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영국 현지에서 낳고 싶었다.
퇴사를 결심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특히 안정된 직장일수록 그렇다. 하지만 더 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작은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과감하게 포기하거나 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한 발자국도 전진할 수 없도록 우리의 삶은 이미 설계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나의 삶 또한 어떤 것이 전진이고 어떤 것이 진보인지 감이 잡히지 않던 시기가 바로 이민을 결정할 무렵이었다. 직장에서는 자리를 잡아가고 결혼도 하고 이제는 안정된 생활만 남아있었다.
그런데 나는 참으로 이상한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안정된 삶이 시작될 무렵이 내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버려야 할 시기라는 것을 깨닫고 실천하게 된 것이다. 그 사실을 인지하였을 때는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일만 남아 있었다. 후회하고 말고는 그다음의 문제였다. 머뭇거리다가는 한 발자국도 전진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이 엄습해 왔다. 그 불안을 떨치기 위해서 초인처럼 빠르게 결정하고 빠르게 행동하였다. 그 결과가 바로 결혼식과 동시에 퇴사였고 퇴사와 동시에 이민이었다. 이처럼 3가지를 동시에 추진하면서도 주말과 휴일에는 봉사활동을 해야 했다. 하지만 항상 응원해주는 아내가 있어서 초인처럼 용감하고 당당하게 살아낼 수 있었다.
그때의 나는 자신감과 당당함을 빼면 아무것도 없을 정도로 삶을 향한 의지가 대단하였다. 그 힘으로의 의지는 전진하려는 향상심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많은 철학자들이나 불교에서 강조하는 향상심이 나를 앞으로 밀어주고 있었다. 그것은 삶의 축제라고 니체가 말한 향상심 이상의 것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돌이켜보면 항상 가슴 뛰는 삶을 위해서 앞으로 나가려는 스프린터 같았다. 언제든지 방아쇠만 당겨지면 앞으로 튀어나가려는 단거리 종목의 선수처럼 완전무장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과감하게 행동하지 않았더라면 아무것도 이루거나 결정하지 못한 채 한국에서 어정쩡한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이미 직장에서 밀려나 수많은 프랜차이즈 중의 하나를 붙잡고 사장님이랍시고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삶은 무엇을 향한 의지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 의지가 이끄는 대로 나아가지 않으면 그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고 말 것이다. 나는 그 운명을 온몸으로 거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운명이라는 녀석과 정면대결을 펼치고 싶었다.
지금이야 그럴 힘도 용기도 배짱도 사라졌지만 그 당시에는 그러고도 남을 힘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정확하게 정의하기에는 힘이 들지만 돌이켜보니 그 힘이 향상심이라고 생각된다. 그 힘은 어떤 운명 따위 앞에서 주저앉거나 굴복하지 않는 절대적인 전진을 위한 힘이었다. 그래서 결혼과 퇴사와 이민의 3가지를 동시에 추진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 힘은 물론 쇠약해졌지만 지금도 유효하다. 나를 이끌고 있는 힘의 원천이다. 내가 무슨 일을 하든 그 힘은 나를 이끌고 나간다. 중간에 망설이거나 주저함이 없이 끊임없이 앞으로 전진하려는 힘이 있는 한 나는 발전할 것이고 주저앉지 않을 것이다.
이제 와서 후회하는 일도 많고 반성하는 일도 많지만 가정 큰 후회와 반성은 아내에게 제대로 공감해 주지 못한 미안함이다. 그 미안함을 전하기에는 이미 늦어도 너무 늦어버렸다. 서로의 간극이 이렇게까지 넓을지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그 간극을 억지로 메우려고 발버둥 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도 하나의 자연스러운 삶이고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향상심 앞에서 버리고 가야 할 것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결혼을 한 것도 퇴사를 한 것도 이민을 서두른 것도 모두 아이를 위한 선택이었고 결정이었다. 태어날 아이에게는 엄마나 아빠가 경험한 교육환경이 아닌 곳에서 아이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고 싶었다. 이기적인 생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고 본능처럼 행동하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처럼 모든 의사결정의 내면에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가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아이가 자라면서 고통받을 것을 생각하니 하루라도 빨리 한국을 떠나고 싶어 졌다. 그 마음은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아무 의사결정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내와 같이 해외에서 살아보고 배낭여행을 즐기고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 중에서 배우자를 찾았던 것이다.
하지만 살아보니 찰떡궁합일 줄 알았던 배우자는 나에게 너무나 과분하고 높은 산 같은 존재였다. 범접할 수 없는 전설의 설산들은 신들이나 살법한데 아내의 정신세계는 그 설산 속에 있었다. 내가 나름대로 공부하고 노력하고 그 간극을 좁히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너무도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결혼생활을 추구하던 나에게는 난관과도 같은 존재의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나의 향상심이 나아갈 방향은 오직 앞이었지만 앞은 그렇게 가로막혀 버렸던 것이다. 그렇다고 돌아가거나 되돌아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퇴로란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난관에 막혀서 지금도 그 벽을 넘으려고 몸부림치고 있지만 아내라는 벽은 요지부동이다.
굴복하고 인정하는 수밖에는 없다. 인생에 있어서 처음으로 패배를 인정하고 모든 것을 재정립하지 않으면 나라는 존재는 산산이 부서지는 유리파편이 되고 말 것 같았다. 커다란 금이 갔지만 부서지지 않도록 응급조치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나의 아픔과 괴로움이 여기에 있었다. 이제는 그 봉함된 유리들을 부여잡고 파편이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살고 싶다. 그것 또한 어떠한 힘을 향한 의지임을 알기에 부끄럽거나 남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부부 사이에 승패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고 부끄러운 이야기가 이닐 수 없다. 하지만 매사에 논리적이고 현명한 사람과 같이 산다는 일도 쉽지는 않았다. 결국은 나의 아집이 문제였고 나의 세계관이 문제였는데 아내 탓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 있는 넑두리 같은 것들을 탓이라고 우기고 있었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위한 선물을 위해 우리는 이민을 선택하였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고 선택이었다. 지금 한국의 교육 현실을 감안하면 그 선택이 옳았음을 굳이 부연하지 않아도 될 만큼 훌륭한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