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하여

시간을 통과한 삶의 선물들

by 오승현





가끔

깊은 침체에 빠지는

순간이 있다.


혹시 글이 나를 떠난 건 아닐까.

나의 시도, 신앙도, 피아노도,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도


그럴 때면

언제나 나는

시간에 맡긴다.


불순물을 거르는

체처럼

시간이 흔들어

알려주기를 기다렸다.


그 시간은 두렵고 슬펐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고,

시간의 판결에

나를 맡기는 일이었으니까.


감사하게도,

시간이라는 체를

거르고 또 걸러

아직까지 변치 않는

선물들이 있다.


그렇게 지금

내 곁에 남은 것들이

있다.


나의 시와 글,

말씀과 피아노,

가족,

버팀목이 되어 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책.


그것들은

내가 붙잡아서 남은 게 아니라

시간이라는 거름종이를 통과해

끝내 남아 준 선물이었다.


그래서 감사하다.


그 시간들 속에

사랑했던 나를,

사랑했던 이들을,

사랑했던 것들을

아직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것들이 지금도

나를 설레게 하고,

오늘을 살게 한다


그리고 오늘 밤

이 사실 앞에

조용히 안도한다.


오늘도

글이 나를

찾아왔다는

사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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