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인실에서 코 골다 쫓겨날 뻔하다!

병상일기 #3, 입원실의 낯선 풍경들

by 런던남자
"아버님들 죄송해요! 급한 대로 나눠드리는 귀마개라도 끼우세요. 그럼 코 고는 소리가 덜 들릴 겁니다. 절대 먹진 마세요. 이건 귀마개입니다. 죄송해요!! 아버님들!"


저녁을 먹고 잠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던 모양이다. 한참 정신없이 자는데 젊은 아가씨가 흔들어 깨운다. 오피스텔에 웬 젊은 아가씨! 무대 설정에 뭔가 착오가 생긴듯하다. 이상야릇한 생각에 빠진 것도 잠시였다. 혼자 오래 살다 보니 별 꿈을 다 꾼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사랑쯤은 일도 아니다. 꿈속에서는 언제나 내가 젊고 멋진 주인공이었다. 봄날의 꽃밭에서 아리따운 처자들과 연애를 한다. 술이라도 한잔 하고 잤던 날에는 그녀들과 찐한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비현실 속에서나마 본능을 발산할 수 있다는 기쁨은 그래도 아직 사그라지지는 않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깨고 나면 현실의 나는 영락없는 아저씨라는 사실에 깊은 한숨이 베어 나온다.


그랬다. 무대 설정에 오류가 있었다. 여긴 나의 오피스텔이 아니다. 분당에 위치한 내가 입원한 병원이다. 그것도 몇 시간 전에 입원한 신참내기가 코를 골아 젖힌 것이다. 6시에 저녁을 먹고 수술동의서에 서명하고 없는 보호자 만들어서 연락처 기입하다 보니 맥이 풀려버렸나 보다. 아침 8시부터 금식을 하였다. 오전에 이혼을 하고 오후에는 입원과 동시에 각종 검사를 받느라 힘이 들었다. 70대와 80대 어른들이 계시는데서 신참이 군기가 빠져도 너무 빠진 것이다. 코를 얼마나 크게 골았는지 다섯 분 모두 콜벨을 누르셔서 한바탕 소동이 났었다고 한다. 응급환자가 생겨도 콜벨을 다섯 분이 눌러대는 일은 아직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새내기의 6인실 입소식은 치러졌다.



평소에 코를 골지만 둘째 형님처럼 옆집이나 위아래 집에서 민원이 들어올 정도는 아니다. 코 고는 것도 집안 내력인가 보다. 아버지를 비롯하여 5형제 모두 코를 곤다. 전주에 사는 둘째 형님의 경우에는 코골이 수술을 고려할 정도로 심각하였다. 오죽하면 아파트 옆집에 사는 이웃이 이사를 다 갔을까! 그렇다고 귀마개까지 나누어 준 것은 좀 그랬다. 민망해서 얼굴을 둘 수 없었다. 그래도 어르신들께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오늘 특별히 피곤한 일이 있어서 코를 골았다고 이실직고를 하였다. 내친김에, 앞으로는 코를 골지 않겠다고 선서 비슷하게 다짐을 하였다. 무슨 전국체전이나 올림픽도 아닌데 선서가 웬 말인가! 입원 첫날 저녁에 6인실에서 나의 선서는 역사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이유는, 병원의 입원병동에서는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교도소에서라면 이해가 간다.


얼추 시간을 계산해 보니 한 시간 정도 잠든 모양이다. 그 시간대는 저녁 7시에서 8시 사이다. 아직 입원실에 병문안을 온 가족들이 절반은 남아있는 시간이었다. 그분들이 화가 날 만도 하다. 입원실에는 침대마다 TV가 매달려 있다. 소리를 들으려면 이어폰을 끼어야 한다. 따라서 병실은 조용하다. 병문안을 온 손님들이 없으면 절간이 따로 없다. 간병인도 없는 간호간병 통합시스템이다. 그런 조용한 곳에서 방금 입소한 신참이 군기가 빠져도 너무 빠졌던 것이다. 그것도 아버지뻘 되는 어르신들 앞에서 자유를 마음껏 발산하였다. 선서 비슷한 걸로 약속을 하였지만 믿지 않는 눈치들이다. 도박이나 마약을 하던 놈이 썩소를 날리며 이제 손을 떼겠다고 공약을 날리는 것쯤으로 여기시는 표정들이다.


