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의 마지막 그림 앞에서
[ 오늘도 뿌리가 드러난 날 ]
오늘 하루도 버거웠어요.
삶이라는 대지 위에 나란 사람은
마치 맞지 않는 옷처럼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속삭였어요.
내 마음은 말해요.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세상에 보탬 하나 되지 않는다고.
내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신학과 예술, 인간과 자연의 구원을
캔버스 위에 그려보는 일뿐인데
그마저도 돈이 되지 않으니까요.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몸도 마음도 망가져 갔어요.
어느새 할 수 있는 일들도
하나둘 사라져 버렸고요.
예술은 내게 구원이지만,
세상은 그것을 물정 모르는
철부지 어린아이 일쯤으로 여기죠.
현실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나는 그 무게 아래 서서히 으스러져요.
그래도 오늘 나는 땅 속으로
더 깊이 뿌리를 내리려 애썼어요.
하지만 애써 뻗은 뿌리들이
그만 또 흙 위로 드러나 버렸어요.
내 삶은 결코 회피가 아니었다는 걸
언젠가 누군가 알아주면 좋겠어요.
그건 사랑이었고, 삶에 대한 애착이었고,
소망이었고, 살아보려는 악착같은
마지막 몸부림이었다는 걸.
뿌리가 드러난 나무처럼-
<나무뿌리와 줄기(Tree Roots and Trunks)>
(1890년 7월 오베르 쉬르 우아즈, 반고흐미술관 소장)
"빈센트의 마지막 작품 <나무뿌리와 줄기>를 보며 위로를 경험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빈센트를 생각할 때 현실도피적인 인물로 오해하지만, 사실 그는 그 누구보다 현실이라는 대지에 깊이 뿌리내리길 갈구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의 타고난 마음의 결은 평범한 삶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삶의 대지 위에 뿌리내리려 했지만, 번번이 뿌리는 흙 위로 드러난 채 남았습니다. 나무뿌리 앞에서 나는 내 삶의 뿌리를 바라보았습니다. 고흐의 그림은 결국 내 이야기의 한 조각이 되었습니다.”
(* 빈센트 반 고흐의 마지막 작품에 대해서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릅니다. <까마귀 나는 밀밭> 혹은 <나무뿌리와 줄기> 둘 중 하나가 거론되지만. 저는 <나무뿌리와 줄기> 그의 마지막 그림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