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못할 줄 알면서도, 나는 매일 책을 싸 들고 나왔다
"무슨 책을 이렇게 많이 갖고 가요?"
아내는 매일 아침,
출근하는 내 모습을 보며 웃는다.
결혼 13년 차지만,
그 오랜 시간 동안 아내는 단 한 번도
꿈 많고 철없는 날 향해 화를 낸 적이 없다.
늘 따뜻한 미소로 나를 배웅해 준다.
나는 종종 농담처럼 말한다.
"다른 여자였으면, 나 벌써 쫓겨났을걸."
그 말엔 웃음이 섞여 있지만,
사실이다.
나는 가방 속 책을
한 번도 꺼내보지 못한 채
하루를 마치는 날이 많다.
아니,
가방 한번 열어보지 못한 채,
그대로 다시 들고 돌아오는 날도 많다.
그런데도 나는 매일,
책을 고르고, 싸고, 메고 나온다.
전날 내 가방엔
에밀리 디킨슨의 시집,
고흐의 편지,
피렌체 여행 에세이,
그리고 피아노와 기타 악보집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오늘,
<그리스인 조르바> 한 권과
박준 시인의 산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소설 <걸어도 걸어도>,
그리고 읽지 못할 걸 알면서도
꼭 함께 데려가고 싶은 책 몇 권이
조용히 가방 속에 자리했다.
그리고 아이패드, 충전기, 전기면도기,
볼펜 몇 자루까지...
가방은 오늘도 무겁다.
아내는 오늘도 물었다.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이건 그냥 책이 아니야"
"내 가방의 무게는,
내 꿈의 무게야."
대학생 때도 그랬다.
늘 무거운 가방 안에 책을 가득 넣고,
지하철과 마을버스를 갈아타며
땀을 흘리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가끔,
가방은 책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찢어진 고기그물처럼
한쪽이 터져 있었다.
지금은 자동차로 출퇴근하니,
가방이 찢어지진 않지만,
그 무게는 여전히 같다.
책으로 가득한 가방은,
과거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왜 나는
이토록 무겁게 가방을 메고 다닐까?
그 안에는,
언젠가 이뤄내고 싶은 것들,
끝내 닿지 못하더라도 간직하고 싶은 바람,
조용히 나를 붙잡는 질문들이,
한 권, 한 권 담겨 있다.
그래서 나는
그 무게를 놓지 않는다.
살면서
이런 낭만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무거운 가방을 껴안고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은빛 고등어처럼 꿈틀거리는
가방 속 꿈들은
지금도
나를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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