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슬픔이 앗아간 아이와의 시간
<반짝거렸던 날들> 연재 01
나이가 든다는 건,
저마다 슬픔을 다루는 법을
익히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 시절,
내가 슬픔을 감당하는 방식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슬픔을 넘어서는 더 큰 기쁨을 경험하는 것.
다른 하나는 슬픔의 심연으로 더 깊이 가라앉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거센 파도가 몰아쳐도
바다의 심연은 늘 고요하듯 —
그때 나는,
슬픔과 함께 더 깊이 가라앉기로 했습니다.
당시 내 안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자리를 지켜야 했습니다.
무너지는 마음을 애써 외면하며,
그 자리를 어떻게든 붙들고 있었지요.
그러자 몸이 먼저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은 속여도 정직한 몸은 속일 수 없던 것입니다.
심장은 조여 왔고, 배 아래는 꺼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으며, 편두통은 나를 덮쳤습니다.
몸은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는 듯,
고통으로 울부짖었습니다.
다행히 터널에는 끝이 있었습니다.
혹독했던 시절의 폭풍은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그때 선택했던 방식은,
내게 깊은 후유증을 남겼습니다.
“나는 가장 소중한 것을 놓쳐버렸습니다. “
- 바로 일상이라는 선물을.
그해 태어난 둘째 은율이의 얼굴이
지금도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 아이를 진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본 기억도,
따뜻하게 안아준 순간도, 내게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 시절의 아이의 모습은
언제나 내 기억 속에
실루엣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요즘 종종 아내가
그 시절의 아이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보여줍니다.
사진 속 은율이는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늘 같은 말을 하곤 합니다.
“여보, 우리 아이 이렇게 귀여웠어요?”
“정말… 이렇게 사랑스러웠나요?”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아이를 힘껏 안아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볼에 입 맞추며 말해주고 싶습니다.
“사랑해. “
“아빠가 진심으로 사랑해.”
“미안해. “
“아빠가 정말로 미안해.”
나는 그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후회가 조용히 밀려옵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이들에게 더 사랑한다고 말하고,
아이들을 포근하게 안아줍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정답게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늘 다짐합니다.
"더 이상 슬픔을
그렇게
다루지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