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겪은 1인 가족 고독사 사회문제를 연재하다.
요즘은 거의 꿈을 꾸지 않는다. 자기 전 약을 복용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울증 환자들에게 불면증은 치명적이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기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그래서 아침 약은 걸러도 자기 전 먹는 약은 거르지 않는다. 대신 아침에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약기운이 꽤 오래 지속되는데 반해 나의 수면 시간은 짧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기상 시간이 빨라진다. 늦게까지 한번 자보는 게 소원이다.
금요일 저녁에는 무인도 체험이 끝나고 뒤풀이가 있었다. 대리기사를 불러 집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씻고 책을 보다 잠이 들었다. 금요일 밤에 약을 먹고 잤는지의 기억은 없다. 요즘은 갈수록 기억력이 떨어진다. 특히 음주 후의 다음날에는 머리가 백지상태 같다. 소주를 마셔서인지 술이 꽤 올라왔다. 오랜만에 맛보는 취기에 기분이 좋은 밤이었다. 책을 잠깐 읽다가 불도 끄지 않고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황당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는 악몽에 시달리다 잠에서 깨었다. 머리는 아팠고 속은 쓰렸다. 정신은 멍하였다. 아마 술이 취했는데도 약을 먹고 잔 모양이다. 중간에 한 번도 깬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꿈은 상당히 길고 구체적이었다. 꿈속에서 몸서리를 치거나 비명을 지르기도 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 비명이 꿈에서인지 현실의 방에서인지는 알 수 없다. 낯선 도시의 낯선 건물에서 강제로 특정 방을 찾아가라는 지시나 명령을 받았다. 그 방을 찾아가는 과정은 지난하고 복잡하였다. 첫 번째 고비는 실탄사격장을 지나가야만 했다. 현대식 건물에 실탄사격장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사격을 하고 있었다, 연습인지 훈련인지는 알 수 없다. 군인인지 일반인 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해서 5발의 실탄 사격을 했지만 총구는 과녁을 향하지 않았다. 총구가 향한 곳은 허공이었다. 그 총알이 어디로 날아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비명소리가 들렸다. 사격 이전에도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실탄사격장을 지나자 두 번째 관문이 나타났다.
두 번째 관문은 많은 사람들이 밀집해 있었다. 그 인파의 줄을 찾아가 보니 엘리베이터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도 그 엘리베이터를 타야만 했다. 하지만 줄이 너무 길었다. 살짝 새치기를 해서 그 엘리베이터 줄에 끼어들었다. 어렵게 엘리베이터를 탔지만 엘리베이터는 한 층씩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방식이 아니었다. 10층 단위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우리가 탄 엘리베이터는 10층으로 올라갔다. 비병을 지른 것은 바로 10층에 올라가서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는데도 아무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곳은 아마 죽음과 관련된 장소처럼 보였다. 시간이 지나자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면서 하강이 아닌 추락을 시작하였다. 모두가 비명을 질렀고 아수라장이 되었다. 하강이 아니라 그냥 10층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문제는 1층이 아니라 지하까지 있어서 아마도 13층 정도에서 떨어졌다. 엘리베이터 내부는 그 찰나의 시간에 아비귀환이 되었다. 그 순간에 기도를 올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속수무책으로 떨어졌고 대부분 죽었을 것이다.
나는 떨어지는 순간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래서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마 죽었을 것이다. 13층에서 떨어져서 살 수 있는 확률은 희박하다. 물론 옥외가 아니고 엘리베이터라는 특성이 있다. 하지만 그런 실험이나 사례를 보지 못한 나는 그저 죽었을 것이라는 가정밖에는 할 수 없다. 나는 그렇게 꿈속에서 누군가를 찾아 나섰다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죽어갔다. 나에게 지시나 명령을 내린 주체가 궁금해졌다. 사람인지 신인지는 알 수 없다. 무신론자이기 때문에 신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일까? 나는 그가 바로 테오도라라고 믿고 있다. 실탄 사격과 엘리베이터는 죽음을 각성시키는 매개체로 생각한다. 꿈이라고 하기는 너무 생생하였다. 하지만 앞뒤의 전개가 잘 맞지 않는 이상한 꿈이었다.
