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병원밥을 오래 먹고 있다. 삼시 세끼 정확하게 먹으면서 점점 삼식이가 되어가는 중이다. 정말 큰일이다. 퇴원해서 아침까지 챙겨 먹어야 한다니 벌써부터 끔찍하다. 그러고 보면 생의 거친 시기에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들이 밀려왔다 밀려간다. 하루라는 일상은 점점 소중해져 간다. 더 이상 하찮거나 사소한 일상이란 없다. 눈뜨고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눈곱을 떼 내며 또 다른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음에 가슴 설렌다. 태양이 떠올라도, 비가 내려도, 미세먼지로 가득해도 소중한 하루다. 회색빛 도시라고 미워하거나 푸념하지 않는다. 단지 무릎 하나의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인간 전체의 개조가 이루어지는 중이다. 그렇다고 사이보그까진 아니다. 약간의 철이 드는 과정일 뿐이다.
목요일 저녁 7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정신없이 침대에서 앉은 채로 졸고 있었다. 6인실에서 4인실로 이사 오고 나서 넓어진 공간만큼 마음도 넓어졌다. 딱 그만큼의 마음은 사치스러운 편안함으로 표출되었나 보다. 나라는 인간은 참 간사하다. 한참 쏟아지는 잠을 참지 못하며 고개를 떨구고 침을 막 흘리려던 찰나에 휴대폰 진동이 울리고 있었다. 황급히 전화를 받으려는데 이미 끊어졌다. 벌써 여러 번 울렸던 모양이다. 이 시간에 전화라니! 느낌이 심상치 않다.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같이 봉사활동을 하는 상훈이의 전화가 부재중으로 찍혀 있었다. 한참 퇴근 시간에 상훈이가 전화를 한 것이다. 다시 전화를 해야지라며 정신을 차리려는데 정장 차림의 상훈이가 역시 정장 차림의 미애와 함께 병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위풍당당한 그들의 모습에 잠시 뻘쭘해졌다. 초라한 환자복의 모습을 보여주고 만 것이다. 순간이지만 소매로 재빠르게 흐르던 침을 잘라서 닦고 정신을 가다듬어 본다. 애석하게도 생각처럼 정신줄이 빨리 돌아오지는 못한다. 잠이라는 역동작에 걸려 투수의 견제구를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아웃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잠시 졸다가 꿈을 꾸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이 내민 베지밀 박스는 현실이었다. 베지밀 박스에서 차가운 한기가 느껴졌다. 밖은 상당히 춥다는 의미였다.
퇴근길에 서울에서 분당까지 병문안을 온 것이다. 해인이도 왔다고 한다. 해인이는 주차공간을 찾지 못해 맞은편 NC백화점에 주차 중이라고 한다. 단체로 병문안을 오는 다른 침상의 환자들을 속으로만 부러워하던 나였다. 나는 급히 패딩 외투를 환자복 위에 걸치고 본관 카페로 둘을 안내하였다. 물론 간호사 선생님 몰래 외출이었다. 낙상사고가 빈번하여 몰래 외출하다 들키면 잔소리깨나 들어야 한다. 보조기에 의지한 채 본관 1층의 카페까지 가는 길은 짧지만 쉽지 않았다. 아직도 왼쪽 다리에 힘이 실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잠시 후에 반가운 얼굴 하나가 더 나타난다. 안성에서 온 해인이었다. 저녁 7시의 병실 탈출이었다. 봉사활동지에서만 보다 이곳에서 이렇게 만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였다. 저녁 7시면, 40대 초반의 바쁜 엄마 아빠들이 퇴근해서 저녁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챙길 시간이다. 밥도 안 하고 멀리까지 병문안을 온 것에 적지 않은 감동과 충격을 받았다.
예정에 없던 이들과의 상봉은 나의 썰렁한 아재 개그로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들도 나이가 들어가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의 응석 같은 아재 개그를 받아주고 있었다. 제법 진지할법한 이야기들은 나오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카페를 박차고 나가 치맥이라도 한잔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내가 뭐라고 여기까지 와 주었는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사실 이 후배들은 20년 전에 이민을 가기 전부터 같이 봉사활동을 하던 회원들이다. 그때 미애와 해인은 20살의 꽃 같은 새내기들이었다. 그런 그녀들이 엄마가 되고 사업가가 된 것이다. 상훈은 막 제대한 예비역으로 기억한다.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모두들 자신의 분야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 육아도 일도 봉사도 열심이다. 젊음을 이렇게 뜨겁게 불태워도 되는지 모르겠다.
