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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Aug 11. 2019

여보, 나 1년만 쉴까? #11 무인도에서 글을쓰다.

일과 질병이라는 일상에서 휴식과 치유 및 힐링에 관한 연재이다.

     



특수부대 요원 훈련장

     

그렇게 해서 우리와 촬영 팀은 무인도에 내려졌다. 다행히 임시 체류 중인 여사장님 안내로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가장 큰 혜택은 바로 간단한 식자재와 숙소였다. 촬영 팀은 임시 숙소에서 자고 우리는 비박을 할 예정이다. 배에서 내려 각자의 짐을 놓을 마땅한 장소를 찾아 나선다. 짐을 내려놓고 숙소가 될 만한 위치를 찾느라 분주하다. 산 바로 아래 바위 근처의 아늑한 장소로 숙소가 결정된 모양이다. 짐을 다시 그리 옮겼다. 그 과정들도 촬영이 되고 있었다. 버려진 텐트 뼈대가 되는 폴과 비닐을 주어다가 어설픈 호텔 같은 미니 비닐하우스를 만들었다. 여사장님은 여러 가지 주의 사항을 주었다. 특히 산에 올라갈 때는 반드시 장화를 신고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오래전에 뱀에 물려 헬기를 타고 이송된 이야기를 마치 훈장처럼 늘어놓으셨다.

     

5월의 햇살은 따가웠지만 바람은 제법 싸늘하였다. 바닷바람에는 소금기가 있는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여사장님은 이곳이 동남아 지역의 특수부대원들이 겨울에 훈련하는 곳이라는 설명도 빠트리지 않았다. 백사장이 너무 좋고 섬 주변의 바다 특성이 소용돌이를 쳐서 아주 위험한 곳이라고 하셨다. 시간을 보니 10시가 조금 안되었다. 우리는 백사장 위쪽의 바위와 산 사이에 짐을 두고 임시 숙소를 꾸릴 준비를 한다. 가져온 텐트가 없기 때문에 우리의 숙소는 비닐하우스가 될 공산이 크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배꼽시계가 자꾸 무언가를 재촉한다. 배가 고프다는 신호다. 평소에는 안하던 행동이다. 눈치를 보니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라면 하나를 꺼내 부수어서 수프를 넣어 흔든 다음 나눠먹었다. 꿀맛이었다. 갑자기 군대 시절이 생각난다. 그 시절의 라면은 귀한 간식이자 음식이었다.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건빵보다는 라면이 귀한 음식이었다. 그래도 배가 점점 고파온다. 단식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벌써부터 알 것 같다. 평소에 아침을 먹지 않는 사람이지만 자연에 나오니 삼식이로 자연스럽게 돌아오는 모양이다. 우리 인간이 왜 삼시 세 끼를 먹고 살아왔는지 알 거 같았다.

     

일행들은 분주하게 숙소를 만들고 끼니를 해결하려 노력한다. 촬영 팀은 우리의 순간순간을 포착하려고 눈매들이 날카롭다. 갑자기 카메라 두 대가 훅하고 들어온다. 카메라 울렁증이 있는 사람들은 카메라만 들이대면 표정이 경직되며 로봇이 된다. 감정이나 영혼을 카메라가 흡수해 버리는 느낌이다. 나는 배짱이가 되어 한쪽 구석에 앉아 자판을 두드린다. 그늘의 바위를 의자 삼아 또다시 글을 쓰고 있다. 혼자서 해변도 거닐어 본다. 얼마나 꿈꾸었던 나의 로망이었던가? 인적이 없는 광활한 해변에서 혼자서 바다를 바라보며 걷고 또 걷는다. 가끔 조개가 있을법한 곳은 모래를 파보지만 아무것도 없다. 갯벌과는 달리 생명의 흔적이 없이 고요하다.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깨끗하고 정갈하다. 


고요한 해변에는 바람소리와 파도소리만 있지는 않았다. 가끔 갈매기들이 굉음을 내며 다투기도 하고 촬영 팀의 드론 또한 나름대로의 소음을 생산해 내느라 분주하였다.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보이는 것은 광활하게 펼쳐진 모래사장뿐이다. 모래는 일반 해수욕장의 모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고왔다. 그 곱디고운 모래알들은 햇볕에 반응하느라 다들 정신이 없었다. 그 반응은 단순하고 직선적인 반짝거림의 형태였다. 그래서 유리의 원료인 규사인 모양이다. 모래사장은 마치 사막과 같이 드넓고 광활한 느낌이었다. 어느 곳은 단단하지만 어느 곳은 움푹 파일 정도로 빠져 들어갔다. 그 수많은 모래 위를 난폭하게 파고드는 햇살 또한 맹렬하고 사나웠다. 바람만이 온순하였다. 그 온순한 바람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조금이나마 부드럽게 감싸 안고 있었다.