10층에서 떨어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절망적인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이불을 걷어차고 식은땀을 닦으려고 수건을 찾았다. 그 비명은 꿈과 현실에서 동시에 지른 비명이었을 것이다. 토요일 아침이 밝아왔다. 전주에서 12시 반에 조카 결혼식이 있는 날이다. 지난주에 둘째 형님으로부터 청첩장이 휴대폰을 통해 전송되었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내 결혼식 때는 일일이 우편으로 발송하였던 기억이 난다. 샤워를 마치고 정성스럽게 드라이도 하고 단장을 하였다. 구두도 꺼내서 닦아본다. 2년 전에 서울에 왔을 때 산 양복을 처음으로 입게 되는 날이다. 양복을 꺼내서 방바닥에 펼쳐보니 디자인이나 색상도 모두 그럴싸하게 마음에 들었다. 긴팔 와이셔츠도 같이 들어있었다. 문제는 넥타이었다. 감색과 검은색 두 가지뿐이었다. 감색은 흰색 계열의 점박이 무늬가 단조로움을 해소하려 노력하였다. 하지만 너무 오래되어 보였다. 그 오래되어 보임은 어색한 익숙함으로 다가와 낯설지 않아 보였다. 전에 서울에서 직장 생활할 때 차고 다니던 그 넥타이였다. 20년이 훌쩍 지난 올드 패션의 폭이 넓은 넥타이었다. 어떻게 아직까지 그 넥타이가 남아있는지 궁금해졌다. 양복을 입어보고 넥타이도 매어보았다. 잘 맞았지만 하체 허벅지가 너무 조였다. 그래도 단벌 신사라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다시 양복을 케이스에 담아 반으로 접은 다음 지퍼를 잠가 두었다.
남은 것은 검은색 넥타이었다. 왜 검은색 넥타이가 양복 케이스에 같이 있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최근 2년 동안 장례식장에 간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문제의 검은색 넥타이를 한참 동안 만지작거리다 둥글게 말아서 옷장 안쪽에 넣어 두었다. 아침 7시가 조금 지나서 출발하였다. 예상대로 막히지 않는 곳이 없었다. 5월 초의 황금연휴가 주는 선물처럼 느껴졌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빠르게 두뇌회전을 해본다. 그리고 전략과 전술을 동원해본다. 일단 오늘의 전략은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이 아닌 도로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운전자가 내비게이션을 따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내비게이션이 실시간으로 길안내를 해준다고 해도 인간의 잔머리를 이길 수는 없다는 확신이 생겼던 것이다.
그래 봤자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막히지 않는 곳은 없었다. 어제 뒤풀이 때 마신 소주가 과했는지 머리가 아프고 속이 쓰렸다. 아침부터 온도도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에어컨을 켜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래된 중고차에서 뿜어내는 냉기는 약하였다. 그 와중에도 내 머릿속에는 검은색 넥타이로 가득하였다. 간밤의 악몽은 생각하기도 싫어서 일단 뇌의 한쪽에 접어두었다. 검은색 넥타이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싶어 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5년 전의 어머니의 장례식이 생각났다. 그랬다. 그때 샀던 넥타이었다. 그 넥타이를 영국에서 올 때 양복 속에 같이 걸어서 가져온 것이었다. 그 넥타이는 장례식장에서 주는 싸구려 넥타이가 아니었다. 그 검정 넥타이를 언제 쓸지 몰라서 짐을 꾸릴 때 넣었던 것이다. 제발 다시는 쓰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그 넥타이는 5년 전에 어머니와 장인어른 두 분의 장례식을 며칠 사이로 치른 유품 같은 것이었다. 버릴까 말까를 망설이다가 다시 보관 중이었던 것이다.
검은색이 왜 죽음을 의미하는지도 갑자기 궁금해졌다. 어렸을 때는 동네에 초상이 나면 흰색처럼 보이는 노란색의 삼베옷을 입었다. 망자는 관에 실려 동네의 전망이 좋은 산에 묻히는 것이 일반적인 장례문화였다. 그 상여가 나갈 때 앞에서 대나무로 만든 만장 깃발을 들면 돈을 주었기 때문에 나도 여러 번 들었던 기억이 난다. 상여는 아름답고 화려한 꽃상여였다. 그 상여 앞뒤에는 새끼줄로 만든 줄을 메어 두면 거기에 돈을 끼었던 기억이 난다. 어른들께 물어보면 죽어서 저승에 가는데도 노자 돈이 필요하다는 설명이었다. 정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냥 그런 줄 알았다. 자꾸 목이 마르는 걸로 봐서 숙취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허리 통증은 나를 아주 조금씩 서서히 갉아먹고 있었다.
