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그늘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슬픔의 크기를 비교한다.
“그 정도 일로 왜 그렇게 힘들어?”
그는 늘 누군가의
슬픔을 숫자로 재고,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훈계한다.
그러나 슬픔은 비교할 수 없다.
그것은 각자의 존재의 그릇 안에서만
체험되기 때문이다.
사탕을 빼앗긴 아이의 울음,
첫사랑을 잃은 스무 살의 눈물,
부모를 보내는 중년의 슬픔 —
모두가 진실하다.
슬픔의 무게를 재려 하지 않고,
그 자리를 인정해 주는 사람.
그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사람.
놀이터 한편에서 울고 있는
아이의 등을 조용히 토닥이는 사람,
외로운 노인의 눈빛을 바라봐 주는 사람.
슬픔의 깊이를 보는 사람.
나는 그런 이가 되고 싶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처럼-
“내가 만일
애타는 가슴 하나를 위로할 수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내가 만일 한 생의 고통을 덜거나,
괴로움을 달래거나,
헐떡이는 새 한 마리를
보금자리로 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슬픔의 크기를 재지 않는 삶.
설령 작은 새 한 마리일지라도
그 눈물에 반응할 수 있는 삶.
나는 오늘도,
그런 사람이 되기를
조용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