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왜 반드시 팬티를 입는 걸까? 그리고 브라를 착용해야만 할까? 당위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우연히 노팬티로 살기 시작하며 느낀 소회는 자유와 고정관념의 대립이었다.
1주일째 팬티를 입지 않고 살고 있다. 그래도 삶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나의 노팬티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퇴원해도 팬티를 입지 않을 생각이다. 인간은 언제부터 팬티를 입어야 했을까! 팬티는 자신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남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팬티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별일 아닌 팬티가 별일로 다가오며 심각해진다.
벌써 병원에 입원한 지 1주일이 되어간다. 생전 처음 해보는 수술이고 입원이다. 절차는 생각보다 복잡하였다. 수술 전날 입원해서 기본적인 검사들을 마치고 수술에 관한 준비절차에 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속옷 탈의를 몇 번이나 검사하고 확인한다. 가발이나 귀금속은 물론 화장이나 매니큐어도 지워야 한다. 무릎 수술인데 왜 팬티를 입지 못하게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환자복도 양쪽 옆트임이 완벽하다. 엉덩이부터 바지 끝단까지 언제든 열어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끈으로 열고 닫을 수 있어서 팬티까지 입지 못하게 하는 이유를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수술실로 향해야 했다. 팬티를 입으면 안 되느냐는 질문에 규정이라서 무조건 벗어야 한다는 답변만 돌아온다. 수술 후에도 팬티를 입지 않고 생활하고 있다. 노팬티 생활은 처음이다. 그것도 1주일이 넘어간다. 준비해온 10장의 팬티들은 캐리어에서 나와 보지도 못하고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다.
수술 전까지는 노팬티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수술이 끝나는 즉시 반드시 입고 말리라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기저귀를 팬티로 인정하지 않더라도 족히 50년은 입어온 팬티다. 추억의 브랜드명인 백양이나 쌍방울의 흰색 면 팬티부터 주병진의 보디가드 트렁크 팬티에 요즘 요행하는 라이크라 팬티까지 다양한 팬티와 함께해왔다. 한 시대를 반영할 만큼 팬티는 진화를 거듭해왔다. 팬티를 입지 않으면 마치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샤워를 마치면 팬티부터 챙겨 입는다. 혼자 살아도 팬티에 대한 애정과 집착은 변하지 않았다.
수술이 끝나고 마취가 풀리면 팬티부터 챙겨서 입을 생각이었다. 수술이 끝나자 세 개나 되는 수액 줄과 핏물 주머니에 반 깁스까지 한 상태에서 팬티를 입으려는 시도는 실패로 끝이 나고 말았다. 어지간해서는 포기를 모르는 성격인데도 불구하고 곧바로 포기를 선언하였다. 간호사 선생님에게 팬티를 입혀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참 난감하다. 50년이나 된 습관에서 탈출하기가 이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다. 어쩌면 팬티는 허상이고 고정관념일 수도 있다. 팬티의 기능을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하지만 치마도 아닌 바지를 입는데 굳이 팬티를 입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본다. 1주일이 지나는 시점에서 내가 팬티를 입었는지 벗었는지 조차 모르고 하루들이 지나가고 있다.
앞으로 1주일은 더 팬티 없이 환자 노릇을 해야 한다. 다른 환자들은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른다. 수술 후 팬티를 입으신 분들이 더 많을 것이다. 이제는 팬티를 생각하면 답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다. 어쩌면, 나라는 인간이 참 간사한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양말을 신지 않고 외출해 보기도 하였지만 노팬티는 처음이다. 심지어 자면서도 팬티는 반드시 입고 잤다. 세상에는 당연시되어야만 하는 일들이 너무 많다. 노팬티에 도전하는 이유도 세상의 금기를 깨 보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동안 너무나 당연시되어온 일들에 반기를 들어보는 것이다. 그 계기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올 줄은 몰랐다.
하마터면 죽을 때까지 평생 팬티에 속박당하는 삶을 살다가 갈 뻔하였다. 팬티를 매일 착용하면서 단 한 번도 왜 팬티를 입지 않으면 안 되는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노팬티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금기였고 일탈이었다. 지구별의 75억이 다 그렇게 하는 일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아주 가끔 있다. 연예인일 경유에만 집중 조명이 된다. 노팬티나 노브라에 대해 실랄한 비난과 비판이 쏟아진다. 이젠 그것조차도 다름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팬티나 브라를 착용하는 것도 착용하지 않는 것도 개인의 선택이다. 남들이 남의 속옷이나 사생활까지 참견하고 나설 문제가 아니다. 참견 자체가 직, 간접적인 사회적 관음 증일 수 있다.
앞으로도 세상에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오던 일들을 하나씩 들춰보고 싶다. 그리고 그 당연함의 이유와 근거를 묻고 싶다. 팬티 회사 운영하시는 분들이 긴장할까 봐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만의 삶의 방식일 뿐이다. 아직도 철이 들지 않아서 세상은 온통 호기심 천국이다. 글을 쓰는 작가라면 누구나 마주치는 일상일 것이다. 편견과 고정관념으로부터 빗껴 나서 또는 한발 물러서서 보는 시야는 글쓰기에 필수 덕목이기 때문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고 살아가는 방식이다. 노팬티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PD 수첩 제목이 벌써부터 그려진다. 카잔차스키 대표작은 그리스인 조르바다. 소설의 주인공인 조르바 영감이 처음부터 끝까지 호탕하게 주장한 것은 자유였다. 이제는 그 자유에 대해 사회가 관습이나 문화 또는 도덕이라는 잣대로 개인의 속옷까지 간섭하는 일들이 줄어가기를 희망한다. 자유에는 책임과 방종이 따르고 어쩌고 저쩌고 하며 한 마디씩 하고 싶은 분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분들에게는 일단 노팬티로 며칠만 생활해 보라고 권해 드리고 싶다.
참고로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는 삼성동 아지트리에서 "나는 매주 한 권 책 쓴다" 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루 만에 책을 쓰고 매월 또는 매주 책을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저자처럼 매주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이 15명(매월은 60명 이상) 이상 되었다. 앞으로도 그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강의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https://www.onoffmix.com/)에서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