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질병이라는 일상에서 휴식과 치유 및 힐링에 관한 연재이다
천 씨와 황 씨가 모여 사는 집성촌인 승봉도는 천황 도로도 불린다. 사승봉도를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상당히 큰 섬이다. 사승봉도는 사도라고도 불린다. 모래가 많아서이다. 실제로 사승봉도의 모래는 유리의 원료인 규사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광활한 해변은 지금까지 본 수많은 해변과 달리 유난히 반짝거린다. 물론 햇살이 강렬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5월 초의 늦은 목요일 봄날이었다. 새벽 4시 반에 알람이 울리기 시작한다. 일어나기가 힘들다. 늦게 잔 탓도 있지만 자기 전 복용한 우울증 약 성분이 강해서 아침 일찍 깨어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샤워실로 향한다. 비몽사몽간에 샤워를 마치고 짐을 꾸리기 시작한다. 전날 저녁 강의가 늦게 끝나서 집에 오니 밤 11시였다. 일찍 잠들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들뜬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가슴이 콩닥거림을 얼마 만에 느끼는지 모르겠다. 다음날 소풍 가는 어린아이의 동심으로 돌아와 있었다. 계란이라도 삶고 사이다라도 한 병 사두어야 할 것 같은 마음이다. 김밥도 한 줄 말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말아줄 사람이 없다. 얼마 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스치듯 지나간다. 상상 속의 김밥은 그렇게 어머니를 추억하게 만들고 있었다.
1박 2일간의 사승봉도라는 무인도 체험은 전날 밤의 들뜬 마음과 콩닥거리는 가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여행도 아니고 탐험도 아닌 그렇다고 완벽한 촬영도 아닌 이상한 것이 되어버렸지만 아무튼 여행이라고 칭하고 싶다. 우리 일행은 4명이고 EBS 방송국의 촬영 팀은 3명이다. 총 7명이 떠난다. 이번 여행의 주제는 무인도 체험이다. 모든 것을 무인도에서 해결하는 것이다. 의식주를 아무런 준비 없이 현지에서 해결하는 것이다. 과연 얼마만큼 가능할지는 알 수 없지만 이것 또한 흥미로운 게임 같은 도전이 될 것 같아서 기대된다.
샤워를 마치고 짐을 다 꾸렸다. 그 짐에는 방금 덥고 잔 오리털 이불과 담요에 베개까지 그대로 다 챙겨서 차 트렁크에 욱여넣는다. 비박을 예상해서 오리털 패딩도 하나 여분으로 챙긴다. 5월에 접어들었다지만 비박은 은근히 걱정이 된다. 5시 반에 정확히 차는 남양주를 출발하여 인천으로 향한다. 새벽의 강변북로는 텅 비어있었다. 아직 서울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모든 것이 평화롭고 고요하기만 하다. 한강도 곤하게 자는 중인지 잠잠하기만 하다. 그렇게 1시간 만에 차는 인천 연안여객터미널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낮시간 동안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약속한 시간보다 30분이나 빨리 도착하였다. 집결시간은 7시였다.
인천 연안여객터미널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마치고 부피가 큰 이불과 작은 배낭을 들고 여객터미널 대합실로 들어선다. 역시 아무도 오지 않았다. 짐들을 대합실 의자에 올려두고 터미널 구내에 있는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 한잔을 사셔 마셨다. 커피 한잔에 2천 원이었다. 가격이 너무 착해서 한잔 더 마셨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면 보통 바가지로 마신다. 물론 가능하면 커피는 연하게 내린다. 연한 아메리카노를 보리차처럼 마시는 것이다. 7시가 되니 EBS팀이 먼저 도착하였다. 일일이 인사를 하고 잠시 기다리자 우리 팀원들이 도착한다. 청주에서 출발한 K 씨가 좀 늦었지만 다행히 출항 전에 도착하였다.
배는 7시 50분에 승선을 마치고 항구를 박차고 출발한다. 특유의 기적소리를 두 번 울리면서 출항하는 배는 위풍당당하다. 배의 1층은 온갖 짐들로 가득한 화물차들과 몇 대의 승용차가 실려 있었다. 2층의 커다란 객실에는 의자가 없다. 넓디넓은 방이다. 오랜만에 타보는 방으로 된 여객선이다. 잠시 앉아서 잡담을 나누던 승객들은 어느새 비스듬하게 앉더니 똑바로 누워버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누워서 잠이 든다. 마치 그렇게 해야만 하고 그렇게 해왔던 자연스럽고 익숙함이 재미있게 느껴진다. 대부분의 사내들은 힘차게 코를 곤다. 코 고는 소리도 다 제각각이다. 여기저기서 코 고는 소리는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 같은 부조화를 보여준다. 거기에 일부 수다 소리와 배의 털털거리는 엔진 소리는 이상하리만큼 코 고는 소리와 조화를 이룬다. 출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배는 영종대교를 통과하여 바다다운 바다로 향한다. 승용차나 리무진으로만 통과하던 영종대교를 아래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 웅장한 위용에 비장함마저 느낀다. 시간이 지날수록 창밖으로 보이는 바닷물의 색상이 점차 짙어지는 푸름으로 바뀌어 간다. 승객들 대부분은 섬에 거주하는 주민으로 보인다. 여행객들은 옷차림부터 다르다. 배낭들도 하나씩 소지품처럼 가지고 있다.