     

물이 들어오는 시간이어서인지 해변의 침식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그 드넓던 해변이 어느새 비좁고 어설픈 모래사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해변이 공격당하는 만큼의 속도로 파도소리는 가까워졌다. 바로 귓전에서 들리는듯하다. 갈매기 소리는 더욱 애처로워진다. 그 이유는 짐작컨대 짝을 찾거나 아니면 배가 고프다는 울부짖음처럼 들린다. 그 광활하던 해변은 사라지고 온전한 바다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모래사장을 위협하던 햇빛들도 바닷물 속에 침잠된 것일까? 해변의 모래사장은 사라졌지만 내 마음속의 사막은 더욱더 광활한 우주처럼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무인도에서 또 다른 형태의 무인도인 사막을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실종과 노모의 기도

     

10년 전의 일이었다고 한다. 3대가 가족 여행을 온 적이 있다고 하였다. 무인도에 놀러 온 가족 중 젊은 아빠가 수영한다고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 나오지 못했다는 슬픈 이야기다. 그 젊은 아빠는 수영은 전문가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녀들과 아내 및 노모가 지켜보는 가운데 수영 실력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실종된 젊은 아빠는 1주일이 지나도 찾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해경도 수색을 중단하였다고 했다. 그 한 사람의 죽음도 아픔이었지만 남겨진 자들의 아픔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생생한 장면을 두 눈으로 보고 안타까워해야만 하는 가족들의 아픔은 세월호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아침에 인천 연안여객터미널 대합실에서 세월호와 3만 원 용돈 학생 이야기를 해준 노인 생각이 났다. 그 노인은 어디에서 내렸는지 모른다. 삶 속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죽음을 대하며 당당해질 수는 없다. 죽음은 어떠한 형태로든 미화될 수 없다. 가끔 순직 경찰관이나 소방관 뉴스가 나온다. 헌신한 아름다운 죽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세상에 아름다운 죽음은 없다. 죽음은 현실이고 그냥 일상이다. 하지만 아름답게 죽어갈 수는 없다. 그래서 슬픈 것이다.

     

캄보디아에서 훈련 온 특수부대 요원 중 한 사람도 죽어서 실종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동남아는 겨울이 없기 때문에 한국의 섬으로 훈련하려고 온다고 한다. 실종된 시신은 찾았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한국의 젊은 아빠는 노모의 간절한 기도로 찾았다고 한다. 꿈속에서 아들은 노모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었다고 한다.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갑자기 무인도에 와 있다는 생각이 상상 속의 일처럼 비현실적으로 변한다. 그 밖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봇물터지듯 여사장님의 입을 통해 터져 나온다. 참 할 말이 많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인도 생활이 얼마나 외로울까를 생각하니 이해가 간다.

          




구들장과 촬영 이야기

     

무인도에 도착한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일을 하려고 무인도에 온 것이 아니다. 우리가 무인도에 들어온 목적은 단 한 가지였다. 바로 생존이었다. 그 과정을 EBS 한국기행 팀은 촬영을 하는 것이었다. 그 흔한 컵라면이나 빵 한 조각도 가져오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각자가 라면 몇 개씩은 몰래 가져왔다. 그마저도 없었다면 우리는 심각한 기아를 체험할 뻔하였다. 무인도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어떠한 식량도 내어주지 않았다. 심지어 물때라는 것이 있어서 물이 들어왔다가 빠지기를 반복하곤 하였다. 하루에 두 번씩 일어나는 이 자연현상을 우리는 알지 못하였다. 우리가 바라는 유일한 식량은 해변을 파서 조개를 잡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물때가 맞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튼 촬영 팀과 체험 팀은 묘한 분위기 속에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나는 촬영 팀도 체험 팀도 아닌 또 다른 위치에서 무인도 체험을 하고 있었다. 글을 쓰는 작가의 입장이 따로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생생한 현장을 글로 옮기고 싶었다. 수많은 현장의 상황들을 촬영하는 것 이상의 묘사를 글로 묘사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려 하였다. 애초에는 체험 팀의 일원으로 왔다. 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의사였다. 어느 누구도 나의 역할에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첫날의 일정들은 쉽지 않았다. 첫 번째가 오늘 밤 묵을 숙소를 만드는 일이었다. 촬영하는 모습을 보며 어설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비닐하우스 형태로 숙소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바닷바람에 견딜지는 의문이다. 두 번째 과정이 불 피우는 일이었다. 무인도에서 성냥이나 라이터 없이 불을 피워야 했다. 원시인들이 하듯 여러 가지 방법이 동원되었지만 하나도 성공하지 못하였다. 야생의 세계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무로 만든 부싯돌도, 오목인지 볼록인지 몰라도 렌즈로 하는 방법도, 그리고 휴대폰 배터리를 이용하는 방법도 모두 실패하였다. 모두가 의기소침해 있었다.

     



점심도 거의 먹지 못한 상태에서 일행들에게 저녁이라도 맛있게 먹여주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여사장님을 찾아가 사정해 보는 것이었다. 다행히 가스레인지와 부탄가스 한통을 얻었다. 그리고 4인분 정도의 밥을 할 수 있는 쌀과 냄비를 얻었다. 반찬으로는 누군가가 먹다 남은 쌈장이 유일하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감사하였다.