1시간 남짓의 짧은 만남은 형식적이지만은 않았다. 세상 어떤 만남보다 소중하고 의미가 있었다. 트럼프와 김정의 역사적인 만남 못지않았다. 사람 사이에서 이러한 온기를 느껴보기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동안 내가 많이 외로웠나 보다. 무엇보다 사람 냄새가 좋다. 누군가와 같은 공간에 마주 앉아 같은 시간을 보낸다는 일은 어떤 의미일까! 사람 간의 온기를 나누는 소중한 일을 위해서는 물리적인 공간의 벽을 넘어서야 한다. 한마디로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다. 그래서 더욱 의미 있고 소중한 시간이다. 어쩌면 나의 불확실하고 언제까지 주어질지 모르는 내일(들)에 지대한 의미를 부여해줄지도 모른다.
한때, 매일 다가오는 그 소중한 내일을 포기하기 위해 온몸으로 안달하던 시기가 있었다. 살아야 할 이유나 목적을 상실한 시기였다. 우울과의 싸움에서 밀리고 난타당하면서 생각한 것은 오직 하나였다. 왜 이 세상에는 나 혼자밖에 없을까? 내가 살아있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이유를 그 어디에서도 찾지 못하였다. 당시의 일상은 살기 위해서가 아닌 죽지 않기 위해서에 맞춰져 돌아갔다. 죽지 않기 위해서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잠을 잤다. 누구나 인생에 한두 번은 겪는 제2의 사춘기 같은 것이었다. 탈출구가 필요한 시기에는 어떻게든 탈출을 해야만 했다. 지난한 허리 통증은 세상을 온통 먹구름으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우울이 몰아칠 때마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렸다. 그 비를 온몸으로 맞아야 했다. 세상에는 나 혼자밖에 없었으니까.....
후배들이 돌아간 뒤 병상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들은 몇 시간의 짬을 내어 나를 보러 왔다. 하지만 나에겐 평생 잊을 수 없는 크나큰 사랑을 남기고 돌아갔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에 목적이나 이유를 둘 수는 없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내일은 오고야 만다. 그 내일을 아무 생각 없이 태연하고 뻔뻔하게 맞이하는 것이 삶이고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여름날 쏟아지는 햇살만큼이나 무한대로 오고 또 올 것 같은 것이 내일이다. 삶에 고비가 올 때마다 기회도 함께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이제라도 매일 맞이하는 내일이 같은 내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다. 4인실 침상의 세분 모두가 하모니를 이루며 코를 고는 동안에도 내일은 들이닥치고 있는 중이다.
내일은 또 누가 병문안을 와서 나를 감동시킬지 모르겠다. 전화나 톡을 주고받을 때 말은 오지 말라고 한다. 그래도 은근히 오기를 바란다. 사람 마음처럼 간사한 것도 없다. 마치 어머니가 살아 계셨을 때처럼 말이다. 어머니는 각종 집안 행사나 명절 때마다 차도 막히고 힘드니까 나에게 내려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그렇다고 정말 내려가지 않으면 얼마나 서운해하실지 알기에 항상 고향집에 내려가는 이치와 같다. 고향 가는 10시간이라는 물리적 거리와 시간은 단지 어머니를 위한 충만한 시간들이었다. 길이 막히고 목이 마려워도, 오줌이 마려워도 마음은 벌써 고향에 가 있던 기억이 새롭다. "절대 병문안 사절"이라는 말은 나의 진심이 아니다. 오고 싶은 사람은 언제든 환영한다. 사람이 그립고 사람이 보고 싶다. 아무래도 내가 많이 외로워하나 보다.
참고로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는 삼성동 아지트리에서 "나는 매주 한 권 책 쓴다" 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루 만에 책을 쓰고 매월 또는 매주 책을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저자처럼 매주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이 15명(매월은 60명 이상) 이상 되었다. 앞으로도 그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강의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https://www.onoffmix.com/)에서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