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준 상처의 말 한마디를 돌아보며
오른쪽 다리를 다치고 일상의 삶으로 복귀하면서, 나는 생각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괜찮다고, 나는 다 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평소처럼 모든 일을 감당하기엔 몇 배나 더 큰 추친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마음에 큰 압박감을 받았다.
그래서 지난 몇 주 동안 아내의 마음에 상처 주는 말을 했다. 내 입으로 결코 해서는 안 될 말로 아내에게 상처를 줬다. 그러나 아내는 늘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내가 깊은 동굴 속에서 깨어 나올 때까지 잠잠히 기다려 준다.
십여 년 전, 아내를 만난 날. 아내의 은은하고 따뜻한 성품에 마치 목련 같단 느낌을 받았다. 화려한 장미보단 목련처럼 은은한 내면의 아름다운 향기를 가진 아내. 그런 아내를 만난 건 나의 가장 큰 행운이었다.
재활 후 일상에 복귀한 후 꿈에 더 멀어져 가는 것 같은 그런 조바심이 들었다. 칼로 무라도 베어야겠단 심정으로 일본 여행을 홀로 계획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그런 나와 함께하자고 따뜻한 마음으로 수차례 노크를 했고.. 이렇게 설명절 도쿄 여행은 시작됐다.
사실 나는 아내 없이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아내는 늘 나의 빈 공간을 메워주는 소중한 사람이다. 일본 여행 중에도, 아직 무거운 짐을 들 수 없는 나 대신 시부야역 계단에서 캐리어를 힘껏 들어 올리던 아내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낯선 곳을 두려워하는 나 대신, 모험을 은근히 좋아하는 아내의 인도로 우리는 버스와 전철을 타고 이동했고, 접근성 좋은 숙소를 예약하고, 식당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편하게 먹고, 실수한 표를 환불했다.
나는 늘 이상을 꿈꾼다. 그리고 며칠 전, 그 이상을 아내가 방해한다고 화를 냈다. 결혼 후 지금까지, 아내가 있었기에 그 이상을 시도하며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나는 큰 실수를 했다.
아내는 내가 품은 이상에 다리를 놓아준다. 가정생활도 마찬가지다. 아내라는 다리 위에서, 오늘도 아이들과 나는 즐겁고 행복하게 걸어간다.
요즘 자주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품은 이상과, 그 이상을 실현하는 나의 모습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쩌면 가족과 함께 걷는 이 길이 그 숙제를 풀 수 있는 열쇠가 아닐까. 아내와 나, 그리고 아이들 서로의 세계가 현실성 있게 어우러져 누군가만의 공상이 아닌 행복한 이상으로 다듬어지는 건 아닐까.
그게 삶의 역설이자 신비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도쿄에서 가장 좋아하는,
키치죠지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