잠을 자며 긴장해 보기는 또 처음이다. 마치 군에 입대한 기분이다. 불혹도 아니고 지천명을 넘긴 나인데도 불구하고 완전히 아이 취급들을 하신다. 그렇다고 반말도 아니다. 존칭은 쓰면서 나를 아직 철이 덜든 당신들의 막내아들 취급을 하는 능력은 역시 그분들의 내공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분들이라서 사람 다루는 일에는 능수능란이다. 숨죽이고 잠을 자긴 잔 모양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 어르신들은 이미 기침하신 상태다. 화장실도 다녀오고 세수도 하셨다. 옆 침상의 할아버지께 간밤에 어땠냐고 여쭤보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코는 골았지만 다른 사람들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 정도면 아주 좋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대단한 사람이라고 나를 치켜세워주신다. 어떻게 자신의 코 고는 강도까지 조절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런 별난 인간은 처음이라는 의미로 들렸다. 무슨 외계인도 아니고 자면서까지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한마디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듯하였다. 아무튼 인생에서 가장 길고 긴 화요일이 그리고 하루가 우여곡절 끝에 지났다.


수술 전 아침은 금식이어서 물도 마시지 못하게 한다. 매일 아침 마시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만 마시면 살 것 같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 아직은 수술 전이어서 정식 환자가 아닌데도 하는 짓이나 생각하는 것까지 환자보다 더 환자 노릇을 한다. 이미 어제 수술을 마친 분들은 MRI나 CT 촬영을 준비하고 계셨다. 나처럼 수술을 준비하고 계신 분들은 간호사 선생님이 507호로 들어올 때마다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한다. 모두가 설마 내 차례는 아니겠지! 하며 간호사 선생님의 입에 시선이 집중된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대략 오전이라고만 알고 있는 상태였다. 정확한 수술 시간을 알려주기는 어렵다고 한다. 이유는 앞의 환자의 수술 상태에 따라 한두 시간이 단축될 수도 길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미 모두의 왼손에는 수액과 항생제가 투여되고 있었다. 아직 정식 환자가 아닌데도 환자처럼 행동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수액과 환자복이었다.


오전 10시 45분이 막 지날 무렵이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507호로 들어와 내 이름을 호명한다. 나의 무릎 수술 차례가 온 것이다. 부위는 왼쪽이고 일단 절개해서 부서진 연골판 조각들을 제거한다 그다음 다리뼈와 정강이뼈가 만나는 부분에 천공을 해서 새로운 연골이 나오게 한다. 그리고 좌우측 근육처럼 생긴 인대는 절개를 해서 공간을 넓히고 운동력을 복원해 준다. 부분적으로 삐져나온 뼈는 절단을 해주어서 통증을 없앤다. 마지막으로 문제가 생긴 십자인대를 복원시키고 다시 바늘로 꿰맨다고 한다.


마침내 휠체어에 실려서 3층의 수술실로 이동한다. 수술 전 두려움보다는 수술 후에 환자 노릇을 제대로 할지가 더 걱정이다. 그러려면 일단 코코는 소리를 60 데시벨 이하로 낮추어야 한다. 기네스북에 오른 최고 기록은 스웨덴의 코레왈켓으로 93 데시벨이었다고 한다. 참고로 트럭은 90 데시벨, 비행기가 이륙할 때 나는 소음이 120 데시벨 정도라고 한다. 수술대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여름이 오기 전 다시 축구를 즐길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미소가 절로 나온다. 그놈의 축구가 수술실로 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떠오르다니 축구 환자가 맞나 보다. 아니면 축구교 신자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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