적 간단한 수술에도 3대 4대가 다 모여서 할아버지를 응원하고 있었다. 내가 배정된 6인실에는 아버지뻘 쯤 되는 할아버지들이 네 분이나 계셨다. 그 모습에서 가족의 의미에 일대 혼란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수많은 1인 가족들은 그러한 모습에도 의연할 것이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시는 것처럼 혼자 수술도 감당하면 된다. 굳이 많은 사람들을 불러 세를 과시하듯 불편을 끼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처사일 수도 있다. 내가 시골의 아버지나 형제자매들에게 연락하지 않은 이유 기도하다.
참고로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는 삼성동 아지트리에서 "나는 매주 한 권 책 쓴다" 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루 만에 책을 쓰고 매월 또는 매주 책을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저자처럼 매주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이 15명(매월은 60명 이상) 이상 되었다. 앞으로도 그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강의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https://www.onoffmix.com/)에서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