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비와 사투 중 실신하다!

병상일기 #1. 처절한 변비 이야기

by 런던남자


병원밥을 먹기 시작한 지 5일째 저녁이다. 무릎 수술은 생각대로 잘 끝났다. 기본적인 재활을 거쳐 2주 후에는 퇴원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수술이나 통증보다 정작 힘겨웠던 것은 똥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변비였다. 물론 입원이라는 것도 처음이다. 각종 항생제와 통증완화제로 인해 6인실의 수술 환자들은 모두가 변비에 시달리고 있었다. 화장실에 한번 들어가면 30분에서 한 시간은 기본이다. 아무도 시원하게 똥을 누고 개선장군처럼 화장실을 박차고 나서는 환자는 없었다. 간호사 선생님은 수시로 화장실 앞에 와서 노크를 한다. 혹시라도 환자가 기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똥을 싸다 기절한다고? 상상이 가지 않는 이야기였다. 내가 입원하면서 주의사항 가운데 하나가 수술 후의 변비였다. 하지만 난 자신이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똥 싸는 것 하나는 타고났다. 하루라도 걸러본 적이 거의 없었다. 단식을 해도 화장실은 갔고 어김없이 똥을 누었다. 화장실에 책이나 휴대폰조차 가져가 본 적이 없다. 1분 이내에 속전속결이었기 때문이다. 아침 시간에 연한 아메리카노를 가장 큰 머그컵에 한잔 마시면 바로 소식이 온다. 아침을 먹지 않기 때문에 아침 식사와도 상관이 없다. 그런 자신감은 나에게 곶감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유일한 간식으로 상주 곶감을 한 봉지 사서 가져온 것이다. 그리고 수술 전부터 수술 후까지 식후 하나씩 간식으로 정성껏 먹어왔다. 나름대로 비타민 섭취 방법이었다. 감도 엄연한 과일이기 때문이다. 간호사 선생님들은 감을 먹는 나에게 엄중 경고를 하였지만 나는 미소로 답하였다. 똥 하나는 자신 있으니 걱정 말라고 오히려 간호사 선생님들을 안심시켰다.



화요일 오후에 분당 야탑역 근처에 있는 척추 관절전문 정형외과에 입원을 하였다. 같이 운동하는 동문 선배가 운영하는 곳이다. 6시 내 고향과 아침마당 등에 출연해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곳이다. 시골 노인들의 90도로 굽은 허리를 일자로 펴주는 곳으로 방송을 타면서 환자의 대부분은 시골 노인들이었다. 관광버스로 단체로 올라오기도 한다. 수술 전인 화요일 08시부터 금식이었다. 수술은 수요일 오전에 이루어졌다. 수술 후 수요일 오후부터 목요일 오전까지 자고 또 잤다. 허리가 아파서 못 잘 정도로 실컷 자봤다. 약을 먹지 않고는 전혀 잠을 못 자던 나에게는 그야말로 소원을 풀었다. 수술 후 오히려 혈색이 좋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생각해보니 금요일까지 똥을 누지 못하고 있었다. 식사와 간식은 계속 들어가는데 배설이 이루어지지 않자 급 우울해지기 시작하였다. 모든 신체기관들은 아랫배와 항문의 괄약근에 신경을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변비약을 먹기 시작했지만 소식이 오지 않아 점점 초조해진다.


마침내 금요일 저녁에 우려하던 일이 발생하였다. 화장실에서 1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내가 변기에서 잠이 들었다고 하였다. 실신했는지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병상으로 옮겨진 나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환자복을 갈아입어야만 했다. 환자복은 빨래하고 널기 직전의 상태처럼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은 라텍스 장갑 한 켤레를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직접 파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다시 체력을 회복한 후 간호사 선생님들이 화장실 앞에서 대기하고 나는 인생 일대의 경험을 하고 만다.


손가락으로 하나씩 파내는데도 30분이 걸렸다. 똥들은 돌덩이처럼 굳어서 괄약근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30분의 작업 끝에 막혔던 일부를 겨우 파낼 수 있었다. 하지만 금요일 저녁에는 그걸로 만족해야 했다. 더 이상의 체력 소모는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토요일 오전에 그 작업은 다시 시작되었다. 토요일 아침과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서야 진통을 멎게 하는 카타르시스 작업이 이루어졌다. 세상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 중의 하나로 기록될 만큼 개인적으로 엄청난 성취감과 행복감을 맛보았다. 다시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하였다. 잃어가던 밥맛도 돌아왔다. 아침을 먹지 않던 내가 삼시 세끼를 먹고 있다.



돌덩이가 된 똥을 꺼내는 일은 커다란 아이가 자궁에서 질을 통과하는 일만큼이나 어렵고 힘겨웠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존경의 마음과 경외심마저 들게 한 사건이었다. 남자가 산고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일이 이번 변비 사건이었다. 변비가 해결되면서 세상의 당연한 일들에 다시 한번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젠 휠체어를 타고 병원 내에서는 혼자 움직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동은 만만치 않다. 약간의 경사에도 당황하고 뒤로 밀리곤 한다. 그동안 봉사를 다니며 수도 없이 보았던 휠체어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휠체어가 주는 기능은 단순하지만 그 의미는 아픔이자 슬픔이었다. 세상은 배워야 할게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도 새삼스럽게 느낀다.



이제 겨우 왜 똥을 싸야만 하는지에 대한 당연함을 깨달았다. 그 일이 세상 어떤 일보다 우선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 시간씩 괄약근에 힘을 주는 고통에서 막연하고 불길한 두려움과 싸워야 했다. 힘을 줄 때마다 똥 대신 피가 나왔기 때문이다. 작은 일에도 기뻐하고 행복을 느끼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터득했다. 행복은 똥색 사임당을 몇 박스 가지고 있다고 찾아온다는 보장은 없다. 똥색으로 된 똥 하나만 잘 싼다면 사임당 몇 박스가 부럽지 않은 이유다. 이왕이면 황금색이었으면 하는 욕심도 생긴다. 토요일 오후부터는 괄약근이 정상적으로 운동을 시작하였다. 태어나서 가장 행복한 토요일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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