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허무함과 각자의 자유를 찾아서....
봉사활동 못지않게 우리 부부의 공통의 관심사는 배낭여행이었다. 취미와 걸어온 길이 비슷하다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호기심을 같기에 충분할 만큼 우리는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어학연수나 배낭여행의 초창기 세대로서 겪은 고생들을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내는 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봉사활동도 중남미의 어느 국가에서 2년을 하였다. 배낭여행도 중동이나 아랍국가 위주로 하였다. 결코 평범한 길을 가지 않으려 노력한 흔적이 엿보여서 더 좋았다.
봉사활동이나 배낭여행에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는 도전적이고 개척적인 면이 강하다는 반증이었다. 특히 남자도 아닌 여자가 혼자 배낭을 메고 아랍 국가들을 여행한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당시 배낭여행에 빠져든 이유는 간단하였다. 좀 더 넓은 세상을 접하면서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여행의 설렘이나 기쁨을 알아서가 아니었다. 여행의 참맛을 알려면 대학생이 아닌 직장인 때가 오히려 좋다는 것도 후에 느끼게 되었다. 일을 하다가 지친 몸과 마음을 위해 떠나는 여행과 단순히 시간이 남아서 하는 여행에는 분명 차이가 컸다. 요즘은 1년 동안 휴식을 취하면서 시간이 남아돌지만 여행을 떠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어디로든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많지만 참다운 여행의 묘미를 느낄 자신이 생기질 않는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월차, 연차 모아서 떠나던 여행이 주는 설렘을 느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행이 주는 자유와 해방을 논하지 않더라도 배낭여행이 주는 낭만은 연애시절의 우리의 단골 화재였다.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취미를 가지고 같은 가치관까지 가진 사람을 만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거기에 나의 가장 큰 단점을 보완해줄 수도 있는 완벽한 사람이었다. 그 단점 중의 하나는 현명하고 침착하다는 성격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키가 크다는 점이었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도 결혼을 미룰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모든 허례 의식이라 불리는 형식을 배제하고 그 짧은 시간에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영원히 행복하게 살 줄 알았다. 착하고 현명하기까지 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는 행운을 거머쥐었다는 사실에 나는 세상에 어떤 두려움과도 맞설 용기가 넘쳐났다.
이민을 그렇게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바로 아내였다. 아내 또한 한국 사회에 회의와 염증을 느끼고 있었던 차였다. 거기에 결혼이라는 현실과 마주치면서 아내의 가장 큰 고민은 생계도 사업도 남편도 아니었다. 바로 태어날 아이의 양육과 교육이었다. 가능하면 선진국에서 아이를 낳아 양육하고 교육시키고 싶은 마음이 본능처럼 꿈틀대었던 것이다. 그게 엄마의 마음이고 모성애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지나친 모성애는 점차 남편이라는 나의 자리를 위태롭게 만들어가고 있었다. 아내에게 있어서 세상의 모든 일은 아이 위주로 돌아가고 있었다. 물론 아이에게 알레르기나 아토피 같은 문제가 있었음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이가 성장하면서도 남편이란 존재는 점점 미세해져만 갔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처럼 느껴
졌다. 그래도 경제력을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는 점이라도 인정받을 수 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나는 결혼 생활 내내 혼란스러웠다. 과연 이러한 생활이 나에게만 있는 일일까? 아니면 다른 많은 아빠들도 겪는 일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결혼이란 무엇일까? 왜 결혼하고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만들고 지켜야만 하는 것일까? 끝없는 번민이 이어지면서 그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 고립감으로부터 느끼는 외로움은 오로지 혼자만의 몫이었다. 삶의 의미는 점점 퇴색되어가고 있었다.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항상 행복한 일만 넘칠 줄 알았던 나의 꿈은 그렇게 산산조각이 나고 있었다.
