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런던남자 Jul 27. 2019

영국으로 이사 왔어요 #6 영국인들의 축구 사랑

나의 20년간의 영국 여행 이야기



영국인들의 축구사랑


한국에 와서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모임이 있다. 바로 학교 동문들로 구성된 축구 모임이다. 주로 선배들이 대부분인데 축구에 대한 사랑과 열정만큼은 국가 대표급 이상이다. 그분들이 축구에 빠져 드는 모습은 무조건적이어서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남녀 간의 사랑에도 진실한 사랑인지 아닌지는 금방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축구에도 그런 감정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로웠다. 1주일 중 오로지 토요일 오전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보일 정도로 축구와의 사랑은 대단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렇게까지 즐겁고 가슴 뛰는 일이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할 뿐이다. 축구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할 정도로 매력적인 운동이고 스포츠였다. 월드컵 때마다 전 세계를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 위력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축구를 이야기할 때 영국을 빼놓고는 말이 되지 않는다. 영국을 이야기할 때도 축구를 빼놓고는 뭔가 허전하다. 축구의 종주국이 영국 이어서라기보다는 영국인들의 축구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의 현실에 비추어보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어디 축구뿐이랴! 올림픽의 메달도 그렇고 우리의 엘리트식 스포츠의 문제는 언젠가는 한계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다. 아니 벌써 한계에 왔는지도 모른다. 한국 축구의 현실과 한계도 지나치게 몇몇의 엘리트식 선수 육성 방식과 축구 협회의 투명하지 못한 운영이 빚은 결과물일 뿐이다.


영국의 프리미어리그는 전 세계의 축구 선수라면 누구나 한 번 서보고 싶은 꿈의 무대이다. 그것도 각국의 국가대표 중 에이스 정도는 되어야 한다.


한국 선수들도 여러 명이 도전하였지만 몇 명만이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설기현, 이영표, 이동국, 박주영, 이청용 등은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박주영은 벤치만 지키다가 한국 K 리그로 돌아가기도 하였다.



반면 박지성과 손흥민 기성용 선수가 그래도 현지에서도 인정받는 선수들이다. 요즘 손흥민의 주가는 대단하다. 명성은 물론 몸값 또한 천문학적으로 뛰고 있다.



영국의 축구 선수나 시설 관련 기본 인프라는 대단하다. 동네마다 천연 잔디구장이 있고 선수층도 놀라울 정도로 두텁다. 아마추어 리그는 몇 부부터 시작하는지 모를 정도로 많고 리그에 진입하기도 어렵다. 지역마다 리그가 별도로 운영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웬만한 클럽들은 아마추어 리그에 진입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지역 리그에서 계속 올라가면 내셔널리그에 진입할 수도 있다. 내셔널리그에 진입하면 진정한 프로 축구 선수로 인정을 받게 되며 내셔널리그에 진입한 팀은 FA컵 출전 자격이 주어진다.


한국 등 영국 밖의 나라에서는 프리미어 리그를 안방에서 TV로 그것도 생방송으로 시청할 수 있지만 정작 영국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스카이나 BT 등 매달 시청료를 별도로 내는 유로 케이블 TV를 설치해야만 시청이 가능하다. 그것도 빅 메치는 추가 요금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프리미어리그 게임이 열리는 주말에는 사람들이 펍으로 몰려들어 함성을 질러대며 격렬하게 응원한다. 펍에는 빅 스크린이 몇 개씩 있고 맛있는 생맥주를 마시면서 여러 사람과 경기를 즐길 수 있다. 가끔 훌리건 같은 사람들을 보면 살짝 겁이 나기도 한다. 어디에서 그런 열정이 나오는지 궁금할 정도이다. 이렇듯 국민 대다수가 축구에 미쳐있는 영국인데도 월드컵 등 국가대표의 A 메치 경기력은 영 신통치 않다. 오죽하면 몇 년 전에는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기까지 했겠는가?



잠깐! 여기서 영국의 축구라 함은 잉글랜드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라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스코틀랜드는 자신들의 프리미어리그를 별도로 운영하기 때문이다.


월드컵이나 A매치에는 영국을 구성하는 4개의 나라 즉,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노던 아일랜드가 한 팀이 아닌 각자의 팀으로 출전한다. 반면 올림픽은 한 팀으로 출전한다. 축구 종주국의 자부심을 드러내는 것도 좋지만 A매치나 월드컵에서 영국이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략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국의 축구광들은 축구 티켓을 매 경기 때마다 구입하지 않는다. 시즌 티켓이라고 해서 시즌 전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티켓을 한꺼번에 구입한다. 그래야 싸게 살 수 있다. 일반인이나 관광객들이 티켓 구매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도 영국에 20년 정도 살면서 실제로 경기장에 가서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직접 관람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매주 토요일 저녁이나 일요일 아침에 그날의 경기를 요약해서 방송해주는 BBC의 match of the day를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집에 스카이 TV를 설치하려고 몇 번 시도했지만 아내의 반대로 매번 무산되었다. 축구를 매주 직접 하는 것도 모자라 모든 경기를 시청까지 할 만큼 한가한 인생을 살 것이냐고 역정을 내곤 하였다. 더 이상 반기를 들 수 없었기에 일찌감치 집에서 프리미어리그 시청은 포기하였다.


물론 매주 토요일 아침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조기 축구 모임에 나간다. 내가 생각해도 축구사랑 아니 축구 중독은 도박 못지않게 심각하다. 하지만 이러한 중독은 권장할만하다.


요즈음은 여성 축구 클럽도 많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축구는 골프나 다른 운동처럼 돈이 거의 들지 않는다. 반면 운동효과는 대단하다. 무엇보다 2시간 동안 뛰면서 축구에 몰입하다 보면 잠시나마 세상 고민을 다 잊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축구라는 운동 자체가 워낙 격렬하고 힘들어서 딴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아무튼 둥근 공 하나를 놓고 두 개의 팀으로 나누어 22명의 선수들이 다투는 모습을 보면 인간처럼 단순하고 통제하기 쉬운 동물도 없는듯하다. 어디 선수뿐이랴! 멀리 떨어져 있는 지구 반대편에서까지 응원한답시고 들썩거릴 정도이니 말이다. 축구 응원에는 여성들도 남성 못지않다. 재미있고  한편으로는 우습기까지 하다.


어느 날 축구를 모르는 외계인이 지구에 나타나 공 하나를 놓고 22명의 선수들이 여러 명의 심판까지 두고 다투고 수많은 관중들이 함성을 질러대며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참! 알다가도 모르는 게 축구의 매력인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여보, 시간 나면 우리 이혼할까?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