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낸 날들을 수놓다

과거와 오늘을 이어주는 아빠의 삶

by 오승현





제주에 여행을 다녀왔다.

바닷바람이 상쾌했다.


가족과 함께 걷는 길에서

아이들은 저마다 역할을 나눴다.

누군가는 앞에서 길을 보고,

누군가는 속도를 맞춰 주고,

누군가는 막내 은우를 살뜰히 챙겼다.


그 모습에 웃음이 났다.

아이들의 결은 이런 순간에 더욱 선명해진다.



십 년 전 살던 동네를 지나

내가 가장 좋아하던 공간,

법환동 바다를 다시 찾았다.


희미해진 기억 사이로

오래 잠겨 있던 감정들이 떠올랐다.


걷다 보니

연락해야 할 얼굴들이 스쳤다.

하지만 결국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못했다.

따뜻했던 기억만큼이나

풀리지 않은 감정도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바랐다.

나의 상처와 감정 때문에

아이들의 과거와 현재가 끊기지 않기를.

그건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폭력이 될 테니까.


나의 과거는 나의 과거일 뿐,

그 시절 함께 한 순수한 아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보석 같은 추억일 테니까.


하지만

그 자리 앞에 서면

여전히 그 과거를

온전히 품지 못하는

나의 한계를 마주한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나를 좋은 아빠라고 믿어준다.

그 믿음이 참 고맙다.

그 믿음이 나를 붙잡는다.


법환동 바다 앞에서

나는 살며시 다짐했다.


아이들에게,

끊어진 기억이 아니라

부드럽게 이어지는 길을

남겨주자고.


삶에서 마주하는 모든 빛과 어둠을

내 것으로 품어낼 수 있는 아빠.

기쁨과 슬픔,

설렘과 두려움,

감사와 상처까지도,

그리고 그 시절 나의 미숙함까지도,

삶의 선물로 껴안는 아빠.


나를 사랑했던 사람도,

나를 아프게 했던 사람도

모두 내 삶의 일부로 여기며

용서할 수 있는 아빠.


그럴 때 비로소,

끊어짐이 아닌 이어짐으로

과거와 현재는 만날 수 있으니까.



삶은,

수를 놓아가는 작업 같다.


어두운 실, 밝은 실,

그 어느 것도 버려지지 않는다.


삶도 마찬가지겠지.

어두운 나의 기억,

밝고 행복했던 나의 기억,

이 모든 것들이 얽혀

아름다운 수로 완성되는 것이다.


오늘도

한 올 한 올,

삶의 무늬를 수놓으며

아이들과 함께 걸어간다.


가끔

바늘을 놓는 순간도 있지만,

삶의 순례는

멈추지 않는다.


끊어지지 않도록,

부드럽게 이어 붙이며,

살아낸 날들을

수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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