내가 처음 아내를 만나 사랑을 느낀 부분은 외적인 부분도 있지만 내면의 자아에서였다. 아내는 내가 꿈꾸던 완벽하리만큼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하고 있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얽매이지 않는 삶을 추구하였다. 정상적인 직장 생활을 할 수도 없을 만큼 자유롭게 살았다. 그러한 모습은 내가 평소에 꿈꿔오던 이상적인 자유의지였고 그 의지대로 살아가는 힘의 분출구였다. 하지만 나는 그럴 용기가 없었다. 지갑에 돈이 떨어지면 늘 불안하였고 통장에 잔고가 마이너스가 되지 않도록 무던히도 애를 썼다. 물론 마이너스일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 과정에서 자유는 항상 구속을 당하고 작아져만 가야 했다. 일상적인 삶을 살면서 자유를 누리려는 나의 태도는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 모순 그 자체였던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가는 진정한 자유인이었다. 휴대폰도 없이 살아서 연애할 때 가장 힘들었다. 모든 것은 메일로 주고받아야만 하였다. 일정 부분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그 자유로움이 주는 기쁨이 크고 즐겁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버리지 못하고 가지려고만 하는 사람이었던 나는 아내를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같은 학번으로 같은 시대를 살아온 친구 같은 존재여서 서로에 대해 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결혼생활이 2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아내는 자유를 꿈꾼다. 그것도 진정한 자유를 말이다. 그 자유에는 내가 끼어들 틈새가 전혀 없다는 일이 불행인 것이다. 이제는 아이도 성인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그 자유에 대한 갈망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서 나는 과연 투쟁을 해서라도 아내의 자유를 억누르고 가정을 지켜야 하는지 수도 없이 고민하고 지금도 고민 중이다. 이미 답은 나와 있는데도 나는 가정이라는 울타리만큼은 지켜내야 하나다는 가장의 책무에 오늘도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자유란 과연 어떤 것일까? 자유로운 영혼은 결혼생활을 지속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존중되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오늘도 스쳐 지나가는 후덕 지근한 여름 바람에 물어본다. 자유로운 영혼에 내가 갇힌 것은 아닌지, 아이면 내가 자유로운 영혼을 가두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답을 얻고 싶다. 아무튼 아내는 자유롭게 살기를 원한다. 그 자유가 어떤 자유인지를 알기에 나는 더욱 괴롭고 힘이 드는 것이다. 나의 외로움에 대한 근원도 바로 여기에서부터 발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결혼 전이나 결혼 후에도 운명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운명이란 말 그대로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의사를 결정짓거나 내가 그 의사를 따를 수밖에 없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힘을 말한다. 결혼이나 이혼에도 운명을 들이대며 결혼할 수밖에 또는 이혼할 수밖에 없다고 합리화시키는 그 과정이 너무 싫었다. 오랜 기간을 살다 보면 서로 간의 몰랐던 부분이 뛰쳐나와 상대방을 아프게 찔러댈 수 있는 것이 결혼생활이라고 생각한다. 그 아픔이 참아낼 만한 것이면 계속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지킬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이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혼이 더 이상 의무감이나 책임감의 하수인이 되어 견디어 내고 감내해야 할 무서운 대상이 아니다. 결혼하듯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끝가지 가정의 울타리를 지키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그러한 노력도 없이 너무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다들 비슷하다. 어느 날 운명처럼 다가오는 배우자에게 사람을 느끼고 눈에는 콩깍지가 낀다. 그래서 그 사랑은 운명이라고 말한다. 영원할 것만 같은 사람은 아름답고 투명하다 못해 영롱하고 삶의 의미는 충만해진다. 짝을 찾은 새가 온 정성을 다해 둥지를 만들고 꾸며나가듯 유토피아 같은 보금자리를 준비하게 된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이 아름다운 사람은 운명이라고 믿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자신들의 사랑은 영원할 것이라고 믿게 된다. 그리고 영원을 다짐하며 결혼식을 올리고 열심히 준비한 둥지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이 둥지에서의 삶은 그런대로 문제없이 안온하게 하루하루를 연결해 나간다. 그렇지만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그 안온하던 일상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운명이라고 믿었던 사랑으로 태어난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육아는 금방 그 평온을 파괴하고도 남을 만큼 힘든 일로 다가온다.
운명처럼 다가온 사랑은 물안개처럼 사라져 버리고 신혼의 단꿈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그러면서 서로 간에 대한 섭섭함은 증대되고 급기야 원망이라는 부메랑으로 서로에게 날린 아픈 생채기들이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이처럼 운명이라 여겼던 사랑은 순식간에 이상한 감정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순간순간 되돌아오려다가도 또는 돌이키려 노력해도 현실의 애매하고 난해한 삶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 그것이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사랑의 틈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아픔이다. 물론 일부의 이야기이지만 그 일부가 너무 많아져가고 있다는 아쉬움은 씁쓸하기만 하다. 때로는 우리에게 그런 사랑이 있었기나 한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물론 분명하게 그런 운명적인 사랑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그래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유지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