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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May 06. 2020

청개구리랑 같이 샤워합나다

어쩌다 보니 국립공원에 삽니다!



꿈들은 웅변적일 뿐 아니라 아름답기까지 하다. 프로이트가 그의 꿈에 대한 이론에서 놓쳤던 것이 바로 이런 측면이다. 꿈은 커뮤니케이션일 뿐 아니라 미학적 활동, 상상력의 유희이며, 이 유희는 그 자체가 하나의 가치다. 꿈은 상상하는 것, 없는 것을 희구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심층적인 욕구 중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바로 그 점이 꿈속에 철면피한 위험이 은폐된 이유이기도 하다. 꿈이 아름답지 않다면 쉽게 잊힐 수도 있을 것이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에서>


 도시인들에게 아름다운 산이나 바다 근처에서의 삶은 그저 꿈일 뿐이다. 당신에게 산과 바다 곁에 살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디를 택할 것인가?     


 우리 인간은 다양한 꿈을 꾸며 살아간다. 첩첩산중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 바다가 보이는 집은 또 얼마나 낭만적인가? 한때는 산과 바다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너무 심각해지다 보면 헛웃음이 나와서 머리를 긁적여야만 했다. 어차피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두고 저울질하는 자신이 민망하였다. 그런데 민망한 줄 알면서도 꿈을 두고 저울질하는 일을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혼자 즐길 수 있었고 돈도 전혀 들지 않아서였다. 나의 육체와 영혼이 나이 들어도 이처럼 기분 좋은 꿈은 결코 늙지 않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었다. 중국집에 가면 자장면과 짬뽕을 두고, 냉면집에 가면 물냉면과 비빔냉면을 두고, 일반식당에 가더라도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를 두고 고민하지 않은 적이 거의 없었다. 취업할 땐 사기업과 공기업을 두고, 결혼할 여자를 두고도, 이민 갈 나라들 두고도 심각하게 고민을 하였다. 선택은 싫든 좋든 나의 몫이었고 선택에 따른 책임도 나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무인도에 갈 일이 생겼다. 바다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한때는 꿈이 어부였기 때문에 바다 또한 나의 주거지 옵션에 항상 남아있었다. 알고 보니 어부라는 직업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지만 어부는 바다에 목숨을 내줄 용기가 필요한 직업이었다. 어린 시절 동네 저수지에서 두 번이나 빠져서 죽을 뻔하였다. 그 뒤로 깊은 물에서 수영을 하는 일은 없었다. 물에 대한 트라우마는 지금까지도 수영장이나 물가에 가면 온몸이 경직될 정도다. 그런데 요즘은 다이빙을 배우려고 꿈을 꾸고 있다. 수영 못하는 다이버라니 참 재미있는 세상이다.      


