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약함에서 꽃 피운 아이의 마음
돌아보면 어리석게도
나는 늘 아이들보다 앞서 걸었다.
그게 아빠의 역할이라고,
당연하듯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리를 다치고,
걸음이 느려진 뒤에서야
전혀 다른 장면을 보게 되었다.
아홉 살 둘째 은율이는
내가 목발 없이 몇 걸음 내디디면
어디선가 조용히 다가와
“아빠, 조심해야 해.”
하며 목발을 건네주었다.
가족끼리 걷는 날이면
내 느린 속도에 맞춰
자기 보폭을 줄이며
살며시 옆에서 걸어주었다.
얼마 전,
올해 누구보다 고생한 아내에게
하루라도 온전한 휴식을 주고 싶어
오후부터 저녁까지
나 혼자 두 아들을 돌보기로 했다.
내 작은 결심이었다.
키즈카페에서 뛰어놀고,
오락실에서 소란스럽게 웃고,
저녁엔 셋이서 쌀국수를 먹었다.
남자 셋의 소박한 데이트였다.
키즈카페에서 간식을 먹으며
나는 잊지 못할 장면을 봤다.
은율이가 막내에게 밥을 떠먹여 주면서
혹시 흘릴까 봐
자기 손바닥을 조심스럽게 받쳐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작은 손 하나에
얼마나 많은 마음이 담겨 있었는지
그제야 나는 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남자 셋이 데이트하는 순간순간
은율이는 나에게 반복해서 물었다.
“아빠, 괜찮아? 뭐 필요한 거 없어?”
마치 은율이 앞에 내가 아이가 된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은율이는 엄마에게 배가 아프다고 했다.
아빠를 챙기느라, 동생을 살피느라,
작은 몸으로 너무 많은 마음을 썼던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두 감정이 동시에 올라왔다.
하나는,
나의 약함 덕분에
은율이 안의 따뜻한 본성이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는 감사.
이건 삶의 신비와 역설로 다가왔다.
또 하나는,
그 마음이 혹시 아이에게
무거운 짐이 되진 않을까 하는
아빠로서의 조심스러운 걱정.
나는 지금도
그 두 마음 사이에 서 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아이보다 앞서 걸기만 하던 지난 시간보다,
아이와 보폭을 맞추어 걷는 지금의 시간이
훨씬 더 많은 사랑을 배우게 한다는 것.
내 약함이 부끄럽지 않은 이유는
그 약함을 통해 이 아이의 마음이
자연스레 밖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자꾸 울컥한다.
이 느린 걸음에
누군가의 사랑이 맞춰지고 있다는 사실이
이제는 그저, 너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