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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Aug 15. 2019

나만 외로운 걸까? #13 아제는 왜 BTS에 빠졌을까

후기 청년기의 우울과 외로움에 관한 연재


     


유기체적 삶

     

지구촌을 하나로 연결한 인터넷이라는 괴물이 출현하기 전과 후의 우리의 삶의 방식은 너무나 달라졌다. 공동사회로 번역되는 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와 이익 사회로 번역되는 게젤샤프트(Gesellschaft)의  그것만큼이나 간극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 용어들은 대학시절 사회학을 전공하며 배운 용어들이었다. 그때는 이 용어들이 이처럼 강하게 특정 사회를 규정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 당시만 하여도 인터넷이란 개념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에 불과하였다. 조지 오웰의 1984년이나 동물농장이 가시화되어간다는 놀라움은 지금으로 치면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는 순간만큼이나 충격이었다.

     


막연하게 어렸을 때의 삶을 기억하려 애쓰고 있다. 그것도 시골 친구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상당히 구체적인 추억들까지 소환하려 노력 중이다. 그 시절의 삶이 풍족하고 그리워서가 아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라고 하면 한참을 망설여야 한다. 어떤 삶이 좋은지는 나 자신도 확신이 없다. 공동사회와 이익 사회는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미 자본주의의 독배를 마셔버린 사람이 공동사회로 돌아가는 일은 상당한 결단이 요구된다. 포기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한두 가지를 얻기 위해 수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용기가 수반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내고 있다. 귀농이나 귀촌 형태로 다시 게마인샤프트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다.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까지 그 세계로 진입하려 애쓴다. 단지 어릴 적 꿈을 실현하려는 이상만을 쫒지 않는다. 현실을 즉시 하면서 많은 편리함을 포기하는 용기를 보여준다. 공동사회는 단지 같이 모여 산다고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가치를 공유하며 얼굴을 맞대어만 가능하다. 반드시 시골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쉽지는 않지만 서울의 아파트 단지에서도 가능한 일이다. 어떠한 형태이든 그러한 시도는 일어날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이익 사회의 폐단은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에 수반되는 고통은 현대인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다. 우리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귀농 귀촌은 못해도 같은 가치를 공유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동아리 활동이고 내가 미쳐있는 축구다. 젊은 세대들이 게임이나 한류스타에 빠져 있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된다. 그들 또한 소통의 단절로 오는 외로움을 주체할 길이 없는 것이다. 유일한 퇴로는 이미 정해져 있다. 그래서 더욱 좋아하고 열광하는 것이다. 밤을 지새워서 게임을 해본 사람들은 그 희열을 알 수 있다. BTS에 미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죽도록 좋은 이유는 내가 죽도록 외롭기 때문이다. 내가 축구에 죽도록 빠져있는 이유는 내가 죽도록 외롭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부터는 나도 BTS가 좋아지기 시작하였다. 아이돌이라고는 핑클이나 소녀시대 밖에 모르던 내가 BTS를 좋아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걸그룹이라면 또 모를까...... 

     


그래서 어렸을 때의 추억들을 동경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시절의 나는 아무런 꿈도 없었던 순박하다 못해 바보 같을 정도로 무지했다. 정보의 부재는 하지 않아도 되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현대인의 대부분이 불안증을 호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가 걱정하는 일의 80%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불안해하며 하루를 힘겹게 이겨내고 있다. 정보의 부재와 홍수의 차이는 단지 가뭄과 홍수의 차이가 아니다. 그것을 넘어서는 것들이다.

     

유년기의 나는 심지어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동네의 모든 롤 모델은 농부들이었다. 유일하게 생선장수 할아버지 한분이 달랐을 뿐 모두가 농사를 짓고 있었다. 우리 집은 떡 방앗간을 하였다. 물론 농사도 겸하였다. 그래서 우리 집은 늘 정신없이 돌아갔다.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특히 명절이 돌아오면 며칠간은 잠깐 쪽잠을 잘 정도로 바빴다. 방앗간 앞에는 이른 새벽부터 떡을 해가려는 줄이 피난민 행렬처럼 이어지곤 하였다.

     


그 와중에서 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지 못하였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왜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한 번도 불행하다거나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금의 청소년들이 느끼는 극심한 외로움과 불안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그만큼 정보 자체가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었다.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의도는 어떤 사회가 좋고 나쁘고의 문제를 분석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각각의 사회가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게마인샤프트 사회를 꿈꾸고 있다. 어렸을 때의 세상은 완벽한 게마인샤프트였다.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관련되어 있었다. 편지나 전보라는 통신수단도 있었지만 거의 모든 의사소통은 대면이 아니면 불가능하였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불편함 속에서의 삶은 완벽한 이상향이었다. 인터넷과 4차 산업혁명이라는 괴물은 우리의 삶을 거의 무한대로 편리하게 만들고 있다.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편리함의 이면에 숨겨진 외로움이라는 선물 보따리는 나를 그리고 우리를 무언가에 미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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