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와 도쿄 사이에서

임경선,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by 오승현




은비야, 아빠는 요즘 꿈과 현실 사이에서 한 도시를 오래 생각하고 있어. 아빠가 5년 후 꿈꾸는 순례에 대해 말한 적이 있지. 언젠가 낯선 공간과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1년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이야기 말이야. 고작 1년의 시간을 두고 이렇게 오래 고민하는 아빠의 모습이 지금의 너에게는 잘 이해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네가 조금 더 자라 이 글을 다시 읽게 된다면, 이 계획이 아빠에게 얼마나 큰 결단이었는지 조금은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은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 교토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싶어. 아빠 방 책꽂이에는 여행책들이 가득하지. 튀르키예, 그리스, 이탈리아, 일본, 스페인.. 그 책들은 아직 가보지 못한 곳들에 대한 동경이기도 하고, 현실이라는 대지를 잠시 벗어나 낯선 공간에서 나를 더 깊이 발견하고 싶은 아빠의 마음이기도 해.


그중에서도 교토에 관한 책들 중에서 임경선 작가의 《교토에 다녀왔습니다》를 제일 좋아한단다. 이 책이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교토를 설명하려 들기보다 자기만의 시선으로 조용히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었어.


아빠가 이 책을 한 문장으로 말한다면 이거야. 교토는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저마다 반짝이는 도시라는 것.


아빠가 첫 번째 순례지로 교토를 떠올린 것도 아마 나를 찾기에 가장 어울리는 도시라고 느꼈기 때문일 거야. 이 책에서 작가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반짝이는 노포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자신의 가치와 속도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


아빠는 그런 문장들 앞에서 자꾸만 걸음을 멈추게 되었단다. 우리나라는 무언가 유행하면 모두가 밀물처럼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썰물처럼 사라지곤 하지. 반면 교토는 오래된 것은 오래된 대로, 새로운 것은 새로운 대로 존중받는 시간이 흐르는 도시처럼 느껴졌어.


“도쿄가 감각의 도시라면 교토는 정서의 도시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교토에 대해서라면, 이 도시가 오랜 세월에 걸쳐서 일관되게 품어온 매혹적인 정서들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옛것과 오늘의 것이 어우러져 공존하는 이곳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너그러운 마음으로 교토의 한 계절을 걸었고, 그 시간 속에서 교토 고유의 정서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제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살아가면서 생각의 중심을 놓칠 때, 내가 나답지 않다고 느낄 때,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 마음을 비워낼 필요가 있을 때, 왠지 이곳 교토가 무척 그리워질 것 같습니다.”(P.9)


작가님 말처럼 그 느림의 시간 속에서 아빠는 잃어버린 것들, 놓쳐온 마음들, 지나쳐온 생각들을 천천히 다시 돌아보고 주워워고 싶었어.


그리고 아빠가 교토에서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싶은 이유는 가모강 때문이기도 해. 아빠는 어떤 공간이든 최소 1년은 살아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 제주에서 사계절을 지나며 몸으로 계절을 배웠고, 목포에서 1년을 보내고 나서야 그 도시의 소박한 골목과 풍경이 조금씩 마음으로 들어왔단다. 그리고 지금 사는 의정부도 1년을 살고나니 자연과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더라.


아빠는 교토의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을 천천히 살아보고 싶어. 가끔은 벚꽃아래 거리를 걷고, 가모강에 앉아 햇빛에 흔들리는 물결을 바라보고, 강변이 보이는 카페에 앉아 너희에게 편지를 쓰고 좋아하는 글을 쓰고 싶어. 그렇게 걷다 보면 나를 조금 더 알게 되지 않을까. 아빠가 잃어버린 것들을 조금은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길이는 총 31킬로미터나 되지만 폭은 좁아 중간중간에 징검다리를 심어놓은 가모강. 서울의 한강처럼 크지도 않고, 파리의 세느강처럼 밋밋하지도 않다. 자연 그대로의 울퉁불퉁한 굴곡을 가지며 들풀과 들꽃들을 제멋대로 피어 있고, 인공적인 조형물이나 시설 없이 싱그러운 아름다움을 유지해 왔다. 빼곡히 심어진 나무들 덕분에 사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려주는 장소다. 그 아담하지만 명료한 존재감에서 내가 쓰고 싶은 이상적인 글의 모습을 본다.”(P.99)


가모강을 바라보며 너희를 생각하며 글을 쓰는 아빠의 모습. 그때의 아빠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을지도 모르고, 조금은 더 단단해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순례의 끝에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질문들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괜찮아. 아빠는 삶이 주는 갈증(갈망)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고, 질문하며, 걸어가고 싶어. 그게 아빠의 삶이고, 신앙이고, 이상인 것 같아.


얼마 전 아빠가 진담반 농담반으로 엄마에게 설명절에 혼자 교토에 다녀오고 싶다고 말했지. 하지만 엄마와 너희는 수술 후 오른발을 절뚝거리는 아빠를 걱정했고, “아빠, 우리 버리는 거야?”라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말하는 너희의 미소 앞에서 아빠의 마음은 또 다시 사르르 녹아졌단다. 이번 여행은 혼자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 가기로. 교토 대신 도쿄로 목적지를 변경하며 말이야. (아직 너희에게는 교토가 흥미로운 도시가 아니라서..) 사실 이 때문에 아빠가 엄마 몰래 순례 프로젝트를 위해 모아 온 작은 적금을 깼다고 사실..ㅎ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 꿈과 현실은 서로를 밀어내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붙들어 주는 관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꿈만 좇으면 현실에서 떠나게 되고, 현실만 붙들면 꿈은 사라지지만, 이 둘이 함께 갈 때 가장 이상적인 꿈이 만들어지는 건 아닐까.


“세상은 생각만 하는 사람과 생각이 떠오르면 실제로 실천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서 언급하고 주변 사람들의 참견과 만류와 의심을 모두 감당하면서도 실천까지 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해보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실천을 일으키는 동력이었다. 성공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 느꼈던 해보고 싶다는 감정을 소중히 보살피면서 그것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 본다. 그 감정이 강하고 순수할수록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을 넘어서서 계획한 바를 구현해 나간다. 그 거침없는 기세가 이윽고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응원을 불러 모은다. 내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보는 것,단지 그뿐이다.”(P.134)


아빠는 현실을 떠난 이상주의자는 아닌 것 같아. 지금 내가 지금 하는 일을 통해 그 가치와 이상을 추구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며 노력하고 있으니까. 그건 전적으로 너희들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아. 너희들이 없었다면 아빤 이미 스프링처럼 현실이라는 대지에서 튕겨져 나갔을거야. 아마 이런 노력마저 없었다면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어려웠을거야.


하지만 아빠는 지금 미래를 위한 더 큰 꿈을 꾸고 있다는 것도 알아주면 좋겠다. 가모강은 아직 걷지 못했지만. 늘 가모강을 아래 시와 글을 쓰는 아빠의 모습을 꿈꾸며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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