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이스탄불, 로마로 걷는 길
올해 7월 22일,
가족과 산책을 하다 막내가 난간 위로 올랐다.
불안한 마음에 손을 뻗는 순간,
균형이 무너지고 몸이 아래로 떨어졌다.
오른쪽 다리에 큰 충격이 왔고
고관절 골절상을 입었다.
그날 이후,
나는 ‘걷는다는 것’의 의미를 새로 배우기 시작했다.
의정부성모병원에서 수술과 회복을 반복했고,
재활병원에서 다시 걷는 법을 배웠다.
지금은 목발을 짚고 일터와 가정을 오간다.
두 발로 자유롭게 걷지 못하니
삶의 질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당연했던 하루가, 낯설게 느껴졌다.
아내는 내 대신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하루에도 열다섯 번 넘게 차를 몰고 다닌다.
힘들다 말하지 않는 아내를 보면
감사와 미안함이 동시에 밀려온다.
요즘 따라 걷고 싶은 거리들이 많다.
삼청동 거리, 현대미술관,
경복궁과 북촌의 골목길들.
그냥 가방 하나 메고 걸어보고 싶다.
가을이 되자 이상하게 물건이 사고 싶어졌다.
평소 잘 사지 않던 가방을 고르고,
노트북을 넣을 상상을 하며 괜히 설렜다.
아마도 그것은,
다시 걷고 싶은 마음의 신호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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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마다
나는 여전히 망설인다.
이 뜨거운 공간에서 내 글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누군가 내 언어에 마음을 내어줄까.
그런 생각이 밀려오면 손이 멈춘다.
그러다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인다.
“이건 내 삶이 낳은 문장이니까,
그저 용기 내어 올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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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첫 시집 《가끔 어떤 날》을 출간했고,
브런치 작가로 첫 글을 올렸다.
그리고 큰 부상을 당해
긴 입원과 재활의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삶이 내 말을 들은 건지도 모르겠다.
“느리게 걷는 순례자의 삶을 살고 싶다.”
그렇게 자주 말하던 나에게
정말로 ‘느리게 걷는 법’을 가르쳐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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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글로 다시 걷는다.
《반짝거렸던 날들》의 연재를 마치며
내 안의 모든 소재가 사라진 것 같았다.
마음은 아직 회복 중이지만,
그래서 시집을 다시 꺼내 들었다.
글을 쓰며 닳아버린 내 안을
조금 쉬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잠들어 있던 시들에게
다시 숨을 불어넣고 싶었다.
한때 내 삶을 품고 있던 시들이
다시 누군가의 마음에서 살아나길 바라며.
아직 내 글에 대한 확신은 완전하지 않다.
하지만 이 문장들은,
내가 품고 낳은 언어들이니까
그저 용기 내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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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5년 안에는
교토에서 사계절을 머물며 여행 에세이를 쓰고,
이스탄불과 로마를 따라 바울의 길을 걷고 싶다.
그 길 위에서 신앙과 삶의 에세이를 쓰고 싶다.
글로 내 삶을 이어가고,
존재로 살찌우며,
신앙의 여정을 걷고 싶다.
라틴어로 Imago Dei —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뜻처럼,
그 형상으로 조금씩 자라고 싶다.
강단이라는 공간이 아니라,
목회라는 직분의 이름이 아니라,
길 위에서.
하나님 나라의 순례자로.
그것이 나의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