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반려식물들을 가족으로 입양했다. 혼자서 살림살이를 시작할 용기가 없어서였지만 역시 나에겐 무리였나 보다. 가족이 필요하다고 임의대로 함부로 가족을 만드는 과오를 범했다. 그냥 혼자 살았어야 옳았다. 나의 섣부르고 무책임한 행동에 애꿎은 자책이 난무하는 하루다. 병원에서 탈출하고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병원은 나하고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 그나마 소일거리로 글쓰기라도 붙들고 늘어질 수 있어서 다행이다. 간호사 선생님이 수시로 오신다. 틈만 나면 짬짬이 무언가에 몰입하는 나를 특이하게 바라보고 웃는다. 그러면서 병원 체질이라고 치켜세우신다. 천만의 말씀이라고 손사래를 치는 나는 절대 병원 체질이 될 수 없다고 항변한다. 그리고 내가 왜 여기에 똬리를 틀고 음습하고 우울한 이야기들을 써 내려가는지 모르겠다. 나도 행복하고 멋진 이야기들을 써 내려가고 싶다. 언젠가는..
"왜 하필 나란 말인가? 나는 어쩌다가 환자가 되어 오늘도 병원에서 이렇게 궁상을 떨고 있을까? 내가 전생에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런 시련이 한꺼번에 들이닥친 것일까? 왜 나에게.."
아주 짧고 굵게 체감한 나의 불행들에는 패턴이 있었다. 바로 설상가상이다. 나에게 불행의 법칙이 있다면 하나씩 단계별로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쓰나미나 산사태처럼 한꺼번에 몰려왔다. 아니, 아직도 몰려오고 있는 진행형 인지도 모른다. 불행의 끝판왕은 과연 어떤 녀석일지 호기심마저 발동한다. 마치 나의 인내심을 테스트라도 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내가 얼마나 포기를 모르는 독종인지 불행이란 녀석들은 몰랐을 것이다.
나의 꿈은 하이에나를 반려동물로 키워보고 싶은 것이다. 한국에서 불가능하다면 아프리카로 떠나서라도 말이다.
사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동물이 하이에나였다. 생김새 자체부터 완전 비호감이다. 사자나 호랑이처럼 카리스마 있는 포스가 절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치타처럼 빠르지도 않다. 표범처럼 나무를 잘 타지도 못한다. 하마처럼 덩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이에나는 내세울 게 없는 못생긴 약탈자의 이미지뿐이다. 하지만 녀석에게는 강한 턱과 포기할 줄 모르는 끈기가 있다.
하이에나는 목숨은 내주어도 한번 빼앗은 먹이를 결코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상대가 백수의 제왕인 사자여도 버틸 때까지 버틴다. 심지어 간 큰 녀들은 사자의 먹이마저도 빼앗는다. 물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천만한 모험이다. 영리한 하이에나는 이미 알고 있다. 사자가 죽을 만큼 배가 고프지 않으면 자존심을 버리고 먹이를 기꺼이 포기하기도 한다는 것을.
갑자기 내 인생이 하이에나처럼 구차해지는 느낌이다. 사실 구차하다는 표현은 하이에나를 모욕하는 일이다. 그들만의 삶의 방식은 생존에 최적화되어 있기에 마땅히 존중해주어야 한다. 어쩌면 구차가 아니라 숭고한 일일지도 모른다. 사자나 호랑이처럼 호령하며 살지는 못하더라도 최소 하이에나처럼만이라도 살아내고 싶다. 삶의 굴레와 허기 앞에서 사자에게도 굴하지 않는 하이네나 처럼 말이다. 하이에나에게는 우울도 무기력도 결코 용납되지 못하는 금기어이기 때문이다. 비록 남이 사냥해놓은 먹이들 약탈해가는 동물이지만 우울과 불안을 달고 사는 나보다 열 배, 백배 나은 녀석들이다. 하이에나를 좋아하기 시작한 이유다.
혈액 조영제의 부작용인지 기분은 하루 종일 우울하고 처진다. 우울을 달래 보려고 매일 마시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간호사님께 부탁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카페인 중독자가 되어 있었다. 매일 카페에서 똬리를 틀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글을 읽고 쓰는 일이 일상이 되면서 커피는 자연스럽게 나의 하루에 비집고 들어와 일부가 되어버렸다. 그것도 특정 카페의 커피만을 선호하게 되는 기현상까지 벌어졌다. 왜 다른 카페들은 그 카페처럼 맛이 일관되지 못하고 지점마다 들쭉날쭉할까! 어렵게 공수해온 타 카페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다 그 씁쓸함에 짜증이 난다. 별걸로 다 짜증을 내는 나를 아내는 얼마나 힘들어했을까! 아내에게 항상 미안한 이유다. 그 카페도 아내도 이제는 나에게서 멀어지고 있다. 그러고 보니 주제넘게 별걸 다 걱정해주고 있다. 내 코가 석자인데 말이다.
요즘 병원의 입원실 생활은 외출이 철저하게 통제되기 때문에 커피도 마음대로 마시지 못한다. 그렇다고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서 감방을 자처하고 나선 병원 측을 탓할 수도 없다. 그들의 규칙에 따르는 일이 나를 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기꺼이 죄수가 되어 몰래 어렵게 반입한 사제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절반은 냉장고에 넣어둔다. 내일 아침에 마시기 위해서다. 얼음 알갱이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한때는 명색이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던 귀한 커피님이시다.
