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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에 당첨되었다!

나에게도 이런 행운이..

by 런던남자


로또는 우리의 어떤 꿈을 이루어줄 수 있을까?


영국에 살면서 적어도 1년에 서너 번 정도는 로또를 사 왔다. 나에게 로또를 사는 이유와 기준은 하나였다. 바로 전날 밤의 꿈이었다. 최소한 꿈에서 “똥” 정도는 나와 줘야 했다. 황금색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그렇다고 개똥은 곤란하다.

로또는 주로 내가 운영하는 일식집 근처의 세인즈버리에서 샀다. 영국에서는 로또를 보통 마트에서 판매한다. 동네 슈퍼에서도 판매하지만 일부러 동네슈퍼까지 가서 로또를 사본 기억은 없다. 꽃도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니 꽃집에서 꽃을 사본 기억이 없다. 꽃은 주로 막스 앤 스펜서에서 샀고 로또는 세인즈버리라는 대형 슈퍼마켓에서 샀다.

세인즈버리의 로또 판매 코너는 담배를 파는 곳이다. 영국에서는 담배를 진열해 놓고 판매할 수 없다. 그래서 담배를 살 때마다 직원들은 미닫이 진열장을 열어서 담배를 꺼내야 한다. 동선 하나만 추가되어도 줄은 길어지기 마련이다. 로또를 살 때마다 생뚱맞은 생각이 들었다. “과연 담배를 가린다고 흡연자가 줄어들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담배 갑에는 비흡연자가 상상하기 힘든 폐암과 구강 사진들이 들어있다.

담배와 로또를 판매하는 코너는 항상 줄이 길었다. 슈퍼마켓의 진입로 쪽에 위치해 있어서 간단한 샌드위치나 음료수 등을 구매하기에 편리하기 때문이다. 특히, 런던 시내의 점심시간이면 장사진이 펼쳐진다.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사려는 직장인들의 줄이 길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한국처럼 한 시간의 점심시간이 제공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통 30분 남짓이다. 점심은 법에 규정된 브레이크 타임에 해결해야 한다. 참고로 영국 직장인의 점심시간은 급여에서 빠진다. 각자의 브레이크 타임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의 직장인들처럼 12시에 단체로 가서 식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영국에서 로또를 사는 사람들의 연령층은 다양하다. 젊은 층보다는 오히려 노인층이 많다. 100세는 족히 되어 보이는 노인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장면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언제 생을 마감할지 모르는 노인들이 로또를 사는 이유가 궁금해지곤 하였다.


최소 90은 넘어 보이는 영국의 노인들이 인생역전을 꿈꾸려고 로또를 사는 것일까?

그분들은 아마도 매주 로또를 샀을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로또를 사러 나온 분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슈퍼에 간 김에 습관처럼 로또를 사 왔을 것이다. 어쩌면 로또를 사기 위해 슈퍼에 가는지도 모른다. 우유와 빵을 사기 위해 슈퍼에 갈 때도, 가디언이나 타임지 같은 종이신문 하나를 사기 위해서는 반드시 로또 코너에 들려야 한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신문을 사면서, 우유나 식빵을 사면서 로또를 사는 것이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자신만의 인생 숫자를 마킹해서 매번 같은 번호의 로또를 산다. 반면 젊은 층들은 기계가 무작위로 뽑아주는 번호인 러키 딥(lucky dip)을 선호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일장춘몽으로 끝나고 말지만 그래도 로또를 사는 이유는 하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다. 누군가는 로또에 당첨이 되어서 인생역전을 이룬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 누군가가 내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확률 따위를 생각하면 절대 살 수 없는 것이 로또다. 로또는 말 그대로 확률을 뛰어넘거나 무시해야 한다. 그래서 로또 인지도 모른다. 확률이 아닌 꿈을 사는 것이다. 돈을 주고라도 꿈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혹시나"는 매번 "역시나"로 끝나지만 그렇다고 좌절이나 절망하지 않는다. 다음번을 기약하는 것으로 꿈은 이어지고 희망은 단절되지 않는다.

나는 운 좋게도 지난주에 일생일대의 대박 꿈을 꾸었다. 꿈에 대통령과 돼지 그리고 누런 똥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황금빛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법 누리끼리해 보였다. 너무도 생생한 꿈에 전율마저 느꼈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이러다가 정말 로또에 당첨되는 거 아냐!


