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2.17)
이번 명절엔 도쿄에 왔습니다.
결혼 후 명절 기간에
양가 부모님 댁이 아닌 곳으로
여행을 온 건 처음입니다.
다리를 다친 뒤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며
그 속도를 따라잡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평소 역할을 기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 앞에서
절뚝거리며 움직이는 나의 모습이
조금 버거웠습니다.
(사실은 나 자신의 욕심도 컸습니다.)
다리를 다친 지 일곱 달.
이제는 통증이 사라져야 할 시간인데
여전히 남아 있는 통증과
지팡이를 짚고 걷는 내 모습에
약간의 염려가 밀려옵니다.
그래서 언젠가
일본에서의 사계절 삶을 꿈꾸며
나의 꿈에 잠시 징검다리를 두었습니다.
원래 혼자 명절 기간 교토에 다녀오려 했지만,
아이들과 아내의 초롱초롱한 눈빛 앞에서
나중을 위해 모아두었던
개인 비상금을 꺼내
가족과 함께 도쿄에 왔습니다.
나리타 공항에 내려
숙소로 가는 길에
잠시 시부야에 들렀습니다.
여행 오기 전에는
스크램블 교차로가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
사진을 찍는 장면을 상상했습니다.
하지만
절뚝이며 걷는 다리와
피곤함을 참지 못하는 아이들 때문에
스타벅스에 잠깐 올라
교차로만 내려다보고 돌아왔습니다.
하루 일정을 정리하며
시부야는 내 스타일이 아니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아하는 키치죠지에서
조용히 하루를 보내고 싶다는
아쉬움이 잠시 찾아왔습니다.
이번 여행의 목적 중 하나는
올해 개인적으로 준비 중인
에세이집에 실을 사진을
많이 찍는 것이었습니다.
출판사가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2026년 크리스마스 즈음 POD 방식으로
지금의 나를 기념하는
한 권의 책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굽혀지지 않는 다리로
빠르게 움직이며
순간을 포착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아내와 저는 계획형 인간이 아닙니다.
세 아이와 함께하다 보면
여행은 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런 여행이,
이런 가족의 시간이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며
아이들을 쫓아다닙니다.
저녁 여섯 시쯤,
니시에이후쿠 역 근처에 있는
에어비앤비 숙소에 짐을 풀고
다시 밖으로 나왔습니다.
전철로 몇 정거장 안 되는
키치죠지로 향했습니다.
골목을 걷고, 상점을 구경하고,
카페에 들어가,
차 한 잔 마시는 저녁을 꿈꿨지만.
보채는 아이들과
갑자기 쏟아진 비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눈에 보이는
작은 가정식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검색해 둔 리스트에 없는 곳이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일본 가정식 요리에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나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졌습니다.
입이 즐거워지니
마음도 함께 풀어졌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아이들과 인형뽑기를 하고
돈키호테에 들러
간단한 간식을 샀습니다.
오늘 아침 새벽,
아이들이 잠든 모습을 바라보며
이 여행이 준 선물을 생각합니다.
요즘 낙심한 마음 속에서
이제는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 곁에서 글 한 편을 브런치에 올립니다.
그리고 다시,
여정을 시작합니다.
숙소가 역 바로 앞에 있어
새벽부터 밤까지
전철 소리가 들립니다.
그런데도 이 소리가
참 좋습니다.
오가는 전철 소리에,
커튼을 걷혀 창 밖을 봅니다.
누군가는 일상을 살아가고,
누군가는 여행을 옵니다.
누군가는 여행을 왔고,
나는 다시 일상을 살아갑니다.
전철 플랫폼 위에서
저마다의 삶이
흔들리듯 반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