월출산에서 돌아온 지 며칠 만에 다시 짐을 꾸린 이유는 외로움 때문이다. 과연 사람과의 관계가 단절된 무인도에서 내가 마주하게 될 외로움과 그동안 서울에서의 그것과 비교해보려는 호기심 어린 충동 때문이다. 하지만 출항 전에 벌써 깊은 슬픔과 외로움을 접하고 말았다. 마주치지 말았어야 할 외로움이었다. 피할 수 있는 슬픔이었다. 하지만 오지랖 넓은 노인이 터미널 대합실에 멍하니 안 자서 커피를 훌쩍거리며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말을 먼저 건다. 얼핏 보아 칠십 정도 되어 보였지만 나이에 관한 언급은 본능처럼 피해 갔다. 월출산 암자에서의 아픈 기억이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보이는 나이에 노인들이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할 줄은 몰랐었다.
그 노인은 나에게 승봉도에 가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매표소 직원은 7시는 되어야 나온다고 설명해 주신다. 그리고 시계를 천천히 보며 그 이유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담당 매표소 직원이 아침을 먹고 나와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나에게는 타인인 노인의 난데없는 친절이 고마웠다. 그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렸더니 갑자기 TV 뉴스를 보다 말고 본인은 SBS보다는 YTN을 선호한다고 설명한다. TV 채널을 매개로 하여 자연스럽게 대화의 장으로 나를 끌어들였다. 그러면서 이유를 설명하려 애쓴다. 세월호 사고 때 YTN이 SBS보다 더 신속하게 뉴스를 내보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월호 이야기를 다시 꺼내신다.
사고 당일 세월호 출항은 바로 이곳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출항 당일 본인은 그 많은 단원고 학생들을 여기 같은 장소에서 보았다고 한다. 역사의 한 장면을 떠올리듯 노인은 고뇌에 찬 모습으로 한 학생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면서 유독 한 학생이 잊히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 학생은 여행 당일 부모님으로부터 용돈을 3만 원밖에 받아오지 못해서 걱정하였다는 것이다. 그 3만 원으로 물가가 비싼 제주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3만 원을 써보지도 못하고 죽은 학생이 잊히지 않는다고 하셨다. 아직도 아픔이 가시지 않은 듯 슬픈 표정을 지으신다. 그리고 이어서 울분을 토해내신다. 폐기되어야 할 노후된 배를 계속 사용하게 승인해준 사람들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도 무진의 마을처럼 사고가 난 서고 차도 부근에 안개가 너무 짙게 끼어서 출항이 예정보다 늦어졌다는 말도 덧붙인다. 그 노인도 승선을 하였다. 둘러보니 나의 멀지 않은 곳에 누우셔서 역시 코를 골고 계신다. 그렇게 산 자와 죽은 자의 간극을 이른 아침부터 느껴야만 했다. 의도치 않은 비현실 같은 세월호 이야기는 배 위에서 글을 쓰면서 더욱 현실로 다가온다. 우리가 타고 있는 승봉도행 배는 세월호에 비하면 아주 작은 배일 것이다. 이 배가 갑자기 좌초되어 물에 가라앉기 시작하면 나는 어떻게 할까?라는 현실적인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현실과 비현실은 세월 사이를 오가기도 하고 생각 사이를 오가기도 한다. 옆에 누워서 자는 아저씨의 코 고는 소리는 점점 더 커진다. 삶의 소리이고 살아있다는 항변처럼 들린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배속은 평화롭다. 아직까지는 어떠한 슬픔이나 외로움 따위는 없다. 절반 정도의 앉아있는 승객들은 끊임없이 수다를 떨고 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누워서 잔다.
생각이 많아지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잠깐 선실 밖으로 나가본다. 바다 바람이 아직은 제법 차갑다. 정면으로는 꽤 큰 섬 하나가 시야에 들어온다. 아주머니 두 분께서는 새우깡으로 갈매기들과 옥신각신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나는 연신 새우깡 사냥에 정신없는 갈매기들 사진을 찍어댄다. 허공에 던져진 새우깡들은 여지없이 갈매기들이 낚아챈다. 갈매기들은 아무렇게나 던져진 새우깡을 결코 놓치는 법이 없다. 1시간 10분 만에 배는 자월도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자월도는 면사무소가 있는 큰 섬이다. 그다음이 대이작도이고 우리의 행선지인 승봉도는 3번째라고 옆에 어르신이 설명해주신다. 모두가 친절하다. 승객의 반이 우르르 빠져나가면서 배안은 다소 썰렁해진다. 바닥 온돌의 따뜻한 온기는 나머지 사람들마저 드러눕고 사지를 펼치게 한다.
