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청년기의 우울과 외로움에 관한 연재
어린 시절, 정보의 부재는 우리 모두를 평등하고 행복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정보를 얻으려면 백과사전을 찾아봐야만 가능하였다. 잘난 체하려면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였다.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백과사전 자체가 집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백과사전 전집을 집에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없었다. 있었더라도 아마 불쏘시개로 이미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여름에 목침으로 사용하였을 것이다. 굳이 친구의 기억을 빌리지 않더라도 어린 시절의 삶은 시종일관 단순함 그 자체였다.
TV도 마을에 한 대 정도였다. 여름밤이면 작은 노천 소극장이 펼쳐지곤 하였다. 저녁마다 모여서 마루에 내놓은 TV를 보았다. 그 TV는 네 개의 다리가 달렸다. 심지어 미닫이문도 달려있었다. 지금은 그 어디에서도 구경할 수 없는 초창기 흑백 TV다. 그 시절 우리들에게 가장 인기 있던 방송은 프로레슬링과 복싱이었다. 김일 과 홍수환은 우리들의 우상이었다. 전화도 이장 집에 한 대가 전부였다. 다이얼식 전화였다. 외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이 전화를 주로 하였다. 전화가 오면 이장은 방송을 통해 전화받을 사람을 불렀다. 그러면 집에서 또는 들에서 이장 집으로 달려가 전화를 받곤 하였다. 그 모습을 상상만 해도 즐거워진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시골의 80대 노인들까지도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기능은 거의 전화를 주고받는 정도지만 일부 노인들은 스마트폰답게 활용하는 놀라움도 보여준다. 문명의 이기는 이제 시골의 산간오지까지 침투하지 않은 곳이 없다. 이제는 굳이 서로 찾아다니며 얼굴을 마주할 일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시골의 인심이나 분위기도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시골이 그 정도인데 도시에서는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알 필요도 없다. 알려고 하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다.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혼자 사는 여성들은 더욱 경계를 늦추지 못하게 되어가는 세상이다.
옆집에서 누가 죽어도 알 길이 없다. 국가나 지자체에서 독거노인들의 생존을 체크해야 하는 시대에 와 있다. 일일이 전화를 해서 확인하는 방법이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나의 고향에서는 1주일에 한 번씩 전화를 해서 아버지의 살아있음을 확인해 주고 있었다.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기나 수도 사용량을 통해서도 생존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서글픈 이야기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다.
어렸을 때에 시골에서 유일하게 정보를 제공해 주었던 것은 라디오와 TV다. 나의 경우에는 주로 라디오를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운전을 해야만 들을 수 있는 것이 라디오다. 집에는 라디오가 없기 때문에 들을 일이 없다. 라디오를 통해 추억의 팝송들에 열광했다. 밤에는 유명 디제이들이 진행했던 음악방송을 들으며 상상의 나래를 펴곤 하였다.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속사정은 알 길이 없었다. 그렇게 단절된 세상은 평화롭고 행복한 줄 알았다. 수많은 시대적 상처와 아픔은 시골까지 침투할 필요가 없었다. 덕분에 단절과 고립으로 점철된 어린 시절의 삶은 평화 그 자체였다.
알지 못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편리하고 즐거웠다. 세상만사를 다 알 필요가 없었다. 알고 싶어도 알 수 없었다. 그 무지는 자유였고 행복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이라는 편리한 괴물의 출현과 SNS라는 또 다른 괴물은 우리 인간들을 아주 편리하고 쉽게 연결하였다. 하지만 그 연결은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전 세계를 연결하였지만 결과적으로 각 개인의 고립을 초래하였다. 지구라는 거대한 행성이 무인도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이웃은 물론 가족과의 교류도 SNS를 이용하는 경우가 실제 대화보다 많아지고 있다. 사이가 좋지 않을 시에는 심지어 같은 집안에서도 얼굴을 마주치지 않고 대화가 가능하다. 편리함이 낳은 비극은 그렇게 모두를 무인도에 갇히게 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타인들과의 단절과 다를 바가 없어졌다. 정보의 홍수에 떠밀려 어디로 흘러가는지 조차 알 수 없다. 그렇게 무지의 충만함은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