구술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꿈을 사야만 했다. 그 행위가 바로 로또를 사는 일이었다. 그랬다. 로또는 꿈을 이루기 위해 꿈을 사는 성스러운(?) 일이었다. 다행히 별다방 아래층에 로또만 전문으로 판매하는 곳이 있었다. 평소에도 눈에 띄었지만 그동안은 로또를 살 일이 없어서 외면했던 곳이다. 하다못해 불면의 밤들은 흔한 똥 꿈 한번 허락하지 않았다. 뽕을 따야 임을 보듯이 일단은 로또를 사야만 했다. 거금 만원을 들여서 두 장을 샀다. 나를 위해 두 장을 사보긴 처음이었다. 로또도 도박의 도벽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로또를 사지 않았다. 방귀가 잦아지면 똥이 나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한국 공무원들은 민중을 정말 개돼지로 보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영국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로또를 카드로 구매할 수가 없었다. 신용카드는 물론이고 현금카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반드시 현금으로만 사야 한다는 것이다. 신용카드는 그렇다 치더라도, 현금카드와 현금이 다르다는 사고방식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법률로 정해져 있다는 사장님의 말씀은 나의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유는 사행심을 조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신용카드로 얼마나 많은 충동구매를 하는가! 몇십만 원은 기본이고 수백만 원짜리 명품이나 여행상품도 신용카드로 구매한다. 심지어 한도가 없는 아멕스 카드도 있다. 물론 나에게도 아멕스 카드가 있지만 한국에 와서는 사용해본 일이 없다. 이제는 카드대금을 제때 납부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행성의 영역은 지극히 사적인 일이고 소비자가 판단할 몫이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고민하는 공무원들이나 정책 입안자들이 소비자의 사행심까지 걱정하는 일은 월권을 넘어서 심각한 국민 무시다. 군사정권 시절이라면 모를까! 민중은 개돼지라는 어느 고위공무원의 말이 떠오른다. 하지만 소비자는 그들이 걱정하는 초등학생이(전국의 초등학생들 sorry!!!) 아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아니 몇 배나 똑똑하다. 시민들의 도벽까지 걱정하는 오지랖은 이제 그만두었으면 한다. 그렇지 않아도 과도한 업무에 정신이 없는 분들이다. 자신들의 처신이나 잘해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네이버에 검색하면 바로 나온다는 사장님의 말은 당당하다 못해 짜증이 묻어있었다. 나처럼 이의 제기를 하는 소비자들이 얼마나 많았으면 저리 당당하실까! 짜증도 이해가 간다. 사장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자리에서 검색을 해보았다. 놀랍게도 사실이었다. 문제는 나에게 현금이 없다는 것이었다. 현금을 찾으려면 횡단보도를 건너 제법 걸어야만 한다. 더군다나 나는 무릎 수술 후 목발에 의지해 걸음마를 한창 연습 중에 있는 연습생 신분이었다.


엉뚱한 장벽 때문에 희망을 포기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간밤의 꿈을 포기하기에는 그 꿈이 너무나 아까웠다. 혹시라도 1등에 당첨될 수도 있는데 로또를 사지 않아서 인생역전의 꿈이 물거품이 될 것만 같았다. 근거 없는 확신은 자신감으로 충만해서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목발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녹색 등은 24초를 알리면서 점멸되기 시작한다. 마음은 급한데 생각처럼 걸음걸이가 진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간밤의 꿈은 나를 들뜨게 만들고도 남았다. 결국 현금을 찾아서 로또 두 장을 샀다. 이번에는 손이 떨렸다. 목발을 짚는 손목에 힘이 들어가서일 수도 있었다.

기적이 일어났다. 홀짝 게임에도 매번 지던 내가.. 내가.. 내가 로또에 당첨되다니! 어찌 되었든 당첨은 당첨이었다.

지난주 토요일 저녁에 추첨하는 로또였다. 거금(?) 만원을, 그것도 현금을 주고 산 두 장의 로또는 지갑에 가지런하고 예쁘게 넣었다. 희망이 지갑에 담기면서 며칠은 든든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렇게 며칠은 꿈을 간직하고 살 수 있었다. 비록 돈을 주고 산 꿈이지만 나에겐 소증한 꿈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웃을 일이 없는 암울한 겨울이다. 뉴스는 온통 코로나 바이러스뿐이고 대기는 하루 건너 미세먼지에 잠식당해 가뜩이나 우울한 겨울이다. 그 와중에도 주말에 바쁜 일이 있어서 로또를 깜박 잊고 있었다. 월요일에야 로또를 꺼내볼 수 있었다. 그것도 지갑을 들추다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지갑 밖으로 살짝 내민 하얀 종이를 보는 순간 아차 싶었다. 소중한 나의 꿈을 잠깐 잊은 것이 미안했다. 사람 마음은 이처럼 간사한 법이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로또 번호를 맞추어 보았다. 마음뿐만 아니라 손끝도 떨렸다. 놀랍게도 당첨되었다는 축하 메시지가 떴다. 다시 눈을 비비고 보니 물론 1등은 아니었다. 아무튼 당첨이라는 단어와 마주하는 일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세 개의 번호를 맞추어서 비록 5천 원에 당첨되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아쉽게도 다른 한장은 꽝이었다. 꿈을 내려놓게 만드는 꽝이었지만 그래도 밉진 않았다.




그렇게 작고 소소한 나의 꿈이 이루어졌다. 비록 수천이나 수만 분의 일로 축소된 꿈이었지만 나에게도 이런 행운이 찾아올 수 있다는 또 다른 희망이 반가웠다. 그렇다고 매주 로또를 살 생각은 없다. 다음번에는 좀 더 디테일한 꿈을 꾸기 위해 숙면에나 도전해볼 생각이다. 그래서 나의 당면 과제인 불면의 밤을 이겨내 볼 생각이다. 그때는 용까지 나와 주었으면 좋겠다. 용이 나와 주기 정 힘들다면 구렁이도 환영이다. 꿩 대신 닭이라도 좋다.

대통령께서는 공사다망하시니 안 나오셔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몇 초라도 찬조 출연해 주시면 좋겠다. 혹시라도 1등에 당첨이 되면 내가 좋아하는 상주 곶감 중에서도 최상품을 대통령께 진상하고 싶다. 출연에 대한 작은 보답이다. 김영란법도 신경서야 하지만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작은 꿈들이 나의 행복이라는 빈 곳간들을 채워줄 수만 있어도 좋다. 어제보다 아주 조금 만 더 행복한 오늘이고, 오늘보다 아주 조금만 더 행복한 내일을 위해 나는 또 꿈을 꿀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희망을 위해 만원이라는 거금(?)을 기꺼이 지불할 것이다. 다음에는 카드로도 꿈을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참고로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는 삼성동 아지트리에서 "나는 매주 한 권 책 쓴다" 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루 만에 책을 쓰고 매월 또는 매주 책을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저자처럼 매주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이 15명 이상 되었다. 앞으로도 그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강의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https://www.onoffmix.com/)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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