나의 전략은 실패로 돌아갔다. 어느 길로 가도 막히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고속도로에 있는 편이 낳을 뻔했다. 경기도를 빠져나가는 데만 3시간 이상이 걸렸다. 충청도에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남도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국도도 아닌 지방도를 찾아 충청도 곳곳을 헤매기 시작한다. 내비게이션도 이제는 정신을 잃은 듯하다. 자기 말을 듣지 않는데 계속 길안내를 하려니 화가 치미는 모양이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경로가 잘못되었습니다.”라는 말의 톤에는 짜증이 진하게 묻어 나오고 있었다.
아무리 용을 써도 12시 반까지 전주에 도착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하였다. 화장실도 급하고 목도 마르고 머리도 아프고 속도 쓰렸다. 무엇보다도 넥타이와 악몽이 끊임없이 부정적인 생각을 부추겼다. 거기에 허리디스크도 일조하였다. 통증이 심해지기 시작하였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중간에 돌아갈 수는 없다. 어찌 되었든 전주에 가야 한다. 나의 털털거리는 중고차는 청주시내와 오송역 세종 등을 배회하다가 결국 논산에서 다시 호남고속도로와 만났다. 시간은 1시를 너머 서고 있었다. 이미 결혼식은 끝났을 것이다. 충청도에서 완전히 길을 잃고 말았다. 내비게이션이 어디로 안내해야 할지 몰랐다. 단 한 번도 고속도로로 안내하지 않았다. 그만큼 고속도로위 정체는 심하였다. 그렇게 동네 골목길들을 헤매다가 길을 잃기도 하였다. 논산 부근에서 처음으로 주유소에 들렀다. 볼일을 보고 잠시 쉬었다. 주유까지 마치고 다시 전주로 향한다. 이번에도 내비게이션은 일반국도로 가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나는 논산 IC에서 호남고속도로로 진입하였다. 정체가 다소 풀렸다.
전주에 다가올수록 교통 흐름과 내비게이션은 제정신을 찾아가고 있었다. 하루키의 소설이 생각났다. IQ84라는 소설이다. 고속도로의 지독한 정체에 갇히면서 그 짧은 과정의 내면의 심리 상태를 글로 풀어내는 그의 능력은 대단하였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처럼 치열하게 글을 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지금 내 심정이 딱 그렇다. 정체가 주는 답답함 속에서도 생각의 끈들은 끊어지는 법이 없었다. 어떻게든 죽지 않고 살아나서 그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 내면에는 과거와 현재의 내가 등장한다. 그리고 관련된 여인들이 함께한다. 그 여인들과의 추억이 이어지다 끊어지다 반복하며 때로는 슬픔을 때로는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결국에는 단순하고 평범한 일상의 늪에서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그 상실의 과정을 그렇게 담담하고 치열하게 묘사하기란 쉽지 않다.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기사단장 죽이기의 메타포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그의 이야기들은 지극히 평범하다.
나의 일상들도 마찬가지다. 지극히 평범하고 단순해지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지독한 정체마저도 평범한 일상일 뿐이다.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언제든 가능한 일일 뿐이다. 이미 어느 정도는 예상까지 한 일이다. 하지만 악몽과 검은 넥타이가 암시하는 것에는 평범함이 아닌 누군가의 사활이 걸려있었다. 죽고 사는 문제도 타인들에게는 평범한 일이다. 매일 일어나는 일상일 뿐이다. 나에게 또는 가족에게 닥치지 않는 한 그 의미는 일상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정체 속에서 나도, 내비게이션도 길을 잃었다. 전주에 들어서면서 정체는 풀렸고 나의 숙취도 사라지고 있었다. 다행히 소맥을 하지 않고 소주만 마셔서 숙취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