     

거의 저녁시간이 되고 해는 수평선선에 딱 걸려있었다. 육지에서 지평선에 걸리는 석양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보면 볼수록 황홀하였다. 마냥 손 놓고 일몰을 구경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배가 너무 고팠기 때문이다. 내 배가 이 정도로 고픈데 체험이든 촬영이든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배는 얼마나 고플까라는 생각에 나의 저녁 준비는 속도를 낸다. 가스레인지 하나로 밥을 하고 라면은 불을 피워서 8개 분량만큼의 물을 끌이기 시작하였다. 라면이 메인이고 밥은 반찬이 되는 기이한 식사였다. 라면은 인원수대로 되지만 밥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다행히 여사장님께서 두릅과 엄 나물을 채취해서 가져다주셨다. 두릅에는 가시가 제법 억세어서 장갑을 끼고 비벼야 했다. 채취시기가 지난 두릅이었지만 살짝 대쳐서 쌈장에 찍어 먹으니 훌륭한 반찬이 되었다. 열심히 불을 지피고 공을 들이자 물이 끓기 시작하였다. 라면은 여러 가지 브랜드가 섞였다. 그래도 라면 맛은 그대로였다. 점심때의 실수를 만회하려고 가장 큰 냄비를 동원하였다. 물은 얼추 10인분의 라면을 끓일 수 있는 분량이었다. 한쪽에서는 밥이 타는 냄새가 고소하게 났다. 그 냄새를 맡고 일행들은 모두 모였다. 다행히 일회용 나무젓가락을 얻어 와서 우리는 섬에서 제대로 된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것도 무인도에서의 식사였다. 모두가 허겁지겁 정신없이 맛있게 먹었다. 그렇게 8개의 라면과 4인분의 밥은 순식간에 동이 났다. 7명이 먹어치우는 양과 속도는 놀라웠다. 식사를 하면서 우리가 누리는 문명의 이기나 혜택에 대해 돌이키는 계기가 되었다. 모두가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촬영 팀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하였다.

     

그렇게 저녁 식사는 마무리되었다. 주변은 어두워지기 시작하였고 하늘에서는 방금 전에 수평선 너머로 사라져 바닷물 속으로 들어간 태양 대신 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고맙게도 설거지는 젊은 체험 팀원들이 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오늘 일정이 마감이 되고 각자 잠을 자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촬영 팀은 대피소에 이미 예약을 해두었다고 한다. 체험 팀은 야영을 해야만 했다. 나는 야영할 준비는 해왔지만 대피소의 방에는 구들장이 놓여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미 불도 때 두어서 찜질방 못지않다는 말에 나는 야영 팀을 배신할 수밖에 없었다. 해변에서 대피소 가는 길은 멀고 험하였다. 황 대표의 안내가 없었더라면 어둡고 캄캄한 섬에서 길을 잃었을 것이다. 고맙게도 황 대표가 대피소까지 대려다 주고 다시 내려갔다. 밤하늘의 별들은 쏟아져 내릴 듯이 많았다. 밤하늘의 풍광은 도시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별반 하늘반이었다.

     



대피소에서는 전기가 없었다. 손전등이 전부였다. 어둠 속에서 겨우 세면을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구들장에 누울 수 있었다. 구들장에는 이미 장작불이 지펴져서인지 뜨끈 뜨근하였다. 구들장으로 된 방이라는 설명 하나에 유년기의 세월들이 스치듯 지나간다. 세상 어느 호텔도 부럽지 않았다. 방은 상당히 넓었다. 내 옆에는 카메라 감독이 그리고 그 옆에는 PD가 엎드린 채 프로야구 중계를 시청하고 있었다. 물론 휴대폰으로다. 나도 돌아누워서 엎드렸다. 그리고 노트북을 꺼내서 다시 자판을 두드려 활자들을 불러오기 시작하였다. 



어떤 일정표도 시간표도 준비물도 없는 기이한 무인도 체험은 너무도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었다. 물론 체험 팀이나 촬영 팀의 감정은 그렇지 못할 것이다. 나는 지금 여기가 현실 속의 세계인지 비현실 속의 세계인지 모를 정도로 기이한 체험을 하고 있다. 어느 정도 글을 쓰자 노트북 전원이 꺼졌다. 다행히 작성된 내용물들은 수시 저장을 통해 잘 저장되었다. 하마터면 헛수고를 할 뻔하였다. 잠이 조금씩 밀려온다. 야구중계를 보던 카메라 감독은 이미 잠이 들었다. 그 옆의 PD는 아직도 야구를 보고 있었다. 두산과 엘지의 경기였다. 나도 엎드려서 컨닝하듯이 몰래 훔쳐보았다. 무인도 구들장 방에서 야구를 보는 이 진기한 풍광은 현대 문명의 이기를 말해주고 있었다.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일이 가능한 시대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먼저인지 PD가 먼저인지는 알 수 없지만 눈을 떠보니 무인도의 대피소 방에는 이미 아침이 마중 나와 있었다. 간밤의 어둠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었다. 어젯밤에 수평선 너머 바닷물 속으로 잠수했던 태양은 다시 떠올랐다. 그렇게 무인도에서의 둘째 날이 시작되었다. 1박 2일의 그 둘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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