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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Oct 26. 2020

돌아가신 시아버지 내연녀를 동정하는 남편

런던의 사임당은 언제까지 남편과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선배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시간 되면 만나서 잠깐 커피 한 잔 할까? 아니다. 본론부터 말할게. 선배 같으면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해서 전화한 거야.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신 시아버지에게 내연녀가 있다는 사실을 나와 남푠(편)이가 우연히 알게 되었어. 시아버지의 내연녀에게 연락을 해야 할까? 돌아가셨으니  더 이상 기다리지 말라구.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안 되면 얼마나 애가 탈까? 그렇다고 연락하는 것도 이상한 일 아닐까? 아니면 시어머니에게 그냥 이실직고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모두 덮어버려야 할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난주에 한국의 시아버지 장례식에 다녀왔어. 근데 시아버지에게 아무도 몰랐던 내연녀가 있더라구. 거기까진 그럴 수 있다고 처. 근데 울 남푠이란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도 그 내연녀 할머니께 자기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걸 알리겠다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그 할머니는 언제 까지나 계속 아버지의 답장을 기다리지 않겠냐면서. 카톡 메시지가 많이 와 있더라구. 그래서 너무 불쌍하다는 거야. 그 내연녀 할머니가. 나 참 기가 막혀서..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해줄게.




 그녀의 언행은 매력적이고 사고는 아름다웠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도 런던의 금융허브인 카나리와프에서 일했다. 누구에게든 특히 남자에게 지기 싫어하는 승부근성은 과연 프로다웠다. 지독하리만큼 원칙을 지키려 노력했고 수다를 떨 때에도 품위를 잃지 않으려 자주 헛기침을 했다. 남편과의 불화가 상당했지만 그렇다고 한 눈을 파는 일은 없었다. 한 눈을 파는 사람들 이야기가 나오면 저주를 퍼부을 정도로 대놓고 싫어했다. 바람이니 외도니 하는 단어들이 원칙을 중시하는 그녀의 일상에 끼어들 틈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그런 단어와 관련된 사람들 이야기라도 나오면 노골적으로 무지막지하게 경멸하는 여자였다.


 그녀는 블라우스의 단추를  하나만 남기고 모두 잠글 정도로 단정한 스타일이었다. 그 하나마저도 잠그고 싶은 욕구가 강해 보였지만 너무 고지식해 보일까 봐 차마 잠그지 못하는 듯했다. 보통 영국이나 유럽 여자들이 블라우스 단추를 두 개나 심지어 세 개까지도 잠그지 않는 것에 비하면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런던의 사임당이라 불렀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자지러졌다.

 우리는 비즈니스 때문에 만났는데 알고 보니 대학 동문이었다. 5년 후배였다. 그때부터 그녀가 나를 선배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건 아니다. 꼬박꼬박 선배님이라고 불렀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님"자를 슬쩍 빠트리기 시작했다. 하지나쁘지  않았다. 존칭도 아니고 반말도 아니고 참 애매모호한 호칭이 바로 선배라는 단어다. 존칭이 되려면 선배님이라고 불러야 할 테고 반말이 되려면 선배야라고 불러야 한다. 하지만 그냥 선배라고 부르면 두리뭉실하지만 제법 친근감 있는 호칭으로 손색이 없긴 하다.

 신사임당만큼이나 격조 있고 세련된 그녀는 런던에서 10년째 살고 있었다. 남편의 주재원 비자로 가족이 함께 왔다가 비자가 끝나자 런던에 눌러앉았다. 지금은 어렵지만 옛날 옛적엔 그렇게 눌러앉은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내가 만난 런던의 한국 아빠들은 부인의 부당한 압력에 쉽게 굴복하는 성향이 있었다. 아내들은 종종 자녀의 교육문제 앞에서는 당돌해지고 용감해진다. 귀족 못지않은 귀하디 귀한 신분인 주재원을 포기하는 승부수를 던진다. 교회든 마트든 카페든 가리지 않고 입이 달토록 다른 부인네들에게 자랑하던 대기업! 자기 남푠이가 다니는 그 대기업도 포기하는 괴력을 보여주곤 한다. 사임당의 남편은 잘 나가던 직장을 퇴사하고 사업비자로 사업을 시작해야만 했다. 자녀들의 교육 때문에 탄탄대로를 포기하고 가시밭길로 들어서는 그 많은 남푠이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그녀 시댁이 워낙 부자여서 투자이민 자금 정도는 쉽게 지원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어느 날 한국의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이들도 학교를 빠지고 남편은 사업장 문을 닫고 가족 모두가 급히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시아버지는 강남 집 근처의 봉은사로를 산책하다 갑작스럽게 돌진한 승용차에 밀려 카페 안에서 어이없게 돌아가셨다고 한다.

사임당: 선배 내 말 좀 들어봐. 내가 참 기가 막혀서.  
나: 한국엔 잘 다녀왔어? 피곤하겠다.
사임당: 그래 좀 피곤해. 글쎄 말이야. 우리 남푠이란 작자가..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나: 무슨 일인데? 진정하고 이야기해봐.

사임당: 아 글쎄 말이야.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우리 시아버지가 내연녀가 있더라구.

나: 그럴 수도 있지 않아? 너희 시아버지는 강남에 빌딩이 몇 채라면서?
사임당: 그렇긴 하지. 근데 기가 막힌 것은 시아버지의 내연녀가 아니라구.