 지난해 이맘때쯤의 늦은 봄이었다. 1박 2일 동안 서해의 어느 무인도를 갑자기 여행한 적이 있었다. 무인도에서 살갗을 마주한 바다는 자연을 넘어 우주의 섭리를 가르쳐 주고 었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물이 빠졌다가 다시 들어오는 모습은 자연의 질서이기 전에 너무도 숭고하고 장엄한 종교행사처럼 느껴졌다. 그 질서에 맞춰서 대지의 만물이 리듬을 타며 살아가는 바다는 아름다음과 신비 그 자체였다. 바람이 일렁일 때마다 파도가 밀려왔고,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외로움은 하얗게 부서졌다. 그렇다고 마냥 외로워만 할 수도 없었다. 파도는 자신 앞에서 부서지는 나의 외로움에게 다시 한번 용기를 내라며 나의 마음을 다독이고 있었다. 산과 달리 바다는 결코 침묵하는 법이 없었다. 때로는 어머니처럼 너그럽지만 때로는 아버지처럼 버럭 화를 내기도 하였다. 무인도란 섬에는 섬이 살지 않고 하얗게 부서지는 외로움만 넘실대고 있었다. 결국 섬에 갔지만 섬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 산에 깊숙이 들어가면 산이 보이지 않듯이. 결국, 섬에서 바다만 보고 돌아와야 했다. 처음부터 나의 마음이 산으로 가 있긴 하였지만 지난해 무인도 체험으로 산 쪽으로 더욱 기울어져 갔다. 언젠가는 산으로 떠나야만 했다. 그 시기가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산의 정령들이 나를 산으로 부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삶이 앗아간 루틴을 삶으로부터 되돌려 받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산으로 들어왔다. 런던에서 살면서 거의 유일하게 보던 한국방송이 "나는 자연인이다."였을 정도로 산에 빠져가고 있었다. 물론 방송 액면을 그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투박하고 거친 삶이 부러웠다. 벌써 국립공원에서 산중 생활을 시작한 지도 몇 주가 지나간다. 아직까지 새로운 직업이 생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매일 해야 할 일들이 생겼다. 삶으로부터 루틴을 돌려받은 것이다. 그 어떤 선물보다 반갑고 의미 있는 선물이다. 매일 아침 눈뜨자마자 산과 인사를 하고 기지개를 켠다. 천황사까지 가벼운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펜션의 체크아웃 손님들에게 인사를 한다. 방이 빌 때마다 청소를 하고 이부자리 세팅을 한다. 세탁기는 하루 종일 돌아가고 빨래는 끝이 없다. 수건부터 이불까지 모든 것을 세탁한다. 8시쯤에는 아래층의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점심과 저녁도 마찬가지로 식당에서 여동생 내외와 함께 식사를 한다. 어쩌다 보니 삼식이가 되어버렸다. 식후 30분에 먹어야 할 약들 때문에 아침식사도 시작하였다. 20여 년간 먹지 않던 아침을 먹는 일은 고역이 따로 없었지만 이 또한 익숙해져 가고 있다. 누군가와 같이 끼니마다 식사를 하는 일이 굉장히 어색하다. 그 누군가가 바로 아래의 여동생일지라도 말이다. 그만큼 홀로 지낸 시간들이 길었다.      



 펜션 청소와 세팅이 끝나면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식당이 바쁘다는 호출이 오면 즉시 출동해서 서빙이나 계산일을 도와준다. 국립공원이라는 관광지에 위치한 식당이다 보니 규모가 일반 식당의 몇 배는 되는 거 같다. 1층은 식당이고 2층은 펜션이다. 식당은 주말이나 연휴 그리고 휴가철이 피크 타임이라고 한다. 그 큰 식당이 다 차는 일은 없어져버렸다. 코로나 19 여파로 아직 관광버스가 들어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힘들어하는 여동생의 이마엔 어느새 주름이 하나 늘어 있었다. 내가 가장 말리고 또 말린 직업이 식당이었는데 여동생은 기어코 그 길로 들어선 것이다.      


 사람 심리는 누구나 같다. 그래서 사기꾼들도 활개를 칠 수 있는 것이다. 알고도 당하는 일이 사기라면  알고도 창업하는 일이 식당이었다.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많이 생겼다가 가장 많이 폐업하는 곳이 식당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식당으로 돈 벌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내가 하면 다를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은 결국 많은 것을 잃게 한다. 나도 여동생도 그 길을 갔거나 가는 중이다. 다행히 여동생의 식당에는 단골들이 있어서 그런대로 유지를 해주고 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내에 의하면 런던에 있는 우리 가게는 6월에나 다시 영업을 재개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 또한 아직은 장담할 수가 없다고 한다. 영국의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급하게 마스크를 보내려고 준비 중이다.    


 산은 자꾸 뒤를 돌아보게 한다. 돌아볼 때마다 지난날들의 아름다운 추억보다는 회환이 밀려드는 것은 왜일까!      