사실, 내가 우울증 이야기부터 병원 이야기나 희귀 난치병 이야기를 글의 단골 메뉴로 사용할 줄은 몰랐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병원을 이렇게 내 집처럼 들락거릴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정신과부터 통증의학과, 정형외과, 재활의학과에 마침내 가장 난코스인 신경과까지 섭렵하고 있다. 어쩌면 내과나 흉부외과에 신세 질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오늘 신경과 의사 선생님의 말에 힘이 쭉 빠졌다. 그래서 더욱 우울한가 보다. 지금까지 수술은 고사하고 병원 문턱에 한번 가보지 않았던 건강체질이었다. 노안이 일찍 찾아온 것을 빼고는 타고난 건강을 자랑하던 나였다. 그렇게 오랜 세월 축구를 과격하게 해도 부상 한번 당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욱 나의 건강에 자부심마저 느끼고 살았다.(얼마나 자부심으로 가질 게 없었으면..) 하지만 극심한 스트레스 하나에 모든 것을 내어주고 말았다. 그리고 속절없이 무너져서 흘러내리고 있다.
나에게 가장 괴기스러운 철학자를 한 명만 선정하라면 단연 니체를 꼽는다. 젊은 날에는 니체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나였다. 하지만 질병들로부터의 공격을 받고 나서부터 그는 나의 위대한 스승이 되어가고 있다. 그의 삶 자체가 그리고 그가 쏟아내는 말들에 환호했다. 좌절과 절망에서 포기라는 카드를 꺼내려고 할 때마다 그는 구구절절 희망의 메시지를 쏟아냈다. 그리고 말했다.
"질병은 우리가 평생 안고 가야 할 가장 소중한 친구라고."
입원 2일 차가 지나고 있다. 오전에 가슴과 복부 CT를 촬영했다. 일반과 혈액 조영제를 투여하는 2가지 촬영이 이루어졌다. 혈액 조영제 촬영 전에는 돌발적인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는 설명을 듣고 서명을 하였다. 사고가 날 확률은 10만 명당 1명이라고 한다. 병원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사전 조치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불안이 가중된다. 모르던 사실을 알았을 때의 그 불안은 확률과는 상관없이 그저 밀물처럼 몰려온다. 10만 분의 1 이면 지방의 웬만한 도시 인구에서 한 명에 해당하는 수치다.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그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것은 그에 준하는 희귀병에 이미 당첨되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수술한 왼쪽 무릎의 도수치료와 재활치료를 마치고 선물로 병원의 저녁상을 받았다. 허기를 느끼지 않아도 먹어두어야 한다. 길고 긴 겨울밤을 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바로 옆의 휴게실에서는 하루 종일 코로나 19 뉴스 특보만 들린다. 왜 먹어야 하는지도 잃어버린 채 일단 먹고 본다. 살기 위한 몸부림 중 하나가 먹는 일이 리라! 언제쯤에나 남들처럼 건강한 몸으로 맛집을 찾아다니는 미식 여행을 해볼 수 있을까! 언제쯤에나 평생을 즐겨온 축구를 위해 운동장에 나갈 수 있을까! 언제쯤에나 막걸리잔을 비우며 친구들과 수다 삼매경에 빠져볼 수 있을까! 언제쯤에나..
내 몸이 이럴진대, 코로나고 나발이고 다 귀찮아진다. 답답하고 지친다. 나는 절대로 병원 체질이 아닌가 보다. 병원 입원실에서는 많은 노인들이 휴게소에 삼삼오오 모여 하루 종일 TV 앞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춘삼월이 코앞이다. 이제는 남도의 꽃소식이라도 듣고 싶다. 이번 봄이 올 때는 온갖 꽃들이 한꺼번에 그리고 일시에 쏟아지면 좋겠다. 이미 남도에서는 꽃이 피어나고 있을 시절이다. 하지만 이번 봄은 꽃노래나 부를 만큼 한가하지 않다. 그래도 겨울이 가고 꽃이 피는 세상의 이치가 나와 우리의 아픔과 고통들을 희석시켜 주었으면 좋겠다.
꽃은 지기 때문에 아름답다. 우리의 삶도 언젠가는 꽃처럼 져야만 하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고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의미를 잃은 저녁을 먹고 나서 한숨 돌리니 오피스텔에 두고 온 반려식물들이 생각난다. 주인의 빈자리를 녀석들은 과연 얼마나 버텨낼지 모르겠다. 아직 통성명도 제대로 못한 어색한 사이다. 이름을 지어주어야 통성명이라도 할 텐데 그럴 시간이 없었다. 창문을 살짝 열어 그나마 재한 된 빛과 바람으로 숨통을 터주었지만 물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스마트 팜을 먼저 공부하고 녀석들을 들일걸 그랬나 보다. 혼자 사는 사람이 욕심을 부린 것 같아 녀석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키가 나보다 더 큰 해피트리와 화분을 터뜨릴 기세로 올라온 동양란을 제외하고는 다른 녀석들의 생명은 장담할 수 없다.
반려식물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녀석들 때문에라도 빨리 퇴원을 해야 할 텐데. 걱정이다. 언젠가는 아프리카 초원에서 하이에나와 살고 싶다. 단순하지만 자유롭게..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서울 선정릉 [모두의 캠퍼스] 강의 신청하기 / 월출산 국립공원 카페 [기억] 강의 신청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