나: 그럼 뭔데?

사임당: 글쎄 울 남푠이란 작자가 시아버지를 두둔하는 거 있지.

나: 근데 돌아가신 시아버지 내연녀를 어떻게 알아냈어? 너희는 런던에서 10년째 살고 있잖아. 시아버지가 가끔 카톡으로 내연녀 자랑한답시고 시어머니 몰래 사진이라도 보내줬니? 그거 있잖아. 인증샷말이야. 내연녀랑 근사한 곳에서 와인을 마시며 찍은 사진이라든가.

사임당: 선배.. 뭔 소리야. 정신 차리라고.

나: 그럼 시아버지의 내연녀가 어떻게 알고 장례식장에 쳐들어오기라도 했었니? 너네 시아버진 상당한 부자라면서.

사임당: 아이구 이 인간아. 그게 아니구. 하여간 남자들의 빈약한 상상력은 알아줘야 한다니깐. 그러니까 말이야. 사실인즉슨. 울 남푠이 아버지의 휴대폰을 정리하면서 알아낸 거야. 카톡이 많이 와서 열어보니깐 자기 아버지의 내연녀 할머니였던 거야? 그 할머니는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신 줄 도 모르고 아버지로부터 답이 없으니깐 애타게 문자도 보내보고 보이스톡도 여러 차례 시도했던 거야.

나: 근데 뭐가 너를 화나게 한 거야? 시아버지가 시어머니 몰래 딴 여자를 만나서? 너 시어머니랑 사이가 좋은 가 보다.
사임당: 야~~~@##%%^**^*&. 아니지. 미안해 선배. 순간 선배가 울 남편처럼 보여서. 울 남푠이가 날 뚜껑 열리게 한 거란 말이야. 글쎄 그 내연녀 할머니가 불쌍하다는 거야. 그래서 자기 어머니 몰래 그 할머니에게 연락을 해야 되지 않느냐며 고민하더라고. 적어도 자신의 남친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야 애타게 기다리지 않을 거 아니냐구 하면서 말이야.
 나: 그게 뭐 어때서?
사임당: 그게 어디 말이야 막걸리야. 자기 어머니 생각은 안 하냐구. 하여튼 남자들이란 죄다 똑같다니깐. 비명횡사하신 시아버지나 울 남푠이나.. 선배도 마찬 가지라구. 자기 아버지에게 속고 살았을 어머니는 불쌍하지 않다는 거야?
나: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그 내연녀 할머니에게 연락을 했다는 거야? 하지 않았다는 거야?
사임당: 그건 선배 상상에 맡길게. 선배라면 어떻게 했겠어? 선배 아버지가 그랬다면 말이야.
나: 글쎄. 어렵다.



 카페에서 우리의 대화는 이어졌지만 자지러지는 듯한 그러다가 품위를 차리려 애쓰는 그녀의 웃음소리는 한 번도 들을 수가 없었다. 카페에는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온갖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있었다.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가끔은 흐느끼는 소리도 들렸다. 백색소음들 치고는 너무 뚜렷해서 신경이 쓰였다. 대화 내내 그녀가 적의를 들러내며 표현하는 남자들에 대한 불신은 놀랍게도 나의 아내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그녀의 성격상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그래서 저주를 퍼부을 정도로 경멸하는 남자들의 바람끼에 어찌할 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들은 왜 틈만 나면 딴생각을 하는지 나에게 자주 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무척 어색하고 난감한 미소를 지어줄 수 밖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나 또한 답을 모르기 때문이다. 왜 남편들은 멀쩡한 아내를 두고 다른 여자를 만나려 하는 것일까?


 그녀는 남편의 바람끼를 의심하고 있었지만 남편에게 전혀 내색은 하지 않는 듯 보였다. 남편이 영국에서 IT 관련 비즈니스를 시작하면서 알바생을 구할 때마다 젊고 예쁜 여자를 채용했다고 한다. 업무 특성상 장거리 출장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여직원과 동행을 하니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것도 단 둘이서 말이다. 남편의 사업이 지지부진하던 차에 한국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다. 비록 그녀의 남편이 누나와 형에 비해 가장 싼 빌딩을 물려받긴 했지만 돌파구가 생긴 셈이었다. 더 이상 사업에 몰입하지 않아도 먹고살만해진 것이다. 그러면서 남편은 더욱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기 시작할게 분명하다고 했다. 사임당의 성격상 견디기 쉽지 않은 부부생활이었지만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갈 때까진 참고 견디기로 했다는 것이다. 의부증이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고 욕만 바가지로 먹었다.

 그녀가 한 번도 꺼내지 않은 이혼이라는 카드를 그때는 틀림없이 꺼내 들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때는 사임당의 이미지 따위는 집어던지고 걸쭉한 쌍욕들이 그녀의 입에서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경험상 예감이란, 그것도 불길한 예감이란 빗나간 적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발 빗나가길, 그래서 그녀가 행복하길 바라다가 창밖을 보니 돌아갈 시간이라고 어둠이 넌지시 알려주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만큼이나 진한 어둠이 워털루 역 근처의 카페에도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일어서서 카페를 나섰다. 돌아서서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어두운 아내의 그림자가 따르고 있었다. (PS: 본 내용은 픽션과 논픽션이 혼합된 글이며, 이혼을 아내가 아닌 남편의 시각에서 바라본 이야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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