 주변이 온통 산 천지다. 월출산은 남도의 평원에 우뚝 솟아오른 바위산이다. 산 전체가 커다란 바위 하나처럼 보일 정도로 거대한 암벽들을 바라보면 괜한 자부심이 생기며 눈물이 난다. 내가 그 정도로 산을 좋아했던 것일까! 눈물은 기쁠 때도, 슬플 때도, 누군가를 그리워하거나 또는 무엇인가에 격하게 공감해도 터져 나온다. 재미있는 사실은 영국이라는 나라 중에서 잉글랜드에는 산이 없다는 사실이다. 작은 언덕들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그 힐조차도 제주도의 오름처럼 산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이민 갈 때 가져간 등산화를 버렸던 기억이 난다. 물건이란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즉시 버리는 것이 나의 삶의 방식이다. 버린다는 의미는 쓰레기통에 집어던진다는 것이 아니라 재활용할 수 있도록 체러티 샾에 기부하는 것을 말한다.       



 해가 길어지면서 산에서 해지는 모습을 자주 감상한다. 산에서의 일몰은 순식간이다. 산 정상에 걸린 해가 미끄러져 반대편으로 떨어지기 무섭게 어둠이 밀려든다. 비가 오늘날에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산의 모습을 보려고 더욱 분주해진다. 어제가 바로 그런 날이었다. 일요일은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는 산은 적막해진다. 오가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산을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산속 탐방로로 걸어 들어간다. 산속으로 들어가면 산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된다. 뒤를 돌아보면 지난날의 아픔들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그리고 사업체의 사장님으로서 나의 아픈 기억들만 몰려온다. 무인도에 빠졌던 물이 몰려오면서 광활한 백사장을 매우며 언제 광활한 적이 있었냐는 듯이.      


 돌이켜 보면, 20년의 이민 생활은 내 인생의 황금기이자 절정기였다. 나의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민이 처음인 것처럼, 결혼도, 출산도, 사업체 운영도 모두 처음이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견디면서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주위 사람들의 마음도 많이 아프게 하였다. 특히, 삶의 동반자이자 사업체의 동지였던 아내에게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산을 바라볼 때마다 헛된 생각이 나를 괴롭힌다.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만 있다면 좋은 남편부터 될 것이다. 그다음에 아이가 있고 사업체와 직원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산은 말한다. 이미 다 끝난 일이라고. 다시 과거로의 회귀는 또 다른 아픔만을 잉태할 뿐이라고.     

  

 당신은 과거로 회귀할 수 있다면, 10년이나 20년 전쯤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산은 그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태초부터 여기가 산이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멀쩡한 평지에 불량스럽고 무지막지하게 솟아오른 암벽들이 왠지 의심스럽다. 바다였거나 사막이었을지도 모르는 땅에 바위들이 솟아오른 이유를 지리학자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지각변동으로 인한 화산 폭발이나 융기 등으로 바다가 산이 되고 산이 바다가 되던 45억 년 이상의 나이가 그 사실을 대변해 줄 뿐이다.     

 

 대학에 들어가면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학생들이 너무도 많다. 특히, 좀 더 나은 학교로 편입 준비부터 하는 학생들에게는 시간을 돌리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고등학생으로 돌려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중의 극소수만이 무한경쟁에서 좀 더 나은 대학으로 진학할 것이다. 나의 결혼생활과 이민생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한국으로 편입 준비를 했는지도 모른다. 한국으로 편입하면 내게는 과연 어떤 장점이 있고 어떤 다른 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한국은 나를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산은 나의 상처와 응어리를 치유해 줄 수 있을까! 그런 생각마저도 내려놓아야 할 욕심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내려놓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문제다.


 답은 이미 나와 있을지도 모른다. 우주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듯이 우리의 삶도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 없다는 것이다. 수많은 오늘들이 쌓이고 쌓여서 좀 더 나은 오늘을 만들어갈 뿐이다. 어쩌면 과거나 미래는 우리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직 오늘만이 의미 있는 시간이다. 다행히 인간은 오늘을 살아가는 능력밖에는 없다. 아직까지는.


 저녁에 샤워장에서 샤워를 하는데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청개구리 녀석이 뜨겁다고 펄쩍펄쩍 뛴다. 졸지에 더운물을 포기하고 찬물로 부들부들 떨면서 샤워를 하였다. 봄이 끝나가는데도 산중의 찬물은 아직 차갑다. 그렇다고 청개구리에게 화상을 입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청개구리와 같이 샤워를 하다니! 정말로 산중에 들어온 것이 맞긴 맞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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