배가 자월도에 정박하는지 심한 떨림과 함께 진동이 느껴진다. 그렇게 또 떠나는 자와 남는 자로 배안은 술렁이다가 고요를 되찾는다. 배는 또다시 항구를 떠나 다음 항구로 향한다. 다음 항구는 대이작도가 될 것이다. 그렇게 한가롭게 글을 쓰며 유유자적하다가 돌발사태가 발생하였다. 모두 2층 여객실 갑판 선실에서 내려 배의 1층 갑판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 팀원들도 나의 짐을 들고 내려가 있었다. 나는 노트북과 배낭을 챙겨서 정신없이 1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다음이 바로 우리 목적지인 승봉도였던 것이다. 글에 몰입해서 안내방송을 듣지 못한 것 같다. 우리는 그렇게 배에서 내려 승봉도 선착장에서 기다렸다. 여기에서 다시 어선을 타고 사승봉도로 가게 된다. 사승봉도는 현재 무인도이다. 우리가 1박 2일 체류하며 촬영할 곳이다. 배는 어선이었고 약속한 시간에 바로 오지 않았다.
마침 승봉도에서 사승봉도로 들어갈 어선을 예약해준 분을 만났다. 그곳에서 임시로 체류하고 계시는 분으로 연중 절반 정도는 사승봉도 해변에서 나머지 절반은 육지의 집에서 지내시는 분이었다. 나는 이분을 여사장님이라고 칭하였다. 이 여사장님은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우리와 같은 배를 타고 왔는데 서로 그 사실을 몰랐다. 여사장님은 승봉도 선착장에서 미리 예약한 어선의 선주에게 전화를 하였다. 금방 출발했다고 한다. 하지만 20분을 기다려도 금방 출발했다는 어선은 오지 않았다. 짜장만 생각이 났다. 중국집에 짜장면을 시키면 방금 전에 출발했다고 대답한다. 다시 전화하면 가고 있다고 한다. 길이 막히니 조금만 기다리면 도착한다는 친절한 설명도 있지 않는다. 그렇게 중국집 사장님의 선의의 거짓말을 밥 먹듯이 듣지 않은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여사장님의 여러 가지 안내를 받으며 무료한 시간을 달랬다. 그분은 인천에 사시면서 사승봉도에 치유 차 들어오시게 되었다고 한다. 인천과 사승봉도를 오가며 살고 계셨다. 우리가 가는 사승봉도는 약 14만 평의 사유지라고 하였다. 무인도 개념은 10만 평 이상이고 주민 5명 이하면 무인도로 간주한다고 하였다. 비록 임시지만 한두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무인도로 취급받는 이유다. 따라서 본인은 사람도 아니라고 웃으며 허탈해하신다. 마음이 좋아 보이셨다. 아픔과 상처를 간직한 사람들은 욕심이나 탐욕이 보이지 않는다. 무언가를 주려고 하는 공통점이 있다. 배품의 의미와 미덕을 깨달은 삶은 단순해지는 것 같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삶을 보고 자라서 이미 이러한 삶에 제법 익숙하다. 돌이켜보면 어머니가 살아온 인생 자체가 배품이었다. 본인의 힘든 삶을 희생과 배품을 통해 보상받으려 하셨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천성이 그래서였을 수도 있다. 그 보상은 희생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치유였을 것이다. 모질고 아픈 삶의 끈을 놓지 못한 힘이었을 것이다.
금방 떠났다는 배는 25분 만에 포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속도가 마치 굉음을 내며 달리는 스쿠터를 탄 폭주족 같았다. 배가 포구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작은 1.5톤 트럭이 배를 향해 엉덩이를 들이민다. 그리고 어부들과 인부들은 꽃게가 가득 찬 그물망을 먼저 트럭으로 옮겨 싣는다. 온갖 잡어가 섞인 커다란 고무 대야는 장정 4명이서 겨우 들어 트럭으로 옮긴다. 활어들이어서 바닷물과 함께 옮겨져야 해서 더욱 무거워 보였다. 그렇게 비워진 배는 어부가 갓 잡아 올린 생선 대신 우리 일행이라는 인간으로 채워졌다. 배는 기적 소리도 없이 다시 포구도 없는 무인도 해변을 향해 떠난다. 15분 정도 후에 배는 무인도인 사승봉도 해변에 도착한다. 포구 역할을 해야 하는 아무런 시설이 없어서 우리 일행은 해변에 사다리를 대고 내린다. 사다리를 타고 한 사람씩 해변 상륙 작전을 감행한 끝에 모두가 배에서 내렸다. 배는 임무를 완수하고 멀어져 갔다. 내일 오후에 다시 돌아와 사다리를 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